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nyo On The Cliff. 스튜디오 지브리. 2008)
바다 저 밑바닥에서 이루어지는 생명력 가득한 장면.
포뇨의 아빠 '후지모토'는 바다의 폭발적 힘을 만들어 내는 물약을 떨어뜨리고 있다.
그는 인간의 DNA에 강력한 영향을 주는 바다의 힘을 담은 물약을 만들며
인간의 시대가 끝나길 고대한다.
한 때 인간이었다는 후지모토는 그 물약을 바다 생명들에게 나누며
캄브리아기에 필적할만한 생명의 폭발을 기리고
자신의 유전자와 바다 생명력의 '혼혈'이라 할 수 있는 인간을 닮은 물고기(인면어)인
'포뇨'와 같은 자식들을 길러낸다.
후지모토 : '영원히 어리고 순수했으면 좋으련만'
인간이 만들어 낸 환경오염, 자연파괴등의 불순함을 바다의 순수함으로 되돌리고 싶어 하는 그의 강렬한 욕망은
포뇨의 인간이 되고자 하는 의지와 부딪힌다.
포뇨는 순수함을 지키고 통제하려는 아버지가 만든 바닷속 '결계'를 뚫고
뭍으로 나와 인간 '소스케'와 그를 둘러싼 '오염된 환경', 그렇지만 자유롭고 다양한 감정에 노출된 세상을
경험하게 된다.
포뇨가 소스케의 피를 핥아 선천적 열등인자가 DNA 오염으로 눈을 떴다며 당황스러워하는 후지모토.
그래서 바다의 생명력이 담긴 물약들의 힘으로 원시의 상태로 포뇨를 되돌리려 애쓴다.
하지만 원시에서 비롯된 바다의 힘과, 포뇨가 가지고 있던 인간으로서의 '열등인자'는
후지모토의 바람과는 달리, 서로 결합되어 포뇨의 마법을 강화하고
원하는 것으로 향하는 모험심과 열정을 굳건하게 만들어 준다.
이제 더 이상, 소녀를 둘러싼 새로운 자극과 자유로움을 뒤로할 수는 없다.
어쩌면 포뇨의 아버지가 달가워하지 않는 오염된 인간 세상의 진정한 구원은
'소스케의 마음'에서 비롯될 것이다.
바다에서 뭍으로 올라온 금붕어 모습 시절의 포뇨를 구하고
해일로 정전이 되어버린 '해바라기집' 양로원 할머니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달래는 소스케의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
인간은 환경을 오염시키고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만
결국, 그 오염과 상처를 달래고 복구할 수 있는 힘 또한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된다.
영화 속에는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거나, 처음에는 그렇지 않을지라도
결국 내면에서 우러나는 힘을 발현하고야 마는 여성캐릭터들이 등장한다.
포뇨를 비롯해, 소스케의 엄마 '리사', 그리고 포뇨의 엄마 '그란만마레'가 보여주는 포용력과 강한 의지는 일맥 상통하고 있다.
사랑하는 소스케를 향한 열정과, 넓고 다양한 세계로의 자유로움을 펼치기 위해 인간이 되기를 희망하는 포뇨.
거친 해일을 가르며, 아들인 소스케를 지키고
해일로 물이 차오른 섬을 다시 가로질러가서 양로원의 노인들을 돌보고자 하는 리사.
딸을 순수와 안전이란 벽에 가두지 않고
소녀의 자유와 열정을 응원하며 인간이 되는 길을 열어주는 그란만마레.
영화의 서사 속에는 동화 '인어공주'의 이야기가 일부 차용된다.
오래된 마법을 통해 포뇨가 사랑하는 소스케 옆에서 마법을 잃은 진정한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
실패하면 물거품이 되겠지만, 이러한 두려움이 가득한 포뇨의 결정 앞에 불안 가득한 후지모토에게
그란만마레는 이렇게 말해준다.
'어차피 우린 물거품에서 태어났는데요, 뭐'
딸 포뇨의 선택에 편견을 갖지 않고, 형태의 한계를 규정짓지 않는
가장 자연에 가까운 사랑을 실현하는 존재.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자신의 작품에서 끊임없이 보여주는 자연 친화적 모습의 캐릭터화라 할 수 있다.
영화 속에는 자연을 오랫동안 관찰하고 표현해 온 감독의 심상이
자신의 한계를 거스르고자 하는 한 여린 생명의 의지와 열정으로 사랑스럽고 귀엽게 피어나고 있다.
후지모토가 모아 둔 '생명의 물'의 버프를 받아 그 의지를 발현하고
엄청난 바다 해일을 일으키는 마법을 실현하며
태초의 생명인 '데본기 시대' 원류의 생명체들이 가득하게 만든다.
다섯 살 포뇨와 소스케의 순수한 끌림과 사랑은
가능과 불가능을 따지는 가타부타의 시간낭비를 허용하지 않는다.
그녀는 인간을 사랑하다가 물거품이 되어버린 인어공주가 걸어간 절망의 길을 걷지 않을 것이다.
사랑의 의지를 실현하고자 파도 위를 전속력으로 달리는 존재인 포뇨라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