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녘, 잠을 깼다. 핸드폰을 확인해 본다. 루머의 연락은 여전히 오지 않았다. 창밖을 바라다본다. 어둠 사이로 가로등 불빛이 밖과 안의 경계를 나누고 있다. 모두 고요하다. 가끔 나뭇잎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 보이지만, 그 흔들림 또한 적막함 속에 묻히어 간다. 가끔씩 어딘가를 오고 가는 누군가의 문을 열고 닫는 소리만이 빈 정적을 깨운다.
도종환 시인의 '어릴 적 내 꿈은'이라는 시를 대학노트에 적으며 꼭 교사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시인의 말처럼 '플라타너스 아래 앉아 시들지 않는 아이들의 얘기도 들으며 하모니카 소리에 봉숭아꽃 한 잎씩 열리는 그런 시골학교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꼭 시인의 다짐처럼 '강물을 건너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나룻배가 되어 주고, 길을 묻는 아이들에게 지팡이가 될 수 있는' 그런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현실은 늘 이상과 일치하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이상을 향해 좀 더 노력하지 못한 부끄러운 자화상이 늘 현실에 안주하는 법을 재촉해 왔는지도 모른다. 나룻배나 지팡이가 되기 전에, 직장인으로서 생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해 갈 수 있는 수단으로써 가르침을 지속했거나 아니면 아이들을 위한다는 명목 하에 또 다른 내 안의 성취만을 위해 노력했을 뿐이다.
평생 교사는 많지만, 평생 선생님은 적다는 말이 있다. 누구나 학생들을 가르치고 지도할 수는 있다. 가르침과 지도는 기술이지 교육이 아니다. 그러나 누구나 쉽게 선생님이 될 수는 없다. 선생님은 단순하게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는 주체에서 벗어나 아이들의 삶을 걱정하고 그들과 함께 인생의 동반자가 되어주는 사람을 뜻하기 때문이다. 지금의 내 모습에 대해 그 어떤 탓을 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좀 더 쉬운 길을 걷고 싶었고, 좀 더 편안한 길을 택하고 싶었다.
나를 거쳐간 수많은 아이들은 교단에 서 있던 내 모습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적어도 그들에게 나로 인해 삶의 부정적 모습을 깨닫게 하거나 인간에 대한 실망을 안겨주지만 않았다면 부끄러운 고백의 죄책감은 조금 사라질 것 같다. 그런데 만약 누군가가 나로 인해 아픔과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면 그것처럼 죄 많고 부끄러운 일도 없을 것이다.
아이들은 성장의 과정 속에 있는 아직 굳지 않은 존재와 같다. 누군가는 조금 혹독한 환경 때문에 그 굳음이 더 빨라질 수도 있지만 성인이 되기 전 아이들은 모두 다 무언가를 꿈꾸며 자신만의 모습을 만들어가고 있는 존재인 것이다. 따라서 교육에서 단정이나 확신은 어쩌면 참된 교육은 그만두고 다른 무언가를 얻기 위해 습관적 배움만 지속하라는 지시와 명령이 될 것이다. 정보를 전달하는 것은 언제든지 누구나가 다 할 수 있다. 그러나 성장의 과정에서 좀 더 아름다운 존재로 굳어가도록 빛을 불어넣을 수 있는 존재는 많지 않다.
창밖으로 아이들의 눈빛이 하나둘씩 아른거린다. 장난기가 무척 심했던 아이의 눈빛도 있고, 여러 학교에서 받아주지 않아 결국 마지막 내 품으로 다가왔던 아이도 있다. 그리고 엄마, 아빠가 모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 결국 서울 어딘가로 전학을 가며 못내 눈물을 터트리던 아이의 눈빛도 보인다. 그 아이를 찾아 집으로 가는 날이면 늘 삶의 양극단의 측면이 보이곤 했다. 누군가는 보살펴 줄 사람이 그리워 밤새 눈물을 흘리며 긴 밤을 두려움에 떨며 보내는데, 누군가는 지나친 부모님의 간섭 때문에 집을 벗어나 다른 곳으로 뛰처나가는 아이도 있었다.
조금씩 안과 밖의 경계가 사라지고 빛이 밝아온다. 루머의 연락은 아직 오지 않았다. 일단, 아침밥을 대충 챙겨 먹고 근처 부소산성으로 향한다. 부소산성에 오르는 길은 잔잔하면서도 곳곳에 바람의 길이 열려 있어 시원함을 전해준다. 특히 백화정에서 바라본 물결은 어딘지 모를 깊은 사색의 공간을 열어준다. 백화정에 앉아 한참 백마강을 바라보다 고란사라는 사찰로 향한다. 몇 평 남짓한 작은 사찰은 그 작고 고요함 때문인지 그곳에 머무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느리고 조용하게 만들어 준다. 분위기에 휩싸여 사찰을 구경하고 고란초에서 나오는 약수를 마신 뒤 발걸음을 돌린다.
한 걸음, 한 걸음 계단을 오르면서 지난온 교사로서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본다. 많이 부족했고, 많이 서툴었지만 그래도 그 속에 희망이라는 작은 씨앗을 지닌 채 걸어가는 한 사람이 보인다. 그 사람의 발걸음이 부디 지치거나 외롭지 않기를 바라며 루머의 연락을 기다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