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가 치면 난 돛단배를 띄울게

끝없이 일렁이는 파도 위에 누워

by 열매

힘겨운 시간을 지나고 있었다.

몸은 만신창이가 되었다.

한쪽 얼굴은 저릿했고, 그러다 또 다른 한 쪽 귀는 통증이 심해 아무 것도 씹지 못할 지경이었다.

몸이 아우성을 쳤다. 이래서는 더는 견딜 수가 없을 것이라고.

그래서 가장 바쁜 시기에 금요일 반차를 내고, 주말 동안 우리 가족은 지인 부모님께서 내어준 울산집으로 여행을 함께 떠났다.


최근 한 정신의학과 의사 분의 강의를 들었다.

강의 말미에 그가 소개한 노래, 선우정아의 ‘도망가자.’

힘겨운 자리, 매일 도망치고 싶지만 누군가가 자신 앞에 일말의 희망을 갖고 도망쳐 오는 자리라 그럴 수 없어 매일 아침 출근 길에 복음처럼 듣는다던 그 노래.

내 속에서도 아우성치던 말이었다.

‘도망가고 싶다. 그래. 도망가자! ...그리고 다시 돌아오자. 씩씩하게’

그렇게 끝을 정해두고 떠난 여행이었다.


밀려오는 파도 속에서 그간에 나는 너무 오래도록 허우적 댔다.

어느 날은 허우적 대다 꼬르륵 잠길 듯 한 적도,

또 어느 날은 다시 떠오르기도 한 적도 있었다.

그렇게 몸을 갈아 넣으며 결과물을 내야 했던 시간들을 지나며 내 몸과 마음은 닳아 있었다.

‘단 한 순간이라도 마음 놓고 대자로 뻗어 한숨 자고 싶다.’

‘단 한 순간이라도 긴장을 놓고 널부러져 있고 싶다.’를 연신 외쳤던 나날들이었다.


드디어 그렇게 마주한 바닷가.

튜브 하나를 걸치고, 바다 속으로 호기심 많은 어린아이마냥 걸어 들어갔다.

튜브 하나에 의지해 처음에는 발장구를 치며 수영을 하기도 하고,

두 팔을 쭉 뻗어 저어 보기도 하고, 두 팔을 교대로 저으며 끊임없이 움직이다가

어느 새 하늘을 보니 긴장했던 온 몸이 스르르 늘어졌다.


바다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니, 내게 주어진 이 쉼의 시간이 이토록 찬란했다.

그제서야 나는 움직이던 몸을 멈추어 온 몸에 힘을 쭈욱 뺀 채로 튜브에 몸을 맡겼다.

고개를 뉘여 하늘을 한참 동안 바라보다 눈이 부실 즈음에는 눈을 감곤 했다.


매일 몸에 힘을 주고, 주어진 것을 어떻게든 집요하게 헤쳐나가던 내가

온 몸에 힘을 뺀 상태로 그저 파도에 몸을 맡기듯 바람을 따라 간다면

나는 어느 곳에까지 이르게 될까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 인생의 파도가 휘몰아치는 시기에 띄운 종이배와 같은 글 하나에 달린 댓글을 바라보며 그 글이 나와 같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저 파도가 칠 때 종이배 하나 띄우듯 내 작은 손으로 고이 적은 글 하나를 띄워 보냈을 뿐인데, 누군가의 마음에 가 닿는 순간들을 마주하니, 내 마음이 일렁여지기도 했다.


글을 쓰는 일은 파도 치는 인생에서 내 마음에 등불을 켜는 일과 같았다.

그렇게 나는 혼자 꾹꾹 눌러 견뎌온 마음에 등불을 켜고 걸어 들어가보기로 했다.

나의 작은 등불을 들고, 나의 어느 시절로 조금씩 걸어들어가기로 했다.


"네 마음의 바다 난 돛단배를 띄울게

파도가 치면 난 또 딴 배를 띄울게."

(FANXY, 김균택, 돛단배,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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