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희네 슈퍼

- 왜, 송희네 슈퍼였을까?

by 열매

"엄마, 내가 요즘 글을 쓰고 있는데…

주제가 '내 이름을 걸고 해 보고 싶은 게 무엇입니까?'야.

갑자기 생각났는데, 왜 엄마 이름을 건 용희네 슈퍼도 아닌 '송희네 슈퍼'로 지었어?"


어떤 대답이 돌아올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기다렸는데…

간단한 한 마디가 되돌아왔다.

"큰딸이 송희라서"


나는 어떤 말을 기대했던 것일까? 괜스레 허탈한 마음이 들었다.

생각보다 짧은 한 마디에 잠시 떨렸던 내 마음이 민망해져서 가벼이 웃어넘기는 척 한 번 더 엄마에게 물었다.


"웃기다, 큰 딸이 울 집 대표야? ㅋㅋㅋ 용희네 슈퍼, 대진이네 슈퍼도 아니고!

슈퍼 이름을 지을 때 어떤 마음이었나 궁금했어서 ㅋㅋㅋ"

난 멋쩍은 마음에 말 끝에 'ㅋㅋㅋ'를 연신 붙여댔다.


엄마에게 두 번째 대답이 돌아왔다.

"우린 어른인데 용희네, 대진이네 하면 안 되잖아.

송희 이름이 이쁘고, 큰 딸은 항상 대표니까. 부자 엄빠면 더 좋을 텐데 ㅋ"

엄마도 멋쩍었던 것일까. 자꾸 말 끝에 'ㅋ'을 붙인다.

나도 덩달아 "뭘 또 ㅋㅋㅋ 이미 부자였음"이라 답했다.

그러곤 한 개의 답이 또다시 날아왔다.

"몸이 안 좋아 기운이 없어도 식사 조금씩이라도 챙겨 먹어. 어지러워."

"잘 먹고 있어. 밥은 꼭 챙겨 먹어. 걱정 마!"


그렇게 서로 밥 잘 먹었는지, 더운 날 건강 조심하라며 연신 서로를 걱정하다가

글을 마무리할 즈음 나는 예전 우리의 터전 '송희네 슈퍼'를 네이버 지도로 검색해 보았다.

아무것도 검색되지 않았다.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으니, 검색해도 나올 리가 없었다.

괜스레 아쉬운 마음에 다섯 살 때부터 매일 걸었던 기나긴 길의 흔적을 지도 속에서 찾아 나섰다.

참 오랜 시간 마음속 묻어두고 살았던 기억을 더듬어 봐도 좀처럼 기억나지 않아 나는 또다시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옛날에 우리 살던 송희네 슈퍼가 녹촌리였나? 아닌데… 창현리?"

"창현리. 황새머리 좀 지나서."

"황새머리 ㅋㅋㅋ"

오랜만에 듣는 동네 이름이 새삼 낯설었다.

엄마가 "왜?"하고 물었지만, 어린 시절의 기억을 되짚어 그 시절로 가 보려던 마음을 들키기 싫었다.


"그냥. 오랜만에 들으니 새롭다 ㅋㅋㅋ"


"별일 없지?"


"갑자기 생각나서 ㅋㅋㅋ 아는 동료도 그 동네 살았었더라고."


"아, 그렇구나."라고 대답하는 엄마에게 나는 슬쩍 내가 궁금했던 말을 한마디 더했다.


"내가 어릴 적 유치원까지 걸었던 거리가 얼마나 됐었나 싶어서 ㅋㅋㅋ"


실은 이것이 가장 궁금했다. 실로 하고 싶었던 말은 이것이었다.

(내가 다섯 살 때부터 혼자 유치원까지 걸었던 그 긴 거리, 나 혼자 얼마나 걸었어?)

(나는 그때 좀 외롭고, 무서웠어.)

이번에도 엄마의 짧은 한 마디가 되돌아왔다.

"황새머리에서부터 걸어서 10분"

정말 그랬을까. 내게는 너무 먼 거리였는데, 아무래도 엄마의 말을 못 믿겠다는 듯 다시 네이버 길 찾기로 도보 시간을 검색해 보니, 10분 정도로 나왔다.

'다섯 살 어린이의 걸음 걸이면 적어도 15분에서 20분 정도 걸렸겠지.'라며 나는 스스로 정리했다.

그때 나의 정서에 남아 있는 거리로는 한 30분 정도는 걸었던 느낌이었다. 5살 어린아이의 걸음에는 까마득한 거리로 느껴졌었기 때문이다.


연일 야근을 지속하며 빠듯하고, 고된 일상을 살아가던 7월의 어느 날,

엄마가 반찬을 들고 찾아왔다.

다섯 살 때의 기억을 되짚으며 집에 돌아왔을 때, 지금의 나도 그때와 비슷하게 혼자 있었다.

