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홀로 유리잔, 서로 부여잡고
― 홀로 유리잔, 서로 부여잡고
― 황조가에서 여수밤바다까지 2천년을 이어오는 우리의 마음
1. 기존 해석 ― 왕의 외로운 노래
〈황조가〉는 한국 고대시가 가운데 가장 오래된 개인 서정시라 전한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翩翩黃鳥 雌雄相依
念我之獨 誰其與歸
펄펄 나는 꾀꼬리, 암수 서로 기대네.
외로운 나, 누구와 함께 돌아가랴.
고구려 제2대 왕 유리왕이 두 부인을 잃은 뒤, 산에 올라 꾀꼬리를 보며 읊었다는 이야기다.
짝을 지은 새를 바라보며 홀로 남은 자신의 처지를 비춰본 노래,
그래서 오랫동안 황조가는 “왕의 외로운 사랑 노래”로 기억되어 왔다.
2. 재해석 ― 민중의 구애가요
그러나 과연 왕이 읊조린 한 소절의 노래가 수천 년을 건너 오늘까지 전해졌을까?
짧은 왕의 탄식이라기보다, 사실은 민중이 부르던 구애의 노래였을 가능성이 크다.
짝을 갈망하는 목소리는 권력자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홀로일 때는 짝을 찾고 싶다.
황조가는 단지 유리왕의 노래가 아니라, 이름 없는 청춘들이 부르던 구애가요였고,
왕의 입을 거쳐 기록에 남았을 뿐이다.
[재해석]
이리저리 나닐던 꾀꼬리도
암수 서로 짝을 찾아 의지하네.
늘 생각해. 나는야 혼자인데
그 누가 나와 함께 가게 될지.
3. 부여의 노래 ― 사라진 민중문화
그렇다면 그 민중은 누구였을까?
학계 일부는 황조가가 부여 문화의 전승이라 말한다.
부여는 제천 행사 ‘영고’를 열며 하늘에 제사를 드리던 나라였다.
드넓은 평야 위에서 노래하고 춤추던 그들의 합창이 바로 황조가의 뿌리일지도 모른다.
비록 부여는 승자의 역사 속에서 사라졌지만,
그들의 사랑 노래는 고구려로 이어져 오늘까지 남은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황조가는 단순히 한 왕의 외로움이 아니라,
사라진 부여 민중의 문화가 우리에게 남긴 구애의 노래다.
그 노래는 2천 년을 돌아 오늘의 우리에게도 남아 있다.
버스커버스커의 〈여수 밤바다〉를 들어보자.
“이 조명에 담긴 아름다운 얘기가 있어
네게 들려주고파 전활 걸어 뭐하고 있냐고…”
짝을 지은 연인들이 가득한 풍경 속에서, 홀로 외로운 나를 자각하는 노래.
황조가의 구조와 그대로 겹친다.
외로움은 개인의 증명이자, 짝을 찾고 싶은 마음의 고백이다.
황조가는 그 원형이었고, 여수 밤바다는 그 현대적 변주다.
4. 오늘의 황조가 ― 홀로 유리잔, 서로 부여잡고
황조가는 짝을 찾고 싶은 외로움의 노래였다.
오늘 우리는 그 노래를 어떻게 부를까?
나는 그것을 홀로 유리잔이라 부른다.
외로울 때 한 잔: 나의 황조가
그대를 삼키며 한 잔: 그대를 향한 구애
넘치는 마음을 서둘러 한 잔.
홀로 드는 잔은 자꾸 비워진다.
빈 잔 곁에는 언제나 그대를 위한 자리가 있다.
✦ 홀로 유리, 서로 부여 ✦
우리는 홀로 유리잔을 들지만,
결국은 서로 부여잡고 싶은 존재다.
황조가는 그 최초의 구애가요였고,
오늘 우리는 여전히 홀로 유리잔을 부딪치며,
짝을 찾는 노래를 부른다.
인생의 파트너에게,
나는 나의 황조가를 바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