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입의 함정

by 문객

답답한 일상 속에

무료한 삶 속에

어딘가 의지할 곳

머물 곳을

찾고자 하는 것은

당신과 나의

삶이자 숨결이니

흔들린다고

잘못된 곳에 머물게 되었다고

바닥에 너무

깊은 슬픔을 토해내거나

주변을

원망하지 않기를



무료한 일상이 지속되다 보면 우리는 왜 무언가에 몰두할 곳을 찾게 되는 것일까? 무료하다는 것은 어쩌면 가장 고요하고 행복한 순간이 될 수도 있는데, 사람들은 늘 무언가 재미있는 일을 찾게 된다. 그런데 재미있는 일에는 자신의 삶을 파괴하는 것과 빛나게 하는 것이 있다. 자신의 삶을 파괴하는 재미는 보다 급진적이고 파격적이며 사람들을 순간적으로 끌어들이는 강한 흡인력이 있다. 반면에 자신의 삶을 빛나게 하는 재미는 오래된 인고의 과정이 필요하며 지속적인 노력과 성장을 이루기 위한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하다. 이러한 이유 때문일까? 사람들은 후자의 재미보다는 전자의 재미에 쉽게 빠져든다.



즐길수록 자신의 삶을 파괴하는 재미는 중독 성향을 지니고 있다. 인간의 몸은 쾌락적 자극에 상당히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구조화되어 있다. 술이 주는 쾌락, 담배가 주는 이완, 도박과 게임이 주는 몰입과 흥분, 성적 욕구 충족에 대한 집착 등이 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중독은 ‘특정 행동이 건강과 사회생활에 해가 될 것임을 알면서도 반복적으로 하고 싶은 욕구가 생기는 집착적 강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렇게 몇 번 만에 중독이 될까? 어떤 행동이 즐거움을 주면 그 행동을 반복하고 싶은 욕구가 강화된다. 이를 동기 강화라고 하는데, 이는 뇌 변연계(limbic system)의 중변연 도파민 시스템(mesolimbic dopaminergic system)의 보상 관련 학습으로 이루어진다. 해부학적으로는 배쪽 피개 구역(VTA, ventral tegmental area), 측위 신경핵(nucleus accumbens) 및 이 둘을 잇는 도파민 섬유소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이곳을 자극하는 물질이 들어오면 강화는 더욱 강렬해진다. 코카인과 같은 중독성 물질은 이곳에 직접적으로 작용하여 흥분감과 다행감을 느끼게 하고 행동의 강화를 부추긴다. - 멈출 수 없는 즐거움을 어떻게 멈추지? - 중독 (청소년을 위한 정신의학 에세이, 하지현, 신동민)에서 인용함.



유희적 존재로서 인간이 즐거움을 찾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인간의 본성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문제는 감각적 욕구 충족에 따른 즐거움에는 본인조차도 통제할 수 없는 무서운 함정이 늘 함께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러한 욕구, 욕망 충족이 거대한 자본 축적의 수단이 되면서 사람들은 부와 욕구 충족을 함께 만족시킬 수 있는 다양한 쾌락의 매체, 방법, 도구 등을 고안하고 개발해 온 것이다. 이러한 것들은 때때로 사람들에게 즐거움의 범위를 넘어서 더는 돌아올 수 없는 절망과 좌절, 슬픔을 주기도 한다.



코로나19의 시대적 암울로 인하여 사람들이 밖에서 다른 사람과 어울리는 소통의 시간은 줄어들고 집에서 혼자 하는 시간은 늘어만 가고 있다. 이렇게 혼자 하는 시간이 늘어갈수록 사람들은 쉽게 무료함에 빠지게 되고 이러한 무료함을 달랠 수 있는 무언가를 찾게 된다. 그러다 보면 쉽게 빠져드는 것이 술, 게임, 도박 등이 될 수 있다. 코로나19로 다른 업체들은 불황기를 겪고 있는 상황인데 게임업체 등은 호황기를 누리고 있다. 초등학교 아이들부터 시작해 어른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이 게임에 몰두하고 있다. 게임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지만 문제는 지나치게 게임에만 몰두해 본인이 해야 할 다른 일이나 가치 등에 대해서는 점점 무감각해진다는 데 있다.



게임에 집중하는 아이들은 활자매체가 주는 글에 집중하지 못하게 된다. 가상현실, 증강현실로 무장한 다차원 세계 속에서 질 높은 음악과 영상에 길들어진 아이들은 좀처럼 하얀색 바탕 위에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하는 글자 앞에 즐거움을 찾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게임을 끄고 책을 읽는 순간 책은 그저 답답하고 지겨운 수면의 대상으로 다가서게 되는 것이다. 또한, 요즈음 게임은 소비자들을 지속적으로 게임 속에 머물도록 하기 위해 연속성을 바탕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추억의 오락실에서 행했던 단판 게임은 사라지고 늘 언제 어디서나 지속적으로 그곳에 머물도록 다양한 장치를 해 놓은 것이다. 따라서 특정 게임에 한 번 빠져들게 되면 때때로 몇 년씩 그 게임과 함께 하게 된다.



