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를 빌어서라도

가슴에 묻어둔 말들

by 열매

일상이 고단해질 즈음 어느 날, ‘예의바른 시스터즈’ 라는 이름으로 저장해둔 채팅방이 울린다.

“오늘 밤 코노(코인노래방) 어떠신가요.”

“좋아요!”

“우리 아이들 재우고, 밤 9시에 만나요.”


동갑내기 세 여자 아이들의 우정으로 맺어진 엄마들과의 짧은 대화는 우리를 각 자의 추억의 노래방으로 소환한다. 세 아이들이 아침에 재잘거리며 등굣길을 나선다면 우리 세 엄마들은 고요한 밤이 되어서야 밤고양이마냥 슬금슬금 키즈스테이션에 모여든다. 간단히 안부를 나누고 설레는 마음으로 코인노래방에 도착했다. 오늘은 대기가 얼마나 있으려나…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대기인원이 없음을 알리는 의자는 빈 구석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들뜬 마음으로 챙겨온 만원을 천 원짜리로 바꾸어 동전 교환기에 차례 차례 지폐를 넣는다. ‘쨍그랑’ 동전 부딪히는 소리에 살짝 민망하면서도 신나는 마음으로 동전들을 두둑히 챙겨 빈 방으로 들어갔다.


자, 일단 만원어치 동전을 선반 위에 딱 얹어두고, 슬슬 몸풀기로 첫 곡을 예약한다. 하고 싶은 노래들이 많았지만 - 아니, 실은 노래를 빌어 하고 싶은 말들이 많았지만 – 아직 20곡만큼의 시간이 충분히 있으니 차분히 부르고 싶은 곡들을 검색해본다. 노래를 고르다 보니 이승철의 ‘말리꽃’, 박효신의 ‘야생화’, ‘눈의 꽃’, 국화꽃 향기ost 성시경의 ‘희재’, … 꽃들의 향연을 난 의식하지 못했지만 흥미롭다는 듯 한 엄마가 ‘오늘은 꽃 시리즈네.’라며 웃음을 지었다. 차분히 노래를 부르다 고음이 올라갈 타이밍이 되면 나는 마음의 준비를 한다. ‘바로 지금이야!’ 편한 발성을 위해 인사하듯 고개를 숙여 노래를 불렀다. 그런 내 모습이 너무 재미있었는지 한 명, 두 명 따라했다. ‘어? 정말 효과가 있는데?’ 하며 언제부턴가 자연스럽게 우리는 고음을 부를 때마다 삑사리 방지를 위한 인사를 깍듯이 했다. 그렇게 우리는 ‘예의바른 시스터즈’가 되었다.


그 중 한 엄마는 대학 시절 밴드부 동아리를 오래 했었고, 다른 한 엄마도 노래를 즐겨 듣고 부르는 취미가 있었고, 나도 고등학교 시절 노래선교단을 한 만큼 노래에 다들 진심이었다. 어찌보면 노래로 자신을 표현하기를 즐기던 사람들이었다. 우리가 살아온 이야기들을 속속들이 다 나눌 수는 없었지만, 5년이라는 시간동안 한 동네에 살며 자연스럽게 겪게 되는 삶의 굴곡들을 곁에서 지켜보며 함께 해왔다.

시시콜콜히 많은 말들을 하지 않지만 각자의 목소리로 전해지는 가사들을 전해듣다보면 요즘의 마음이 어떠한지를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살아오며 누군가를 여전히 원망하는 마음, 이별의 설움을 토로하는 마음, 그리운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어도 전할 수 없는 이야기들. 까마득한 앞날을 바라보며 혼란스런 마음들을 마주하고 다시 나아가리라는 의지를 다지는 마음들까지. 우리는 노래를 빌어 가슴 속 이야기들을 툭 꺼내놓곤 한다.

나는 그 속에서 때로는 터뜨리고 싶은 말들을 노래로 꺼내놓았다. 그렇게라도 마음 속 묵직한 감정과 정리되지 않은 마음들을 털어놓고, 때로는 쏟아내고 싶었다. 화내고 싶지만 소리치지 못하고,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속으로만 삼킬 수 밖에 없을 때 나는 노래를 빌어 원 없이 내 속의 뒤섞인 감정들을 쏟아내곤 했다. 그러고 나면 한결 숨통이 트였다.


생각해보면 나는 줄곧 노래를 빌어 내 마음 속 진심을 전하곤 했다. 언제부터였을까… 초등학교 6학년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첫 기억이었다. 카세트 테이프에서 들려오는 박정현의 노래 ‘편지할게요’는 좋아하는 친구에게 전하지 못한 나의 마음을 매일 같이 내 방에서 따라 부르며 허공에 전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그 당시에는 전화 오디션이 한창 유행일 때였는데, 내친김에 전화 오디션에 도전했다. 수줍음도 많고 남 앞에 서서 노래도 부르지 못하는 내게 아주 딱 맞는 형식의 오디션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신기하게도 1, 2차 전화 오디션에 덜컥 붙은 것이다. 그 이후로 현장 오디션에 갈 기회가 있었는데 워낙 들리는 소문에 사기가 많다는 말에 겁이 나 직접 가보길 시도하지는 못 했다.

