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균열

함께 일하며 서로를 돌보는 돌봄공동체

by 열매

지하철역에서 의자에 나란히 앉은 두 사람의 대화를 우연히 듣게 되었다. 한 사람이 무거운 가방을 내려놓자 옆 사람이 말했다. "뭐 이렇게 많이 들었어요? 제가 들게요." 그는 함께 가는 사람의 가방 속 묵직한 짐 하나를 꺼내어 자신의 가방에 넣었다. 누군가의 짐을 나누어 함께 지는 이런 순간들에서 나는 자주 마음이 녹아내린다.


마음이 풀어질 때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난다. 여전히 얼어붙어 있던 마음 한 켠의 얼음 덩어리는 '다수의 선택과 다른 선택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며 더욱 빠르게 녹아 내린다. 곧잘 움츠려 들어 있는 나에게 건네는 다정한 한 마디,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 안아줌…. 그 다정한 몸짓과 마음을 놓이게 하는 한 마디가 나를 울린다.


내게는 그들의 언어가 이렇게 들려온다. '그럼에도 나는 너와 함께할 거야.' 누군가는 자신의 말이 어떻게 받아들여졌기에 눈물을 짓는지 당황스러워하지만, 나는 그럴 때마다 감사함의 눈물, 해방감의 눈물이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나와 함께 한다는 그 말은 실수로 인해 위축되어 있는 내 마음을 일으켜 세우고, 다시 걷게 하는 힘이 된다. '나는 네 말을 믿어.', '네 편에서 오롯이 듣고 있어.', '혼자 책임지지 않아도 돼. 같이 책임져야할 일이야.', '좀 쉬어. 있다가 같이 하자.'…. 이런 말들은 책임에 익숙했던 내게 낯설면서도 오래 갈망했던 것이었다.


최근 일하고 있는 돌봄센터 운영 과정에서 행정적 문제가 발생했다. 예상치 못한 문제 앞에서 위축되었지만, 일을 함께 해결하는 과정에서 센터를 지원하는 사무국과 마을 내 돌봄 활동가들이 이 과정을 함께 해나갔다. 자녀 돌봄을 확대하여 마을의 돌봄 문화 체계를 세워나간 분들과 함께 하는 이 과정은 기존에 내가 갖고 있던 일과 소통의 방식에 대해 다시 되짚어 보고, 배워나가는 시간들이었다.


곁에 있던 이들은 '이러면서 배우는 거지.', '뭐 이럴 줄 알고 그랬나.', "내가 무엇을 도우면 될까?"라며 격려해주었다. 함께 책임지며 나아가려는 이들을 보며 이전 일터에서는 경험해 보지 못했던 강한 연대감을 느꼈다.


이것이 한 팀이구나. 자책으로 위축될 때마다 곁에서 격려해주며, 굳어진 사고의 흐름을 새로운 방향으로 바꾸어 준다. 나에게는 굳어져 있던 사고 체계에 균열을 내는 말들로 느껴진다.


뛰어난 1인이 되어 무언가 대단한 일을 해내야만 하는 삶의 과업을 향해 홀로 내달리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과 함께 나란히 걷는 아름다운 여정을 지금 이 곳에서 경험할 수 있음이 영광이다. 내 인생 최대의 실수로 시작된 거대한 파도 앞에서 옴짝달싹 못하고 있는 나에게 그들은 곁에 와서 말한다. '잘 하고 있다. 잘 해 왔고, 앞으로도 같이 배워가며 해나가면 된다.'


속이 시끄럽던 나는 마을 동네잔치 때 모인 활동가들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미소가 번졌다. "그래. 오늘은 웃자!"하니, M(동료 활동가)이 말했다. "왜 오늘만 웃어? 계속 웃어야지!"라고 말했다. 나는 그제서야 긴장이 좀 풀렸다. 나는 그 순간조차 '내가 이 자리에 있어도 될까.'하는 생각을 떨치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런 내게 C(동료 활동가)가 말했다. "밀크티(나의 별칭)! 무슨 말이야. 넌 우리의 희망이야."라고 말했다.


그 한 마디에 무엇이 마음을 툭 건드린 건지 속수무책으로 흐르는 눈물에 나도 모르게 눈물의 의미를 설명했다. "속상해서 우는 거 아니구요. 마음이 녹아서 눈물이 나는 거예요. 안심이 되어서."라고 말하니, 농담 섞인 어투로 "아이… 그러기에는 너무 자주 우는 거 아냐?"라고 받아쳤다. 우리는 웃으며 대화를 마무리했다.


돌봄 활동가로 지내며 홀로 무거운 짐을 지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있다가도 금세 다시 벗어나는 순간들이 있다. 눈에 보이지 않게 묵묵히 제 몫을 다하는 어른들이 곁에 있기에, 아이들을 함께 돌볼 수 있다.


그래서 이곳은 책임감이 느껴지는 공간이기도 하면서, 사려 깊은 배려를 받는 곳이기도 하다. 서로가 서로를 돌보는 돌봄공동체로 작동되고 있기에, 그 힘으로 아이들을 돌볼 수 있는 것이다.


마을 돌봄의 일환인 다함께돌봄은 말 그대로 마을이 아이들을 함께 돌본다는 뜻을 담고 있다. 하지만 이는 아이들에게만 해당되지 않는다. 함께하는 돌봄 활동가들 역시 사회적 안전망으로서 마을의 돌봄을 받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내게는 이들이 나의 넉넉한 품이자 따뜻한 울타리다. 먼저 자리를 마련해주는 사람들, 그리고 그 자리를 차곡차곡 채워나가는 사람들의 격려에 힘입어 지금 주어진 나의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보려 한다.


너무도 단단했던 나의 사고에 균열을 내주는 사람들, 나는 그 균열을 아름다운 균열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그 균열을 통해 흘러나오는 눈물은 이제 나만의 것이 아니다. 함께 흘리는 안도의 눈물, 마을이 함께 나누는 감사의 눈물이다. 그런 균열이라면, 그런 눈물이라면 기꺼이 맞이하고 싶다. 얼음이 녹아 물이 되듯, 우리의 마음도 녹아 서로에게 흘러 더 너른 품으로 서로를 돌보게 될 수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