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화해할 건데, 왜 싸우는 거야?

딸의 팩폭과 침대 위 랩 배틀

by 열매

신앙공동체 모임을 마치고 신발을 신던 다른 가족의 딸 아이가 말했다.


"엄마, 내일 삼촌(남편)이 나도 삼촌 언니 갈 때 같이 자유 수영 같이 가자고 했어."


"엥? 너 감기 걸렸잖아."


"앗? 그래? 감기 걸린 것 삼촌이 몰랐어."


딸 아이 엄마가 옆에서 거들어 말했다.


"딸아. 안 돼. 너 오늘 아파서 쉬었잖아. 내일은 집에서 쉬어. 지난 주 금요일도 열나서 수영 못 갔었잖아."


나도 한 마디 더 거들었다.


"그러게. 좋다 말았네. 귀요미 아프니까 내일은 푹 쉬고, 월요일에 건강히 학교 가야지. 우리 다음 주 주말에 꼭 같이 가자."


"힝. 나 이미 언니랑 같이 가기로 약속 했단 말야."


딸 아이 엄마가 말했다.


"딸아, 약속은 엄마랑 먼저 상의를 하고 정해야지."


아쉬운 발걸음을 하며, "우리도 내일 못 갈 수도 있어. 시원아." 하고 집으로 돌려 보냈다.



문이 닫히자 마자 나는 남편에게 한 마디 던졌다.


"귀요미 아프다고 말했는데, 괜히 말해가지고."


"나도 몰랐지."


"어? 그럼 동생 못 가면 나는 어떻게?"라고 말하는 딸에게,


"그럼 내일 아빠랑 같이 가면 되지."


"그럼 아빠는 어디에 있어? 수영장에 혼자 들어가는 거야?"


"아니. 아빠랑 같이 놀면 되지."


아빠는 내일 상황을 보자고 말했다.


"엄마도 같이 가면 안 돼?"


"엄마는 요즘 계속 어지러워 수영은 무리일 것 같은데. 어쩌지."


"아빠가 같이 들어가 놀아주면 안 돼?"


아빠 반응이 뜨뜨미지근 했다. 그 때만 해도 무엇이 문제인지 몰랐다.



방에 들어가 누운 남편에게 말을 걸었는데, 영 반응이 시원치 않다.


"여보. 기분이 왜 그래?"


"아니. 둘이 같이 놀라고 하려 했는데, 그 아이가 못 가면 아빠랑 가라고 하면 그냥 되는 거야?"


같이 가고 싶어하던 아이가 못 가게 되자, 나는 수영을 쉴 생각도 없이 '아빠랑 가면 된다.'고 단정해버렸다.


남편의 빈정이 상한 모양이다.


나도 모르게 억울함이 밀려왔다.


'아니. 난 하루 종일 남편 출근하고, 신앙공동체 모임을 처음부터 끝까지 마무리하느라 힘들었는데.

내일 하루 딸이랑 자우수영 가는 게 그렇게 아까운가?'


'딸이 다른 아이랑 같이 놀면 자기는 안 들어가도 되는데, 아는 동생이 못 간다 하니까 수영 자체를 포기하려 했던 건가?'


생각할수록 괜히 괘씸했다.


평소 남편은 효율을 중시한다. 딸과의 시간도 그런 식으로 여기는 것일까? 자신의 시간이 더 소중한 것일까? 서운함이 몰려왔다.


나는 함께 하는 시간에 공들여 추억을 쌓고 싶어 한다. 반면 남편은 자신의 컨디션에 맞게 조금 더 편하게 결정한다. '여러 상황을 고려해 신중히 결정하는 나'와 '일단 던져보고, 안 되면 어쩔 수 없지 하는 남편.'

우리의 성향이 부딪힌 것이다.


결국, 다툼의 시작은 딸의 자유 수영을 데리고 간다고 했다 번복하기를 실패한 남편의 시큰둥함이었다.

아니, 사실은 나와의 시간 혹은 딸과의 시간에 좀 더 마음을 기울여주었으면 하는 나의 기대와 쉼이 필요했던 남편의 기대가 맞부딪힌 것이었다.


사실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말하거나, 상대에게 먼저 요청하지 못 하고, 으레히 짐작하고 결정한 것이라 소통이 뒤엉켜버린 것이었다.


