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명왕편/이규보]

신비평 방식으로 동명왕편 꼼꼼하게 읽기

by 작가 박신

[동명왕편/이규보]

신비평 방식으로 동명왕편 꼼꼼하게 읽기


동명왕편은 구전으로 전해져 온 동명왕에 대한 이야기들을 이규보가 스토리텔링한 5언 282절로 이루어진 문학작품이다. 그러나 쓰인 시기와 그 내용적 특성으로 인해 동명왕편을 주로 신화적 요소나 역사적 맥락에서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까 기존 분석들은 '이 설화가 어디에서 왔고, 어떤 역사적 의미가 있는가?'를 주로 다룬 것이다. 필자는 이를 하나의 완성된 시(작품)로만 바라보고자 한다. 텍스트 자체가 서로 어떤 역할을 하고 있으며 유기적으로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에 초점을 맞추어본다.


동명왕편을 내용적 부분으로 분절시키면 크게 아래와 같이 나뉜다.

1. 프롤로그 / 24절 / 중국의 설화들을 인용하며 기이한 이야기의 시작을 알리다.

2. 해모수와 유화 / 98절 / 동명왕의 부와 모의 이야기로 혈통을 풀어내다.

3. 동명왕 / 122절 / 동명왕의 성장과 기이한 능력을 전하다.

4. 후손 유리왕 / 4절 / 후손 유리왕을 기록하여 그 역사가 이어짐을 전하다.

5. 에필로그 / 34절 / 오늘날 동명왕편이 지니는 의미로 이야기를 마무리하다.


글의 분량을 퍼센트로 나누면 (프롤로그 8.5%) (해모수와 유화 35%) (동명왕 43%) (유리왕 1.5%) (에필로그 12%)인데 동명왕의 이야기가 절반이 채 되지 않는 점,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합치면 20% 이상 작가가 직접 덧댄 이야기가 선후로 진행되는 점이 특히 눈에 띈다. 이를 통해 동명왕편은 구전되는 이야기들을 단순하게 정리하고 나열했다고만 보기 어려우며 그렇기에 신화적 인물의 역사적 의미를 찾아내는 방식으로 해석하기보다는 작가가 동명왕편을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텍스트 중심으로 이를 다시 읽어볼 필요가 있음을 상기하게 된다.


작가가 이야기를 시작하는 프롤로그의 내용적 구조를 들여다보면

(본문은 조현석 역해를 따름. 동명왕편/아카넷/조현설역해/2019)

원기가 혼돈을 나누어 천황씨 지황씨가 되었네 ->창세 이야기

머리가 열셋 머리가 열하나 그 모습 너무나 기이했네 ->구체적 수치로 제시되는 기이함

나머지 성스러운 제왕들도 경서와 사기에 실려있네 ->신화가 역사가 된 기록

여절은 큰 별에 감응하여 소호씨 지를 낳았고

여추는 전욱을 낳으니 그이도 요광의 빛에 감응되었네 ->빛으로 잉태한 이야기

복희씨는 희생물을 마련하고 수인씨는 나무 비벼 불을 일으켰네

명협이 나니 요임금의 상서로움 좁쌀이 내려오니 신농씨의 상서로움

여와는 푸른 하늘을 기웠고 홍수는 우임금이 다스렸네 ->하늘, 홍수, 자연을 다스린 제왕들

황제가 하늘에 오르려 할 제 수염 드리운 용 스스로 이르렀네 ->승천한 왕

태곳적 순박할 때 영성을 갖추어 기록하기 어려웠네 ->기록의 어려움

후세엔 점점 인정이 경박해지고 풍속과 격식이 희미해져

성인이 간혹 나기는 하여도 신령한 자취는 드물었네. ->후손들이 잊고 잃어버린 것


프롤로그를 내용적으로 구분하자 다음으로 이어지는 동명왕편 본문 흐름과 꽤 닮아있다. 이에 작가가 동명왕편의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풀어놓는 중국의 신화적 요소들은 단순한 차용이 아니라 동명왕이 지닌 신성한 탄생과 능력을 강조하기 위한 장치로 작용하며 동명왕의 서사를 압축적으로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가설을 세우고 프롤로그 내용을 본문과 대응시켜 보면 아래와 같다.


창세이야기 -> 해모수가 하늘에서 내려와 인간세상을 다스림

구체적 수치로 제시되는 기이함 -> 이억만팔천 칠백팔십리의 거리를 마음대로 오르내리는 기이함

신화가 역사가 된 기록-> 신이한 변신대결 속에 현실의 중매와 폐백의 법을 언급하여 신화와 역사를 연결

빛으로 잉태한 이야기 -> 해를 품어 주몽을 낳은 유화

하늘, 홍수, 자연을 다스린 제왕들 -> 주몽의 일화 (준마 마련, 물의 갈라짐, (비둘기가 가져온 보리씨앗), 비류왕과의 대결(활 대결, 고각, 홍수를 다스림, 성을 지음)

승천한 왕 -> 동명왕의 승천

(유리왕 언급 )

기록의 어려움 -> 처음엔 동명 이야기를 의심하였지만 유온과 세조에게도 있던 기이함과 신이함

후손들이 잊고 잃어버린 것 -> 제왕이 일어날 때 징조와 상서로움이 무성했고 후손들이 이를 기억해야 하는 것은 제왕이 지닌 예의와 정의.


