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문학 새롭게 읽기] 고대 시가 : 구지가

나의 꿈, 나의 거북이 ― 구지봉노트

by 작가 박신

1. 기존 해석


“龜何龜何 首其現也. 若不現也 燔灼而喫也.”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밀어라.

내밀지 않으면, 구워 먹으리라.”


『삼국유사』 가락국기에는 구간들이 구지봉에 모여 이 노래를 불렀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 소리에 땅이 열리고 김수로왕이 나타났다고 한다. 그래서 구지가는 오랫동안 왕을 부르는 노래로 이해되어 왔다. 그러나 원문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이 노래의 힘은 왕의 출현보다도 노래 자체, 노래를 부른 민중이 지닌 주술적 울림에 있다.



2. 거북을 부르는 사람들 : 왕이 아닌 땅을 깨우는 노래


[재해석]

• “龜何(거북님 거북님)” : 단순한 호명이 아니라 공동체가 합창하는 의례적 부름이다. 또한 ‘하’는 존칭으로 해가에서 부르는 거북아와 달리 불러야 한다.

• “首其現也(머리가 나왔네요)” : 왕의 출현 요구가 아니라, 땅속에 잠든 생명이여, 머리를 내밀어 달라는 요청어린 질문. 특히 也는 존칭표기로 읽을 수 있다.

• “燔灼而喫也(만약에 안 나왔다면요, 환히 불 밝히며 시끄럽게 하겠어요)” : 위협이 아니라 주술적 외침. 머리가 나오지 않으면 시작을 할 수 없다는 절박한 외침.


[해설]

조용호 교수의 해석처럼, 구지가는 봄의 준비를 마친 공동체가 한 해의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는 계절 전환의 제의적 노래였다.

• 거북 = 땅속의 잠든 생명, 태동의 상징

• 머리 = 겨울을 깨고 봄을 여는 씨앗의 발아

• 불을 밝히고 시끄럽게 하겠다 = 구워 먹겠다 = 반드시 땅이(거북이가) 깨어나야 한다는 집단적 의지


즉, 구지가는 특정 왕을 부른 노래가 아니라, 긴 겨울 끝자락에서 봄을 여는 노래였다.



3. 오늘의 구지가 ― 나의 거북이


오늘, 내가 구지가를 부른다면.


내 안에는 오랫동안 품어온 여전히 깨우고 싶은 거북이가 있다.

인문학자가 되고 싶은 마음, 글을 잘 쓰고 싶은 소망.


그래서 나는 나름의 준비가 끝나고 나면

구지봉에 올라 노래한다.

“거북님, 거북님, 머리가 나왔나요? 제 꿈이 시작되었나요? 그렇지 않으면 애가 타서, 내 꿈은 구워지고 말 것이어요.”


나의 거북이는 아직 껍질 속에 있지만,

나는 준비가 되어 있다.

언젠가 머리를 내밀 그 순간을 부르며,

나는 오늘도 나의 거북이를 깨운다.



4. 구지봉노트 ― 깨우는 기록


구지봉노트는 매일의 할 일을 적는 자리가 아니다.

나의 거북이를 깨우는 노래를 기록하는 자리다.


등껍질의 한 칸 한 칸은 하루가 아니라,

내가 불러낸 소망, 내 안의 태동을 담는 자리다.

때로는 오래 비워두어도 좋다.

아직 깨어나지 않은 가능성이 그 속에 있으니까.


구지봉노트에 적는 것은 계획이 아니라 노래다.

반복하고, 부르고, 불러내며,

나는 내 일상 속 어느 꼭짓점에서 나의 거북이를 만날 것이다.




본 글은 조용호 「豐施新노래로서의 〈龜旨歌〉 연구」(『서강인문논총』 27, 2010)를 바탕으로 작성하였음.


[고전문학 다시 읽기 시리즈를 준비하며..]

고전시가는 오래된 책 속에 갇힌 문학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이 삶과 죽음을, 끝과 시작을 마주했을 때 부르는 원형의 노래입니다.


저는 이 오래된 노래들을 다시 불러,

오늘의 삶을 마주하는 도구로 만들고자 하는 스토리텔러입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울려 퍼진 공무도하가는,

오늘 우리에게 하루의 경계를 허물고

시간을 흘려보내는 달력 ― 공무허 달력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겨울 끝자락에서 봄을 깨우던 합창 구지가는,

땅을 두드리며 생명을 부르듯

내 속에 잠든 거북이를 불러내는 노트 ― 구지봉노트로 살아납니다.


삶은 언제나 경계 위에 서 있고,

또 다른 전환점을 향해 나아갑니다.

고전시가는 그 순간마다 울려 퍼지는 노래였고,

오늘의 우리는 그 노래를 다시 불러야 합니다.


삶을 마주하는 고전시가.

흘려보내고, 깨우며, 우리는 다시 노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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