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장수 설화로 보는 운명론

당신은 알고도 시작하는 편인가요, 아니면 시작하지 않기 위해 알고 싶나요

by 작가 박신

-우리가 신년운세에 열심인 이유


아기장수설화는 가난한 평민의 집에 날개 달린 아기장수가 태어나지만,

그 비범한 능력을 펼쳐보기도 전에 부모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는 줄거리를 지닌

우리나라 전역에 분포한 광포설화다.


비범한 능력을 지닌 아기영웅의 모티프는 전 세계적으로 발견되는 보편적 서사다.

그러나 유독 우리나라의 아기장수들은

태어나자마자, 혹은 자라기도 전에 좌절되고 제거되는 경우가 많다.


동명왕이나 왕건처럼 나라의 시조로 귀결되는 경우를 제외하면,

우리 설화 속 영웅은 좀처럼 살아남지 못한다.

마치 이 땅에서는

‘너무 큰 존재’가 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서사는 오랜 시간 우리 문화의 밑바닥에서 작동해 왔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흔적 중 하나가

해마다 반복되는 신년운세 문화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우리는 영웅을 꿈꾸는 나라일까.

아니면,

영웅이 되어버릴 가능성 자체를 두려워하는 나라일까.


왕이 될 수도 있지만,

역적이 될 가능성이 더 커 보이는 아이를

차라리 지금 죽이는 선택을 했던 백성들.


그 선택은 잔인하지만,

어쩌면 가장 ‘현실적인 생존 전략’이었을지도 모른다.


이 땅에서 운명은 늘 가혹했고,

잘못된 선택 하나가

삶 전체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감각은

다른 문화권보다 우리 문화에

훨씬 강렬하게 축적되어 왔다.



그래서 우리는 묻게 된다.


운명을 알고, 아이를 죽일 것인가.

운명을 모른 채, 아이를 마음껏 사랑하다가 죽음을 감당할 것인가.


이렇게 물으면

우리는 언제나 사랑을 선택할 수밖에 없지만

운명은 스스로를 숨길 생각이 없다.

우리는 결국 알게 될 수밖에 없다.

(운명이 그렇다.)

그리고 알게 된 채로도

상처를 향해, 실패를 향해

걸어가야만 하는 순간이 온다.


하지만 또 다른 용기가 있다.

사랑이 시작되기 전에,

운명을 알자마자

아예 가능성 자체를 죽여버리는 용기.


결국엔 실패할 끝이라면

시작되기 전에 없애고 싶은 마음.


아기장수설화가 반복해서 들려주는 것은

바로 이 마음의 잔혹한 솔직함이다.



아기장수는 거대한 가능성이다.

그리고 그 아기는 매번 우리 안에 태어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그 거대한 가능성을 품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묻는다.

운명을 알기 위해.

이 아이를, 이 가능성을

조금 더 살게 할 방법은 없을까.

올해는 살릴 수 있지 않을까.


운명에는 시기와 기회가 중요하다고들 하니까.

이틀만 더 버텼다면

살아남았을지도 모를 아기장수를

내 작은 실수와 경솔함으로 떠나보낼 수는 없다는 마음.


나는

아기장수를 살리기 위한 이 몸부림의 시작이

곧 신년운세라고 느껴진다.



신년운세를 믿어서가 아니다.

완전히 맡기기 위해서도 아니다.


그저

이번에는,

이번만큼은

내 안에서 태어난 어떤 가능성을

너무 일찍 죽이지 않기 위해서다.


아기장수는 영웅이 아니라

가능성이다.


그리고 신년운세는

그 가능성을 살려보려는

오래된 문화의, 우리의 아주 조심스러운 기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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