물론 주몽의 일화가 방대하여 프롤로그 몇 줄 안에 주몽일화 전체가 완벽하게 대응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나머지 부분은 꽤 비슷하게 대응되는 양상임을 볼 수 있다. 창세의 이야기와 그 속의 구체화된 수치는 해모수와 그 능력을 드러내는 수치와 닮아있어 그 신이함을 더욱 각인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다음으로 해모수와 하백의 굉장히 신화적인 방식으로 진행되는 대결 속에서 하백의 말과 행동에 지극히 그 당대의 현실 아버지를 반영하고 있는 점, 중매와 폐백의 법을 언급하여 신화성과 역사성을 함께 섞어내고 있는데 이러한 내용들이 프롤로그의 "성스러운 제왕과 경서와 사기"에 대한 언급과 잘 어울리게 대응된다.


본격적인 동명왕의 이야기가 시작될 때 가장 중요한 빛으로 잉태되고 알로 태어나는 신화적 요소가 너무 허무맹랑하게 들리지 않도록 프롤로그에서 먼저 닮아 있는 소호씨 지와 전욱의 중국 신화를 언급해주고 있다. 이로써 동명왕편을 읽는 이로 하여금 거부감 없이 동명왕 탄생에 얽힌 신이성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다음으로 복희씨, 수인씨, 요임금, 신농씨, 여와, 우임금의 이야기가 프롤로그에 언급되는데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할 수 있는 점은 6명의 인물이 지닌 신화적 요소들이 동명왕 일화에 모두 적절하게 섞여있다는 점이다. 복희씨의 희생물 마련은 주몽이 말을 키우는 것으로 대응되고 새의 도움으로 고통에서 벗어나 불을 얻는 수인씨만큼이나 물고기의 도움으로 위기를 극복하여 강을 건너는 주몽이 있다. 신농씨가 하늘에서 좁쌀을 얻는 것은 주몽이 강을 건너 나무 밑에서 쉴 때 비둘기가 보리씨앗을 가져다주는 것으로 풀어진다. 요임금의 지혜의 상징인 자연의 명협만큼 주몽에게는 흰 사슴으로 하늘의 뜻을 다스렸고 여와와 우임금의 홍수신화 역시 동명왕의 비류지역의 홍수를 다스리는 것으로 대응된다. 또한 내용적으로는 동명왕의 능력이 하늘(홍수) / 자연(말,물고기,흰사슴) / 대지(보리씨앗)를 다스리는 영웅적 면모를 갖추게 하고 있다. 이는 동명왕이 하늘의 자손으로서, 문명의 개척자로서, 대지의 풍요를 가져오는 인물로서, 자연을 다스리고 지략과 지혜가 뛰어난 자로서 신화적 인물로 완성된다.


마지막으로 프롤로그의 황제가 승천하듯이 동명왕도 19년의 다스림을 마무리하고 승천한다. 이를 통해 동명왕이 신화적 영웅으로 존재하기 위해 갖춰야 할 (출생-모험-승천) 요소가 모두 갖춰진다. 이로서 우리나라에도 완벽한 능력과 요소를 갖춘 위대한 영웅이 존재하게 되었다.

이제 작가는 마지막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기록된 것이 아닌 것, 기이함을 즐겨하지 않아 동명왕편을 믿기 어려웠지만 역사와 신화가 함께 가고 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데 왜 오늘날에는 이러한 신령함을 찾기가 어려운가? 바로 기록되어 있지 않고 후손들이 기억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때문에 구전되기만 하던 주몽설화를 너무 신화적인 이야기로만 두지 않으면서 동시에 신화성과 역사성을 함께 가지고 가도록 이야기를 구성한 것이다.


동명왕편의 이야기를 분석할 때 우리는 주로 주몽설화의 영웅적 구조와 신화성을 중심으로 살펴보게 된다. 또한 이규보가 동명왕편을 지었을 때의 나라 안팎의 상황과 이규보 작가 본인의 주변상황들을 늘 함께 살펴보며 글을 보아왔다. 동명왕편을 하나의 완성된 항아리로 보며 텍스트 그 자체만을 가지고 분석하며 읽어내는 것을 통해 우리는 이규보가 역사가가 아닌 문학가로서 지닌 뛰어난 스토리텔러로서의 자질을 살펴볼 수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역시 이규보의 이야기 편집능력(Story)이다. 짤막한 프롤로그로 이미 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맥락과 구조를 완성시켰고 뒤로 이어지는 동명왕 이야기의 신빈성을 높여주는 장치로 마련해 놓은 것이다. 구조와 상징의 반복으로 이야기를 유기적으로 연결시켜놓아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더욱 탄탄하게 만들어주는 편집의 탁월함이 드러난다.


또한 동명왕의 탄생과 죽음까지 이어지는 이야기들 속에 적절한 신화적 요소를 균형 있게 갖출 수 있도록 필요한 외부 이야기들을 적절하게 배치하는 능력(teller)까지 발견할 수 있다. 언급되는 중국신화의 이야기들이 동명왕이 신화적 존재로서 갖춰야 할 능력과 적절한 대응을 이루는 이야기를 선별해서 가져온 것은 고려시대 당시 익숙한 역사적 서술방식으로만 보기에 아쉬운 점이 있다. 동명왕의 정체성을 세워가는 과정에서 필요한 요소들을 구성하고 이를 프롤로그에서 연관된 다른 신화들과 대응시켜 놓음으로써 한층 더 정체성을 견고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삼국유사/고조선] 탐내어 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