2025년 삼국유사로 생각을 펼치기
서자 환웅이 자주 천하에 뜻을 두고 인간 세상을 탐내어 구했다.
그 당시 곰 한 마리와 호랑이 한 마리가 같은 굴 속에 살고 있었는데, 환웅에게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항상 기원했다.
웅녀는 혼인할 상대가 없어 매일 신단수 아래에서 아이를 갖게 해 달라고 빌었다.
우리 이야기의 시작인 고조선[단군왕검]에 대한 내용은 큰 단락을 나는 세 가지로 구분한다.
그리고 각 세 꼭지의 이야기는 "탐내어 구하는 것"에서 시작되고 있다.
① 환웅천왕의 인간세계 하강 -> 인간세계를 탐내어 구함
② 웅녀의 인간화 -> 곰과 호랑이가 인간이 되기를 구함
③ 단군의 탄생 -> 인간이 된 곰이 자손을 갖기를 구함
이야기의 시작은 대부분 누군가가 무엇인가를 구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그것은 나라이기도 하고, 문명이기도 하고, 남녀 혹은 자식을 향한 사랑이기도 하다. 결론부터 꺼내자면 탐내어 구하는 것에서 모든 이야기가 시작되고 끝난다. 모든 이야기는 스스로가 구한 것을 구하면서 끝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엇을 탐하는 가가 중요하다.
자, 그렇다면 나와 당신은 무엇을 구하고 있는가?
세상의 이야기들이 구하는 것들에 대한 것도 고조선의 이야기가 담고 있다.
① 환인-환웅-단군으로 이어지는 삼대기 : 전승되어지는 비전
② 환웅의 하강시 함께하는 것들 = 곰과 호랑이가 구하는 것 : 더 나은 문화 혹은 문명 (지혜 혹은 지식)
③ 웅녀가 구하는 것 + 단군의 수명 1908 : 자손의 번영 = 힘의 지속
우리가 지금의 수준과 상황에서 생각하는 여러 욕망까지도 고조선의 건국 이야기에 모두 담겨 있다. 그리고 그 욕망들로 시작된 고조선이라는 나라가 아직까지도 우리를 하나의 민족으로 묶고 있다.
지금 내가 지닌 욕망들은 전혀 부끄럽지도 새로운 것도 아니다. 우리들은 [원래부터] 더 나은 세상을 꿈꾸었고, 더 높은 수준으로 올라가고 싶어 했으며, 오래오래 잘 살고 싶었다. 다만 그 욕망을 어디까지 구체화 하는지, 그 욕망을 위해 어디까지 노력할 수 있는 것인지 (기록상으로는 백일을 이야기했지만 삼칠일(21일)만에 이루어버림) 이 두 가지면 모든 이야기가 끝이 나는 것이다.
욕망을 구체화 한다는 것 역시 고조선의 이야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 환웅이 구체적으로 366가지의 일들을 주관하며 다스리는 자가 되었던 것 처럼 우리는 365일 일상을 좀 더 능동적으로 다스리며 살고 싶다 욕망할 수 있다. 단군이 1908년을 살다가 산신이 되는 것은 단순한 장수의 욕망이 아니라 힘의 지속을 위해 "단군"의 역할과 위치를 공고히하고 대를 잇게 한 것이지 않을까. 라고도 생각해본다.
그렇게 보면 주어진 것보다는 "내 것"을 세우고 싶어 도전하는 그 자체도 하나의 욕망이고 "우리"를 지속하기 위해 공통된 이야기를 묶어내며 관계맺는 모든 행위도 욕망이다.
우리는 꽤 자주 욕망 그 자체보다는 욕망을 위해 해야하는 '노력'에 더 큰 비중을 갖게 되는데, 나는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 하고 싶다. 욕망하는 것이 중요하다. 노력이라는 것은 이야기의 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언제나 우리의 생각보다도 우리의 한계보다도 더 미미하다. (기록상으로는 환웅이 곰과 호랑이에게 백일간의 수양을 이야기했지만 삼칠일(21일)만에 이루어버린 것 처럼) 우리의 한계치보다 더 많은 노력을 했다면 그만큼 그 이야기의 끝이 더 장황해지고 창대해질 뿐, 애초에 가졌던 우리의 욕망은 이미 이뤄졌거나 어쩌면 지나가버렸을 것 뿐이다.
욕망하라, 이 것으로 다 이루어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