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이 남을 이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의 가치를 드높이기
위한 경쟁이 될 때
승자와 패자에 상관없이
경쟁은,
큰 가치와 의미를
선물하게
되는 것이다
생을 포기하는 일은 매우 쉽다. 우리는 누구나 힘든 일이 닥치면 가끔씩 복잡한 생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도 한다. 그러나 막상 생을 끝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힘겨운 일에 못 견뎌 죽음을 생각하다가도 막상 죽음 앞에 서게 되면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두려움에 자신의 판단을 되돌아보게 된다. 죽음은 단순하게 생명이 끝나는 것을 넘어 관계의 영원한 단절을 의미하며 더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느끼고 호흡할 수 없는 완전한 소멸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10년 넘게 상위권에 위치해 있다. 하루 평균 인구 10만 명당 약 25∼30여 명의 소중한 생명이 자살이라는 극단적 방법으로 삶을 마감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이러한 수치는 좀처럼 줄지 않고 OECD 평균 자살률의 2배를 넘는다. 10, 20대를 넘어 고령층 사망 원인 1위가 자살이라고 하니, 우리 사회에 억눌린 아픔의 흔적이 그 어느 나라보다도 심각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더욱더 견딜 수 없는 것은 객관적으로 우리 사회를 들여다보면 이러한 수치가 그렇게 놀랄만한 수치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태어나자마자 경쟁의 수레바퀴 속에 갇혀 한평생의 삶을 보내게 된다. 유아기, 아동기, 청소년기 대부분을 오로지 성적과 점수, 경쟁의 승자가 되기 위해 싸워야만 한다. 그리고 그 경쟁의 방식은 대부분 1등을 위해 다수의 패배자를 양산해 내는 엘리트를 뽑기 위한 경쟁이다. 따라서 많은 학생이 자신의 능력과 가치, 개성 등을 알기 전에 성적이라는 잣대에 억눌려 패배자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존재 가치를 한없이 낮게 바라보면서 ‘별로 중요하지 못한 사람’이라는 낙인을 찍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잘못된 교육이 변하기 위해서는 먼저 사회 인식, 사회적 가치관 등이 변해야만 한다. 사회는 여전히 경쟁 위주의 가치관을 제일의 덕목으로 삼고 그 기준대로 돌아가고 있는데 교육만 협동적 시스템을 구축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반드시 실패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회가 먼저 사회적 약자를 고려하면서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적 질서를 구축하기 위해 경제, 정치, 문화적 측면에서의 노력을 기울여야만 한다. 그리고 서열 중심의 대학구조가 개편되어야만 한다. 일류대, 이류대, 삼류대, 지방대라는 잘못된 구조와 시스템이 무너져야만 학교 교육은 정상화 될 수가 있다. 이 시스템이 무너지지 않으면 그 어떤 교육정책도 성공할 수가 없다.
한때 학생들의 가치, 개성을 존중하는 교육을 실현하기 위해 세워진 그 수많은 대안학교가 이제는 거의 다 사라지고 소수의 몇몇 학교마저 존속이 어렵게 된 이유는 바로 이러한 위계적 서열 구조 및 경쟁적 사회 시스템을 변화하지 않고 교육개혁만 이루려고 했기 때문이다.
명문학교란 무엇일까? 오늘날 명문학교의 기준은 일류대 숫자와 직결된다. 아무리 학생들이 즐겁고 행복한 학교생활을 한다고 해도 일류대 숫자가 제로일 경우 그 학교는 명문학교가 될 수 없다. 따라서 모든 학교는 오직 일류대 숫자에만 목숨을 건 채 진로진학지도를 하게 된다. 교사의 가치, 학교의 가치는 오직 일류대 숫자에만 달려있다. 이것이 현재 우리 교육의 현실인 것이다.
학교는 배움의 공간이자, 삶의 가치를 함께 공유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이다. 따라서 학생들은 학교에 와 선생님과 함께 긴 시간을 함께 하는 것에 대해 보람을 느끼고 가치를 배워야만 한다. 그런데 교사나 학생 모두 좀처럼 학교라는 공간 속에서 삶의 가치를 찾지 못한다. 학생은 단순하게 이 과정을 거쳐야만 사회에 나갈 수 있기에 필요한 통과의례 정도로만 생각하고, 교사는 참된 가르침의 가치를 벗어나 직장의 통상적 의미로만 학교를 바라보게 된다. 상호의존적 연결고리가 아니라, 각자도생을 위한 일방향의 질서로 가고 있는 것이다.
경쟁 중심의 사회는 효율성 측면에서는 다소 앞서갈 수 있지만 상생의 구조를 파괴한다는 무서운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또한, 경쟁으로 인한 효율성은 집단적 협동으로 인한 효율성을 결코 넘어서지 못한다. 따라서 우린 단순한 경쟁 중심의 구조를 벗어나 상생의 구조 속에서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방안에 대해 늘 모색해야만 한다.