서로 기분이 상하니, 정작 하고 싶은 말 대신 서로를 탓하는 말들을 얼굴도 보지 않으며 언성이 높아졌다.

"이제 그만 해."


속상해하는 딸을 안고 방으로 들어가 버리는 뒷모습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말하다 안 통하면 들어가버리는 저 회피 기질, 또 시작이야. 지긋 지긋해.'


나는 나의 분노를 데리고 우주 끝까지 내달렸다. 반복되는 레파토리처럼 나 홀로 헤어질 결심이라도 하듯이 저 멀리 아주 내달리다 못해 상상 속에서는 가슴 속 숨겨둔 아내 사표를 꺼내 들기 직전까지 갔다.


화를 씩씩 내며, 마음 속으로 '내가 요즘 왜 숨이 턱턱 막히는데. 내가 왜 힘든지도 모르면서! 너 때문이다, 아니, 돈 때문에 내가 이토록 삶이 힘겹다!'라고 수없이 외치고 있는 날 발견했다.


나를 이해 못 해주는 상황을 만날 때면, 내 속에서는 '나는 그보다 더 큰 것도 널 이해해줬는데 넌 아직도 그것과 무관하게 너 화내고 싶은 대로 내는 거야? 또 잊은 거야? 내가 네게 어떻게 했는지, 아니 네가 내게 어떻게 했는지?'하는 복수심이 불타오른다. 이 또한 반복되는 레파토리.


그러다 화가나 잠시 열었던 페이스북에서 '부부가 서로 지켜야할 기본예절'이라는 어느 상담 전문가의 글을 마주했다. 한 줄 한 줄 읽다가 '아 왜 하필 이 타이밍에 이 글을 만난 거야, 속 불편하게.'

그러다 마음을 가다듬으며 한 줄 한 줄 읽어 내려갔다.




부부가 서로 지켜야할 기본예절


건강한 관계란 '나도 좋고 너도 좋은 관계'를 말합니다. 커플관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서로 좋아서 결혼한 사이가 왜 시간이 지날수록 상처로 얼룩지고 불행한 관계가 되고 말까요? 심리학자들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행복한 커플과 불행한 커플의 차이는 의사소통과 상호예의에 달려있습니다. 즉, 행복한 부부는 좋은 의사소통과 공생을 위한 부부간 예절을 지키는데 비해 불행한 부부는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고 기본적인 예절조차 지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부부예절이라고 하니 너무 고리타분한가요? 그러나 심리학 연구에 의하면 부부끼리 지켜야할 예절에 대한 기본교육만 이루어지더라도 부부갈등은 크게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다음은 심리학자들의 연구결과를 바운더리 심리학 관점에서 풀어쓴 부부간 지켜야할 기본예절입니다.


1. 상대방의 제안에 대해 관심부터 보여라. 예를 들어, 배우자가 영화보러 가자고 하면 "뜬금없이 뭔 영화야!"라거나 "난 피곤해. 당신 혼자 가든지..."라는 식으로 반응하지 말고 일단 "무슨 영화가 보고 싶어?" "영화보는 것 좋은데 오늘은 너무 피곤하네. 내일 갈까?" 등으로 관심부터 보이는 것이 필요하다.


2. 상대가 가정을 위해 일을 할 때는 마음에 안들더라도 일단 긍정하라. 만일 배우자가 설겆이나 청소를 하는데 마음에 안든다고 해보자. 그렇더라도 활동 중에 "이것 좀 봐. 잘 헹궈야지." "바닥을 제대로 닦아야지." 등 지적하지 말라. 수고한다는 말을 하면 좋고, 억지로 좋은 말이 나오지 않는다면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말라. 상대는 가정을 위해 무언가를 하는데 지적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3. 사람이 들어오고 나갈 때는 서로 인사를 하라. 아무리 싸웠더라도 사람이 들어오고 나가면 시늉이라도 "왔어." "갔다와" '다녀올게' 등 기본적인 인사는 주고받는다. 그것이 같이 사는 사람의 예의다.