다섯 살짜리 어린아이가 터벅터벅 걷고 있을 때, 자전거를 타고 뒤따라 오던 그때처럼 엄마는 혼자 걷고 있는 딸이 걱정됐던 걸까.


그다음 주에도 반찬을 들고 엄마는 찾아왔다.

발을 동동 거리며 살아가는 딸이 안쓰러웠는지, 연신 반찬을 해서 나르는 엄마의 밥이 참으로 반가웠다.

나에게는 '엄마의 밥 = 사랑'이다.

엄마는 그렇게 엄마의 사랑을 내게 표현했다.


살면서 어쩌면 가장 혹독한 시기를 지나고 있는 이때에

지금 하고 있는 것을 모두 놓아버리고 싶은 날에

이제는 내 몸을 챙기고 싶은데, 그럴 수 없는 그 순간에

엄마는 반찬을 바리바리 싸들고 어김없이 나를 찾아왔다.


어느새 나는 너무 힘겨운 시기에는 엄마의 사랑을 마음에 한껏 담기로 했다.

더는 미안해하지 않고, 마냥 감사히, 반갑게 받기로 마음먹었다.

가지 볶음, 고추 무침, 닭볶음탕, 쇠고기뭇국, 오징어채, 게다가 밥까지 해서 가져온 엄마에게 미안해하지 않고 이제야 아무런 걱정 없이 맞이할 수 있게 되었다.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그날도 어느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나온 뒤, 엄마와 아빠가 함께 있는 엘리베이터 한 공간에서 내가 말했다. "나 송희네 슈퍼 살 때 혼자 다섯 살 때부터 유치원 걸어 다녔잖아. 나 사실 그때 진짜 무서웠어."

엄마는 "그때는 네가 아무 말 없이 잘 가길래 무서웠는지 몰랐어. 우리는 몰랐지…"라고 말했을 때,

아빠는 "우리 송희가 꾹 참고 다녔지. 그 어린애가 싫다는 말 한마디 못 하고, 큰 딸이 고생 많았지."하며 나를 토닥였다.

눈물이 찔끔 나올 뻔했지만, 나는 꾹 참았다. 그리고 애써 웃음을 지었다.

엄마, 아빠가 그때는 몰랐던 어린아이의 마음을 지금이라도 알아준 것으로도 이미 충분했다.



반찬을 싸 온 엄마에게 내가 커피 한 잔 쏘겠다며, 스타벅스에 주차하고 함께 내렸다.

엄마와 마주 보고 앉아 두런두런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 나는 다시 한번 엄마에게 물었다.

"아니, 엄마. 송희네 슈퍼 이름 지을 때, 엄마는 어떤 마음이었을까가 난 너무 궁금했었어."

잊을 만하면 나오는 송희네 슈퍼에 담긴 의미가 내게는 이토록 중요했다.

원하는 답을 얻지 못하면, 끝까지 물고 늘어져 답을 찾아내고야 마는 나의 버릇이 이렇다.

그제야 엄마는 말했다.

"첫 째라 가장 소중하니까.

살면서 너에게 엄마, 아빠의 사랑이 부족했다고 느낄 때, 원망하는 마음이 들 때마다 기억해.

네가 너의 딸을 바라볼 때 너무 예쁘고, 사랑스럽지?

엄마, 아빠도 똑같아. 부모가 자식 사랑하는 마음은 다 똑같아."


그래. 그 말도 맞다.

그런데 나는 엄마에게 어떤 말이 듣고 싶었을까?


아마도 이 말이었을 것이다.

"송희야, 네가 태어났을 때 우리가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 첫아이라서 모든 게 신기하고 소중했어. 때로는 서툴기도 했지. 그런 네 생각만 하면 너무 애틋해서. 그래서 우리 가게 이름도 네 이름으로 지었던 거야."


허나 엄마는 그런 말을 꺼내기 어려워하는 사람이다.

머리로는 안다. 엄마의 반찬 하나하나에 그 마음이 담겨 있다는 것을.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여전히 아쉽다. 가슴 깊이 와닿지는 않으니 나라고 별 수 있나.


엄마는 대놓고 "사랑한다."는 말 대신 반찬을 싸주고, "부모가 자식 사랑하는 마음은 다 똑같다."라고 말한다. 그것이 엄마의 사랑의 표현이라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따뜻한 밥 한 끼는 엄마의 변함없는 사랑이고, 내게는 위로이자 쉼이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엄마가 싸 온 반찬을 기꺼이 맞이한다.

반토막의 이해와 여전히 아쉬운 마음을 안은 채로.

언젠가 그 말을 들을 수 있기를. 아니면 이 밥만으로도 충분해질 수 있기를 바라면서.


내 이름을 걸고 해보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에 막막해하던 나에게,

엄마는 이미 내 이름을 걸고 무언가를 해본 분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오늘은 충분하다.

작가의 이전글마을의 새로운 실험 "우리 동네엔 수포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