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IC를 빠져나와 구이 쪽으로 향한다. 모악산은 구이저수지 앞에 위치에 있다. 여행의 피로가 다소 느껴지는 시간이지만 그래도 아이들과 함께 산행을 한다는 기대감에 힘을 내어본다. 전주 도립미술관 아래에 주차를 하고 천천히 모악산을 오른다. 평일이라 그런지 산행을 하는 사람은 적어 보인다.
"루머야, 방학 끝나고 다시 학교에 나올 생각은 없어?"
"........"
"머루는?"
"부여에 할머니가 계셔서 다시 내려가긴 해야 할 것 같은데요."
"고등학교 3학년이니, 일단 졸업은 하고 그다음에 대학을 갈 것인지 아니면 다른 길을 갈 것인지 생각해 보는 것도 괜찮을 거 같아. 선생님이 무조건 학교를 꼭 졸업해야 한다는 것을 강요하는 것은 아니고 일단 반 학기만 남아있으니 다녀보면서 한번 생각을 해보는 것도 좋을 거 같아서."
"네, 선생님."
"선생님이 보기에 우리 루머와 머루는 문예창작학과나 철학과 쪽으로 가서 공부를 한번 해보는 것도 괜찮을 거 같아. 다소 공부하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학과이기는 하지만 너희들의 적성을 보면 그쪽 학과가 맞을 거 같아."
"선생님, 저는 무단결석이 많이 있는데, 괜찮을까요? 대학을 갈 수나 있나요?"
"그럼, 정시도 있고 학생부 교과 전형도 있으니 루머 네 마음이 중요하지."
천천히 한 걸음 한 걸음씩 계단을 오른다. 아이들은 서로의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보며 미소를 짓는다. 머루가 해인사를 나오면서 스님이 주신 귤 몇 개를 꺼내 건넨다. 아이들의 발걸음에 속도를 맞추면서 천천히 걷다 보니 그들의 모습이 더욱더 잘 보인다. 이렇게 산과 우리의 몸이 허락한 만큼 걷다가 내려오면 되는 것이다. 핸드폰에서 벨이 울린다. 가방을 열고 핸드폰을 받자니 다소 번거로울 거 같아 받지 않았는데 계속해서 꽤 긴 벨이 울린다. 루머의 아버지다.
"선생님, 저, 혹시 루머는, 찾았나요?"
"네, 아버님. 제가 연락을 드렸어야 했는데, 죄송해요. 루머는 잘 있습니다."
"아, 네, 선생님, 제가 고맙고 죄송해요."
"아니에요. 아버님."
"선생님, 우리 루머 좀 잘 부탁드려요. 갸가 이런 아빠를 만나서 그렇게 된 것 같아요. 부끄럽지만, 부탁만 하고 정말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아버님. 루머는 잘할 거예요."
"네, 선생님. 담에 만나면 제가 술 한잔 대접할게요."
"아니에요. 아버님."
"선생님, 정말 고마워요.
그의 목소리에 힘이 없다. 그리고 예전에 주고받은 통화 속 울림과 다르게 그의 목소리가 한없이 낮게 가라앉아 있다. 몸상태가 많이 안좋은 거 같다.
"루머야, 아버지께 연락안했어?"
"네, 뭐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그냥 그래서요."
"아버지 연락이 왔는데, 기운이 많이 없으신 거 같아."
"....... 술을 너무 많이 먹어서 그럴 거예요."
"아닌 거 같아. 전화 한번 드려보렴."
"......"
"아버지가 많이 걱정하는 거 같아."
"네"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다 보니 어느새 수왕사가 보인다. 사찰안은 여전히 고요하다. 바람에 흔들리는 푸른 잎새들의 부둥키는 소리만이 정적을 깨운다. 사찰 옆에 작은 집 앞에는 여전히 고무신 한 짝이 곧게 놓여 있다. 저 방안엔 누가 있을까? 늘 궁금한 사항이지만 좀처럼 문이 열리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아이들과 수왕사 옆 약수터에서 물을 마시고 천천히 다시 올라가 본다. 조금 더 올라가 보니 모악산 능선이 보인다. 바람의 결이 더욱더 시원하게 다가온다. 루머와 머루의 얼굴빛에도 푸른 잎사귀처럼 파릇한 미소가 꽃핀다.
"머루야, 산에 오르니 좋지?"
"네, 선생님. 처음에는 힘들었는데 이렇게 정상까지 올라오니 바람도 시원하고 좋은 거 같아요."
"루머는?"
"네, 선생님. 마치 어떤 목표를 성취한 것 같아 너무 좋아요."
"그래, 또 기회 되면 우리 함께 산에 오르도록 하자."
"머루야, 혹시 부여에 가면 자주 놀러 오렴. 선생님은 익산에 있으니, 한 시간 정도면 오고 갈 수 있을 거야."
"네, 선생님."
정상에서 아이들과 간단하게 사진 몇 장을 찍고 사찰에서 내어준 음식으로 허기를 달랜 후 산을 내려온다. 아이들의 발걸음이 가볍다. 마치 무언가 답답한 마음을 비우고 털어낸 듯 마음속에는 시원한 바람이 분다. 오늘은 전주 인근에 있는 한옥마을로 가 아이들과 남은 시간을 보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