4. 원하는 것은 직접 말하라. 원하는 것이 있는데도 자꾸 돌려말하거나 상대를 위하는 척 이야기하는 것은 좋지 않다. 당신은 상대가 알아서 다시 물어봐주기를 원할지 모르지만 이는 의사소통을 자꾸 꼬이게 만들 뿐이다. 예를 들어, 고기가 당긴다고 하면 고기 먹으러 가자고 이야기하는 것이 좋다. 굳이 상대에게 "뭐 먹고 싶지 않아?" "난 괜찮아. 당신 먹고 싶은 걸로 먹자고. 뭐 먹을래?"등으로 돌려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


5. 지시하거나 가르치려고 하지 말라. 부부는 수평적 관계이다. 상대에게 원하는 게 있으면 요청하라! 가능하면 "이렇게 해!"라고 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것 좀 해줄 수 있어?"라고 부탁하라.


6. 싸우더라도 잠은 같이 자라. 등을 돌리더라도 한 침대에서 자는 것이 예의이다. 마음은 멀어지더라도 몸은 먼저 화해를 원한다.


7. 다른 사람 앞에서 배우자를 존중하라. 존중하기 힘들다면 적어도 남들 앞에서 흉을 보거나 듣기 싫어하는 단점은 이야기하지 말라.


8. 자신의 중요한 일에 대해 가장 먼저 배우자에게 말하라. 다른 사람으로부터 배우자의 중요한 이야기를 듣는 것 만큼 비참한 일은 없다.


9. 가끔씩 자녀 이야기 말고 배우자의 하루에 대해 물어보라. "오늘 어땠어?" "오늘 뭐했어?" "오늘 무슨 일 있었어?" 형식적인 질문이 중요한 게 아니라 배우자의 생활에 대한 궁금함을 갖는 것이 예의이다.


10. 상대가 힘들어 할 때는 배우자의 편이 되어주라. 잘 해주기 힘들다면 그냥 옆에라도 있어주라. 옆에 있어주기 힘들다면 적어도 "그게 뭐가 힘드냐!" "그러게 내가 뭐랬냐!" "너만 힘드냐!"는 비난 식의 표현은 하지 않는다. 힘들 때 비난하지 않는 것은 부부간의 최소한의 예의이다. 정 할말 있다면 힘든 시기가 지나가고 차분해질 때 이야기하라.

□ 출처 : 문요한 마음연구소

□ 참고도서 <관계를 읽는 시간>




절대로 용서하지 않으리라 했던 다짐도 결국 오래가지 못하고, 어느 새 난 머릿 속으로 타이핑 치듯 할 말을 떠올렸다.


'어떻게 운을 떼어야 할까? 그래. 내가 너무 과했어. 딸에게도 엄마가 어른답지 못 했어. 언성 높여서 미안해.'


그렇게 일어나 남편에게 가려고 마음 먹자마자 남편이 먼저 문 앞에 서서 멋쩍은 미소로 내게 다가온다. 우린는 찰나의 눈맞춤 후 동시에 "여보, 미안해."라고 말했다.


서로 "으이구." 하며, "내가 좀 과했어. 내가 언성 높여서 미안해."하는 남편의 말에 "나도 너무 과했어. 미안해. 다음에는 필요한 것을 먼저 요청해볼게."라고 나도 이어서 말했다.

그러고선 둘 다 딸에게 다가가 셋이 꼭 껴안으며 "딸에게도 미안해. 엄마 아빠가 네 자유 수영 가는 일로 다툰 게 아냐. 혹시 너 때문이라고 자책하지 말았음 해. 엄마 아빠가 아직 부족함이 많아서 더 노력하며 연습해 볼게. 놀라게 해서 미안해. 예쁜 마음 상처 입지 말아라."라며 마음을 쓰다듬어 주며, 안아주었다.

그렇게 서로를 간지럽히며 우리의 다툼은 이렇게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지어졌다.




한 바탕 웃다가 금세 잠이 든 남편을 뒤로 하고, 딸과 둘이 침대에 누워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예쁜아. 아까 많이 속상했지? 우리 이쁜 딸."


머리를 쓰다듬어 주니, 딸이 한 마디 한다.


"그런데 어차피 화해할 건데, 왜 싸우는 거야?"


앗, 팩폭을 한 바탕 맞아 버렸다.


속으로는 '그러게.' 했지만, 한 편으로는 아이의 언어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그 질문은 마치 '약을 왜 발라? 안 넘어지면 될 것을."이라고 들리는데?"