그런데 그 첫출발점이 되는 학교교육에서부터 이러한 경쟁 중심의 구조가 아이들의 정신을 온통 갉아먹고 있는 것이다. 1등 속에는 오직 자기밖에 없다. 아니, 1등이 되기 위해서는 그렇게 자기만 생각해야 된다는 환경이 그러한 기준에 매몰시켜 버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각박한 생존의 문턱에서 남을 고려하다 보면 자연히 뒤처지게 되고 본인 또한 낙오자의 대열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대학은 공부할 사람만 가면 된다. 상아탑이라는 것은 학문적 탐구에 목마른 사람이 가서 열심히 공부하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음악, 미술, 춤, 운동, 기술, 제과제빵, 미용 등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그 분야의 일을 찾아 자기의 가치를 드높이는 삶을 살아가게 해주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중요한 것은 '대졸, 고졸, 중졸'이라는 무서운 차별 구조가 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대졸이라는 그 잘못된 학력 병이 남아 있는 한 오늘도 수많은 아이가 교실에서 듣기 싫은 국어, 영어, 수학 등의 수업을 들으며 부정적 자아상만을 지속적으로 만들어 가게 되는 것이다.
1교시에서 7교시까지 하루종일 잠만 자다 종례 시간에 맞춰 돌아가는 학생들의 쓸쓸한 뒷모습을 이제는 책임 있는 자세로 어른들이 돌봐줘야 하는 절실함이 우리 곁에 다가온 것이다. 춤추는 아이, 노래하는 아이, 그림 그리는 아이, 공만 차는 아이도 학교에서 자기의 자존감을 높이며 공부 잘하는 아이처럼 동등하게 존중받는 학교 풍토를 만들어 가야지만 우리 교육이 살 수가 있는 것이다.
잘못된 기성세대의 가치관과 인습 때문에 변화하는 아이들의 미래를 망가트려서는 안 된다. 만약 이대로 교육이 지속된다면 더는 대한민국 교육에는 미래가 없다. 개혁과 혁신의 수준을 넘어 총체적인 변화의 물결이 사회 전반에서 일어나야지만 아이들이 살 수 있고 그래야만 10대, 20대 사망률이 1위라는 불명예의 수치를 조금이라도 낮출 수 있는 것이다.
학교에서 공부를 못해 패배자로 낙인찍힌 아이들은 이미 긴 시간 동안 자존감에 큰 상처를 받았기에 성인이 되어 학교를 벗어나게 되면, 좀처럼 자신이 하는 일에 큰 자부심을 갖지 못하고 사회의 아웃사이더가 되어 외롭게 살아가게 된다. 이미 공부라는 경쟁을 통해, 대학이라는 서열구조를 통해, 본인의 개성과 가치, 능력을 발휘하기도 전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자아’로 사회에 나오게 되는 것이다. 또한, 무너진 자존감을 극복하고 자신의 개성을 살려 멋진 삶을 살아보려고 해도 좀처럼 사회에 넓게 퍼진 편견을 극복하지 못하는 두려운 환경에 처하게 된다. 그리고 사회는 학교의 구조보다 더욱더 철저하게 경쟁구조가 되어 있다 보니 패배자로서 긴 시간을 경험해온 많은 사람이 경쟁의 늪에서 좀처럼 행복과 웃음을 찾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러한 경쟁 심리는 부, 권력 등과 연결되어 승자가 되기 위해서는 무한정 부와 권력을 쌓아야 한다는 강박 증세를 유발하게 된다. 요즈음 우리 사회에 문제가 되고 있는 아파트 갭투자, 부당상속, 고위층의 호화로운 생활 등은 이러한 사회구조의 잘못된 모습을 드러낸다고 볼 수 있다. 수많은 사람이 살 집이 없어 반지하, 옥탑방 등을 전전하면서 하루하루 머물 곳을 걱정하고 있는데 누군가는 수백 채의 집도 모자라 또다시 계속해서 아파트를 매집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수조 원의 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재산을 증식하기 위해 부정한 방법을 총동원해 재산의 숫자를 늘려가는 것이다. 이러한 구조는 마치 학교에서 봐온 소수의 승자와 다수의 패배자라는 구조가 지속화되는 모습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사람들은 좀처럼 희망을 찾지 못하고 지속적 절망과 고통 속에서 마지막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이다. 관계의 단절과 자존감의 상실, 부와 권력화의 사생아가 되어 자본주의 절벽 끝에서 마지막 생의 안타까운 숨결을 울부짖게 되는 것이다.
경쟁에 길들어져 살다 보면, 주변에 존재하는 사람들이 단순하게 경쟁의 대상자로만 다가오게 된다. 그러면서 상대방을 통해 느낄 수 있는 공감과 소통의 공간을 찾지 못하고 홀로 긴 길을 가야 하는 막막한 두려움에 빠져들게 된다. 사람은 많고 관계는 넘쳐 늘 분주하지만, 진정으로 내 안의 나를 돌봐줄 영혼의 쉼터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다른 것 보지 말고
너만 보고
너만 생각하며
달려가라고 말한다
그것만이 최상의
선택이고, 최상의
삶이라고
그러다 그렇게
나만 보고
나만 위해 달려가다
네가 그리운 날에는
무엇을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