즉, 소리 없이 조금씩 중독의 사슬을 마음의 영혼 속에 뿌려 놓게 되는 것이다. 무언가에 집중하게 만드는 게임이 꼭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곳에만 몰두하게 만드는 상업적 그늘과 시스템은 부의 축적 이외에 게임의 긍정적 효과를 드높이는 방안에 대해서는 잘 묻지 않는다. 좀 더 즉흥적이고, 좀 더 쾌락적이고, 좀 더 지속적이고, 좀 더 많은 돈을 소비하는 게임 개발에만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일까? 인기를 얻기 위한 대부분의 게임은 폭력성과 잔인성이 매우 강하다.



폭력적 게임을 많이 하는 아이들은 자연적으로 내면에 더 많은 폭력성을 지니게 된다. 가상현실이지만 누군가에게 총을 쏘고, 칼을 휘두르고, 정신없이 공격하는 주체가 되어 끊임없이 게임을 하다 보면 현실 세계와 가상현실 간의 이성적 구분과 판단은 모호한 상황에 빠져들게 된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될 경우 폭력적 게임에 중독된 아이들은 현실 속에서 답답한 환경을 만나거나 부정적 상황에 처할 경우 폭력적 게임의 일부를 떠올리면서 그 행동과 동일시된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술도 마찬가지다. 특히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보다 유독 술에 대해서만큼은 관대한 예찬론자가 많다. 술로 인해 하루 평균 15명이 죽고 사회적 비용이 10조원을 넘을 정도로 폐해가 심각함에도 불구하고 술은 여전히 인간관계에 있어서 필수적인 소비 수단이 되고 있다. 대검찰청 통계에 의하면 살인과 강도, 강간 등 강력 흉악범죄의 30% 이상이 음주 상태에서 발생한다고 한다. 또한, 질병관리본부에 의하면 응급실 손상 환장 심층 조사 결과 자살이나 자해를 하는 환자의 40% 이상이 음주와 관련이 있다고 한다. 이러한 통계는 술 소비량과도 직결되는데, 국세청에 따르면 국민 1인당 연간 알코올 소비량은 8.7 리터에 달하고 이것은 소주로 115병, 맥주로는 348캔에 해당되는 것이라고 한다.



우리 사회에서 술은 식(食)문화 속에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수단이다. 때때로 이러한 술 문화는 관계를 회복하고 사람들 간의 친목 도모와 에너지를 충전하는 데 긍정적인 효과로 작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마시고 죽어보자는 식의 술 문화’가 문제다. 우리는 술을 처음 마실 때부터 술이란 취해서 정신을 잃고 잃은 정신으로 관계를 맺고 사람을 대하는 것처럼 배우게 된다. 그렇게 반 즈음 정신을 잃고, 잃은 정신 속에서 서로에게 기대는 것 자체가 공감적 술 문화로 인식되어온 것이다. 그러는 사이 많은 사람이 술 중독에 빠지고 음주운전으로 인한 교통사고, 범죄 등 혹독한 사회적, 경제적 비용을 지불하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하여 혼자 술 마시는 혼술족이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 혼자 먹는 술일수록 더 많이 먹게 되고 더 급하게 취하며 더 빨리 알코올 중독에 빠질 확률이 높아진다고 한다. 술로 관계를 맺고 술로 문제를 해결하고 술로 무엇을 해야지만 가능한 사회는 결코 건강한 사회라고 볼 수 없다. 술은 다만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원만하게 하는 작은 수단이 되어야 하지 술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도박의 문제도 심각하다. 요즘엔 스마트폰 기술이 워낙 발전되다 보니 스마트폰을 통해 이루어지는 도박 문제가 매우 심각한 상황에 처해 있다. 특히 이러한 사회변화의 최대 희생자는 청소년이다. 청소년기를 제대로 보낼 수 없는 경쟁 위주의 교육구조 속에서 청소년들은 답답한 순간을 벗어나기 위해 손쉽게 스마트폰을 이용한 도박에 빠져들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청소년들의 심리를 이용해 불법도박 사이트가 만들어져 청소년들을 끊임없이 도박의 굴레 속으로 유혹하고 있다.