처음에는 딸이 "응?" 하고 갸우뚱 하길래,


"그러면 너무 좋지. 그런데 가끔 사랑하는 사람 끼리도 서로 앞을 보지 않고 너무 빠른 속도로 달려가다 보면 마음이 쾅 부딪힐 때가 있어.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상처가 나기도 해.


사실 엄마, 아빠도 실수할 때가 많아. 그래서 서로 인정하고, 화해하며 서로 상처난 마음에 약을 발라 주는 거야."


그러자, "아하?" 라며 웃으며 반응했다.


그래서 한 마디 더 했다. "서로의 마음이 너무 자주 부딪히지 않도록 잘 살피면서 걷도록 엄마가 노력해볼게."


그러자, 딸은 잘 하고 있다는 듯 내 목을 두 팔로 감싸며 꼬옥 안아준다.


그러면서 오늘 있었던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나누며, 뜬금없이 10살 딸이 말했다.


"엄마. 나 랩 잘 해. 랩퍼 하고 싶기도 해."


"오, 그래? 어디 한 번 해봐!"

궁금해 하며, 기대하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그러자, 딸은 "엄마를 주제로 랩을 만들어 볼게."


"(랩 버전) 엄뫄는 눈이똥글, 뫄음은 아름다워!. 어쩌구 저쩌구 저쩌구, 예!"


내가 깔깔 대고, 오 잘 하는데? 하자, 딸이 나더러 해 보란다.


"우리 딸 귀. 엽. 고! 깜찍 하- 고! 너무 예쁘구yo!"


"오! 엄마도 더 잘 하는데? 왜 잘 해?"


그러다 깔깔 대고 웃다 빼꼽을 찾아 나서듯 우리 둘은 데굴 데굴 굴렀다. 그 다음은 친구들 한 명 한 명의 특징을 잡아서 랩을 짓거나, 아빠의 모습, 좋아하는 라면, 자기가 하고 싶은 네일아트, 염색 등을 가사에 넣으며 넌지시 자신의 마음을 표현했다.


그 중 기억나는 가사는 '나는 네일 아트도 하고 싶고, 머리 염색도 하고 싶은데 엄뫄는 안 된다고만 해. 나는 언제까지 견딜 수 있을꽈!' 였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겠지만 자연스럽게 랩을 지으며 이야기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자신의 마음에 원하는 것을 담아 표현하게 되니 딸의 마음을 좀 더 알 수 있었다.


나는 딸에게 말했다.


"딸아. 맞아. 음악은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수단이 되기도 해.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담아 부르는 거지. 딸도 잘 표현하고 있네."


그렇게 한참을 침대 위 누워서 하는 랩 공연에 이어 연기까지 이어가며 웃음을 참느라 혼이 났다.


"엄마는 연기도 잘 하네? 왜 이렇게 잘 해? 진짜 같아."


"엄마는 10년 간 돌봄 선생님하고, 그 다음 10년은 작가를 할 것이고, 그 다음 10년에는 연기를 한 번 도전해 볼 거야."


딸이 "와. 진짜? 진짜야?"하며 거듭 묻는다.


나는 말했다. "그럼! 못 할 게 뭐야? 딸도 계속 꿈꿔 봐. 포기하지 말고 도전해봐. 같이 해 보자! 재미있을 것 같아!"


딸이 신기한 듯 환하게 웃으며 "정말?엄마 진짜 연기할 거야?"하고 다시 한 번 확인했다.


한참을 이렇게 딸과 랩을 주고받으며 놀다 보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생각해보면 아까 우리의 갈등도 별 것 아니었다.

남편은 그냥 하루 쉬고 싶었던 것이었고, 나는 가족이 함께 시간을 보내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 뿐이다.

그것을 직접 말하지 않고 서로 눈치만 보고 지레 짐작하다 생긴 오해였던 것이다.


'아, 남편이 시큰둥했던 건 그냥 쉬고 싶어서였구나.'

금세 곯아 떨어진 남편을 보니, 이제야 이해가 됐다.


딸이 랩으로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고 재치있게 표현하는 것을 보니, 우리도 이렇게 서로의 마음을 좀 더 솔직하고 유머러스하게 표현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일은 남편과 랩으로 대화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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