그렇게 막연히 노래 부르는 가수가 되고 싶다는 꿈은 마음 한 켠에 간직하며 일상에서 끊임없이 노래 부를 기회를 찾아다녔다. 나는 기량을 맘껏 뽐낼 자신감은 없었지만 쑥쓰러워하면서도 몇 평 안 돼는 노래방 무대에서만큼은 부르고 싶은 곡들을 차근차근 예약해두는 의외의 면모가 있었다.


나는 첫 곡으로 양파의 ‘애송이의 사랑’을 선곡했다. ‘난 작고 약하지만 남는 힘이라도 모든 걸 주고 싶다’고 소리쳐 불렀다. 가사와 같이 나의 존재를 어떻게든 드러내고 싶은 마음 한 구석의 강력한 표현을 더는 숨길 수 없었던 것이다. ‘나는 약한 듯 하지만 소리 없이 강하다.’는 것을 나의 진가를 몰라주는 이들에게 전하고 싶었다. 내가 부르는 노래의 수신인은 때로는 엄마나 아빠가 되기도 했고, 함께 지내는 남편이나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이기도 했다. 가사 속에 많은 의미들을 꾹꾹 눌러 담아 목소리를 통해 전하는 나의 이야기가 나에게만 들리는 메아리가 되길 원치 않았다. 나의 노래를 듣는 사람도 나의 속 마음을 조금이라도 알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줄곧 노래를 불러온 것이다.


그러한 마음으로 나는 오락실 한 켠에 있는 코인 노래방을 학교 친구들과 함께 가기도 하고, 좀 더 커서는 교회 친구들과 노래방을 찾아가곤 했다. 어찌보면 내 인생에서 노래방은 내게 탈출구이자 숨통이었다. 그 시절의 나는 참으로 외롭고 한 걸음 한 걸음이 무겁게 느껴졌다.


삶의 고단함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엄마의 내 이름을 건 일터 ‘송희네 슈퍼’는 늘 쉴틈없이 북적여서 피곤했다. 고부간의 갈등에 새우등 터질까 술에 의지해 비틀거리며 들어오는 아빠의 흔들리는 삶을 보는 나는 늘 불안했다. 게다가 엄마를 구박하면서 본전도 못 찾는 할머니를 보는 내 마음은 혼란스럽기 그지없었다. 난 그런 할머니가 매일 대충 걸쳐 입는 몸빼 바지처럼 참 허술해 보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짠하게 느껴졌다. 다들 먹고 살기 위해 열심히 살아가지만 전혀 행복해 보이지 않는 어른들의 그늘에서 해방되는 순간이 내게는 노래하는 순간이었다. 노래로 말하고, 노래로 울부짖었던 것이다.


그렇게 나는 세 엄마들과 함께 노래하는 자리에서 그 시절의 노래에 담긴 나의 시절을 만났다.

분주히 발걸음질 하다가 잠시 머무르는 순간이 되어서야 깊이 밀어두었던 슬픔과 그리움을 마주했다. 우연히 들은 노래 한 곡이 너무도 내 마음 같아서 잠시 머무르게 되는 노래가 있다.

곱씹고 또 곱씹다가 어느새 숱하게 찾아 헤매이던 내 깊은 마음을 마주하게 되는 노래 말이다.

꾸역꾸역 참 깊이도 숨겨두었던 내 마음을 들켜 버린 것만 같아서 옴짝달싹 못 하게 하는 그런 노래들이 있다. 바로 ‘바람의 노래’가 그렇다.


바람의 노래(원곡: 조용필)


살면서 듣게 될까 언젠가는 바람의 노래를

세월가면 그때는 알게 될까 꽃이 지는 이유를

나를 떠난 사람들과 만나게 될 또 다른 사람들

스쳐가는 인연과 그리움은 어느 곳으로 가는가

나의 작은 지혜로는 알 수가 없네

내가 아는 건 살아가는 방법 뿐이야

보다 많은 실패와 고뇌의 시간이

비켜갈 수 없다는 걸 우린 깨달았네

이제 그 해답이 사랑이라면

나는 이세상 모든 것들을 사랑하겠네



노래가 가슴 깊이 파고 들어 아리고 아린 이름들이 떠올랐다. 이제는 한 번 읊조리는 것으로는 부족해 외치고 또 외쳐 불러 보는 노래가 되었다. 너무도 내 마음 같아서 이 노래를 빌어 내 마음을 터뜨려 보고 싶게 만들어 버리는 노래… ‘나의 지혜로는 다 알 수 없지만 내가 아는 건 살아가는 방법 뿐’이라는 것, ‘보다 많은 실패와 고뇌의 시간을 최대한 비켜가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을 마주하며 깨닫는 과정에 서 있지만, 지금은 누군가의 노래를 빌어 되내이고 내뱉는 이 마음들을 언젠가 나의 삶의 언어로 고이 담아 내어놓는 찬란한 순간들을 그려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