도박은 정신을 파괴할 뿐만 아니라 금전적 문제와 연결되어 가족 간의 관계, 친구 간의 관계마저도 하루아침에 다 뺏어갈 수 있는 잔인하고도 무서운 습성을 지닌 대상이다. 처음에는 쉽게 접근이 가능하지만 그 굴레를 벗어나는 것은 많은 것을 잃은 뒤에야 가능하다. 이러한 것을 분명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이 도박에 빠져 재산을 탕진하고 건강한 삶을 잃고 만다. 도박은 게임, 술보다 더 강한 도파민을 분배해 그 순간에 집중하게 만들고 이성적 판단을 흐려놓게 만든다. 될 것 같다는 심리, 분명 큰 거 한판이 나에게 다가올 것이라는 몽환적 환상 심리가 사람들을 끊임없이 도박이라는 중독에 빠져들게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경제적 논리에 급급하여 보다 더 쉽게 빠지고 보다 더 강렬한 충동으로 몰두할 수 있는 최첨단 도박 장비와 시설을 만들어내고 있다. 도박이 주는 부작용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살아가는 곳곳엔 이러한 자본주의 논리에 기생하여 만들어진 도박장이 판을 치고 있는 것이다. 관광산업 육성, 지역개발 등이라는 명목으로 청정지역에 들어선 도박장 주변엔 오늘도 많은 사람이 욕망에 이끌려 자신도 모르게 모든 것을 탕진한 채 가족도 잃고 노숙인의 삶을 살기도 하면서 때때로 소중한 생을 포기하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되는 것이다.



이성을 지닌 인간은 감각적 대상을 만나거나 쾌락적 순간을 접하게 되면 쉽게 이성을 잃고 욕구, 욕망에 따라 행동하게 된다. 인간이 지닌 이성이라는 것은 그렇게 냉철한 대상이 되지 못한다. 언제든지 이성은 다른 그 무엇에 의해 흔들리거나 무너질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이성의 능력을 한없이 추락시키는 것이 바로 도박인 것이다. 자기의 행동에 대해 자아의식이 통제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는 것은 더없이 불행한 일이다. 어쩌면 이것은 자아 의지가 정지된 상태로 돌아가는 것보다 더 큰 불행을 야기하는 경우가 더 많다. 이러한 이유 때문일까? 사르트르가 말한 인간은 자유롭도록 선고(저주)받은 존재라는 표현이 더욱더 강렬하게 다가온다.



몰입은 때때로 삶에 에너지를 부여하고 답답한 일상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지만 몰입의 수준과 대상이 무엇이냐에 따라 삶의 모습은 달라지게 된다. 따라서 되도록 우린 삶의 가치를 좀 더 빛나게 할 수 있는 몰입의 대상을 찾아서 현실적 삶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수준에서 머물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몰입할 대상이 있다는 것은 긍정적 측면에서 봤을 때는 삶에 열정과 에너지가 부여된다는 것이며 답답한 일상에 생의 울림을 줄 수 있는 기폭제 같은 것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쉽고 빠르게 끊임없이 무언가에 몰입하기를 원한다. 그러한 몰입은 되도록 준비과정 없이 쉽게 빠져들 수 있는 것을 찾게 된다. 이러한 몰입의 함정 때문인지, 몰입은 곧 욕망의 충족과 너무나 쉽게 손을 마주 잡게 되는 것이다.



몰입이 삶의 긍정적 에너지를 발휘하도록 하기 위해선 몰입엔 절제와 지혜가 필요하다. 광적인 몰입은 결국 그 대상이 무엇이든 현실적 삶의 많은 부분을 파괴하는 경향이 있다. 아무리 긍정적 대상이라 할지라도 지나친 몰입은 관계의 연결고리를 파괴하고 결국 자기의 욕망과 가치만을 지향하도록 만들기에 삶의 균형을 파괴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몰입엔 반드시 절제와 균형이 필요하다.



그리고 몰입 시 반드시 고려해야 할 점은, 몰입의 대상이다. 쉽게 몰입할 수 있는 것은 대부분 즉흥적 욕망 충족을 위한 것이기에 중독이라는 함정에 빠질 우려가 있다. 따라서 자신의 삶에 대한 성찰을 바탕으로 자기의 가치를 빛낼 수 있는 대상을 찾아야만 하는 것이다.



빛나는 것은 그 빛 속에 수많은 어둠을 담고 있다. 어둠과 인내의 시간이 있어야만 빛나는 것이다. 이러한 어둠과 인내의 시간이 없이 빛나는 것은 얼마 가지 못해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된다. 자기의 몰입된 삶 속에서 그 삶이 빛나기 위해선 삶에 대한 성찰과 고뇌의 과정을 바탕으로 참된 몰입의 과정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중독은 아주 빠르게

그것도 아주 즉흥적으로

이성을 마비시키는

독성 물질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중독에

한번 노출이 되면

그 길을 되돌아오는 데에는

너무 큰 희생과

아픔이 따르게 된다

따라서 우린 늘

중독이라는 두 글자 앞에

책임과 관계,

사랑과 존중이라는

덕목을 바탕으로

이 두 글자를 잘 피해서

견뎌 나가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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