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삼국유사로 생각 펼치기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해모수는 북부여와 고구려의 이야기 모두에 등장한다.
북부여편- 신작 3년 임술년(기원전 59년) 4월 8일에 천제가 오룡거를 타고 흘승골성으로 내려와 도읍을 세우고.. 스스로 이름을 해모수라 하고 아들을 낳아 이름을 부루라 했는데, 해를 씨로 삼았다.
고구려편-저는 물의신 하백의 딸 유화입니다. 동생들과 놀러 나왔을 때 한 남자가 나타나 자신이 천제의 아들 해모수라고 하면서...
문맥상으로 해모수는 아마도 부여를 건국한 인물일 것이다. 그리고 주몽의 아버지가 해모수가 된 것은 아마도 부여가 고구려와 병합되면서 부여인과의 결속을 위해 신화를 합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실제로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사전에서 "그런데 고구려 건국신화를 전하는 가장 오래된 자료인 광개토왕릉비나 『위서(魏書)』에는 해모수가 등장하지 않는다. 이는 원래 북부여의 시조로 전승되어 오던 것을 5세기경 고구려가 부여를 병합한 뒤 부여인을 무마하기 위하여 고구려의 건국신화와 결합, 재구성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언급하고 있다)
부여인의 문화는 승자의 문화가 아니라서 우리에게 남겨진 기록이 많지 않다. 하지만 부여는 중국의 문헌을 통해 서기전 1세기부터 이미 존재한 나라임이 증명되고 있다. 단군조선이 흐르고 위만조선으로 넘어가는 동안 또 다른 한반도의 드넓은 평야 지역에서 부여가 세워지고 사람들이 문화를 만들어 가고 있었다. (부여는 영고..)
부여는 비록 역사에서 승기를 잡지는 못했지만 고구려와 잘 융합되었기에 삼국유사, 삼국사기, 동명왕편 등에서 해모수와 하백으로 남겨져 등장하는 것이라고 본다. 그렇게 본다면 해모수와 하백이 모든 이야기에서 아버지로 등장한다는 것 또한 주목할만하다. 해모수라는 이름이, 부여의 문화가, 우리 문화의 아버지같은 존재로 놓여져 있는 것이다.
우리의 근원에는 부여가 있다. 승자의 역사 속에서 이름을 잃었다고 하더라도 부여의 문화와 정신이 고구려와 함께했고 오늘날 우리에게까지 이어져 숨을 쉬고 있다.
이제 드넓은 평야를 바라보며 옛부여를 함께 떠올려보자. 풍족했던 만큼, 주변에 산이 없어 적에게 노출이 잘 될 수 밖에 없던 만큼, 침략이 잦았던 곳. 하지만 해모수, 하백으로 통하는 풍성한 문명과 문화를 이룩하던 곳. 우리에게도 있다. 신비로운 비밀을 간직한, 이름없이 살아 숨쉬는 옛 도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