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만의 방이라는 컨셉의 글쓰기 제안을 받았을 때 ‘와, 너무 매력적인 이름인데!’라고 생각했다. 나는 단 한 번도 나만의 방을 가져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지리도 궁상맞던 어린 시절 우리 가족의 방은 단 한 칸이었고, 이후에 방이 두개가 되었으나 나와 여섯 살 어린 남동생 공동의 것이었다. 2평 남짓 한 방은 엄마가 어디서 주워 온 삐걱대는 이층 침대와 나무 책상 하나로도 꽉 찼다. 대학 시절 학교 앞에서 공동생활을 했던 나는 또 다른 3명의 자매들과 함께 방을 썼고, DTS 훈련을 받을 때는 무려 6명이 한방에서 말도 안 되게 구겨 잤던-그래도 행복했던-기억이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결혼 전까지 남동생과 공간을 공유해야 했고, 결혼을 하니 역시 또 다른 남자(!)와 한방을 쓰게 되었다. 15년이 지난 지금은 두 명의 아이들과 한방에서 그것도 가운데 자리에서 자고 있다.
오롯이 나만의 것이 없었던 나에게는 글쓰기의 공간이 어쩌면 내 방이었는지 모른다. 아무 때나 출입할 수 있고, 내가 원하는 것을 아무 곳에나 둘 수 있고, 다른 사람이 안 보았으면 하는 것들은 적당히 비공개 해 놓는, 때와 철에 따라 무드를 바꿀 수 있는 나만의 방.
작가의 책상이라는 사진첩에 심취했던 적이 있다.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소설가, 저널리스트의 책상을 담은 사진첩을 보면서 나도 내 책상이 갖고 싶었다! 꼬물대는 아이 둘을 키우는 싱글맘에게 책상은 사치였으나 포기할 수가 없었다. 중고 사이트에 검색어를 걸어놓고, 사진첩에서 봤던 멋진 책상이 나오면 무리해서라도 사고 싶었다. 그리고 완벽하지는 않지만 책을 일렬로 멋들어지게 세워 놓을 수 있는 책상을 사서 작은방에 놓았다. 역시나 완벽하지는 않았다. 머지않아 내 책상 맞은편에는 아이들의 책상을 놓아야만 했고, 그 후로 나는 그 방에 들어가기도 어려웠다. 아이들과 셋이 등을 맞대고 뭔가를 쓴다는 것은… 음…
나는 아직도 나만의 방을 꿈꾼다. 우선 커다란 통창 밖에 시절마다 옷을 갈아있는 커다란 나무들이 있었으면 좋겠다. 도로 뷰, 상가 뷰는 싫다! 나무가 보이고 저 멀리 강이 보인다면 더할 나위 없다. 새소리가 어렴풋이 들릴 만한 창 앞에 나무로 된 약간은 투박한 책상을 놓고 싶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책들과 독서대 및 몇 가지 오브제를 놓을 것이다. 아끼는 예쁜 화분에 식물들을 심어 창가와 스툴에 둘 것이다. 알로카시아나 아스파라거스, 피쉬본, 큼지막한 보스턴 고사리도 좋겠다. 빈티지 매장에서 구해온 액자와 차곡차곡 모아둔 LP를 비스듬히 세워놔야지. 나는 뮤지션이니까 음악을 듣는 스피커에는 힘을 좀 실어도 된다. 책상과 의자 외에도 편안한 리클라이너 쇼파를 하나 두고 바로 옆에 긴 스탠드를 둬야지. 침대보는 약간의 레이스도 좋겠으나 이불은 편안한 파스텔톤이 좋다. 머리 맡에는 가급적 아무것도 두고 싶지 않지만 필요하다면 좋은 향이 나는 인센스 스틱 하나, 일기장 그리고 작은 펜.
그리고 그곳에서 글을 쓰고 싶다. 나의 심연 깊은 곳에서부터 길어 올려진 나를 세심하게 관찰해 보고 싶다. 다른 사람이 기대하는 내가 아닌, 내가 살펴본 바에 의한 내가 되어서 이야기를 써보고 싶다. 그때 꼭 함께 했으면 하는 존재가 있는데 그분은 바로 성령님이시다. 나를 제일 잘 아시는 분. 내 마음에 노크하시는 분.‘잠시 앉아서 이야기 좀 할까?’라며 찾아오실 때, 내 방이 어느 정도 정돈이 되어 있으면 좋겠다. 내 방에 들어오시면서,“향기가 좋구나” 하셨으면 좋겠다. 그리고 오래 머무셨으면 좋겠다. 그분도 나도 그 방에서 어떤 이야기를 해도 하나도 불편하지 않기를. 그분이 함께 하셔야 이곳은 나만의 방이다. 그분과 내가 하나이기에, 그분 안에서만 내가 발견되기에.
“나의 맘 받으소서”라는 찬양은 Passion의 워십리더 Christy nockles의 곡이다. 영어 제목은 “My Heart, Your Home”. 내 마음에 주님이 사시길 바라는 마음을 항상 갖는 것, 내가 실재하는 작은 공간의 방을 상상하는 것처럼 주님과 내가 함께 할 내 마음의 공간을 그려보고 가꾸는 것, 오롯이 나만의 방을 갖게 되는 것을 꿈꾼다.
p.s 집중해야하는 일정들로 인해 자기만의 방 프로젝트는 함께 하지 못하게 되었지만, 여전히 나의 글쓰기는 계속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