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마을로 이동하여 경기전을 비롯하여 전동성당을 돌아본다. 성당 앞에 서 있는 오래된 성모 마리아상의 인상이 더없이 온화해 보인다. 하얀색 빛깔 속에 인자한 모습으로 두 손을 다소곳하게 펼친 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한없이 포근하게만 다가온다. 그런데 산에서 내려와 한옥마을을 돌아보는 내내 루머의 표정이 어딘지 모르게 불안하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 같기도 하고, 머루의 물음에도 잘 대답하지 못하고 사진 찍는 표정에도 근심이 있는 듯한 표정이다.
"루머야, 무슨 고민 있어?"
"아니요, 선생님. 엄마한테 문자가 왔는데,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해 있는데 많이 아프시다고 해서요."
"맞아, 좀 전에 통화를 하는데, 아버님 목소리에 힘이 하나도 없으시더라고. 여기에서 병원까지는 한 시간 정도면 충분히 가니, 연락드리고 찾아뵙도록 하자."
"네, 선생님."
전동성당 한 편에 앉아 성모 마리아 상을 셋이서 같이 바라본다. 그 위로 아주 오래된 나무가 보인다. 푸른 잎사귀들이 아이들의 눈빛에 그늘을 만들어 준다. 곧 이 여행은 끝날 것이다. 루머와 머루는 어쩌면 다시 안양으로 돌아갈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이 어디에 있든 며칠간 그들과의 동행은 평생을 두고 서로의 기억 속에 소중한 추억으로 남게 될 것이다.
삶은 결국 순간순간의 과정에서 누구를 만나고 어떤 경험을 하느냐에 의해 기록된 풍경일 뿐이다. 지나치게 먼 미래에만 순간의 모든 것을 다 저당 잡힐 필요는 없다. 꿈이란, 그저 기다리는 내일의 풍경이 있기 때문에 아름다운 대상이 되는 것이다. 꿈이 실현되는 순간, 그건 그저 또 하나의 현실일 뿐이다. 루머와 머루가 찾고자 하는 삶은 어쩌면 그들이 아직 찾지 못한 꿈을 위한 소중한 여정일지도 모른다. 이 소중한 여정에 그 누구도 쉽게 '이게 정답이니 이렇게 하라'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것이야말로 지금 이 순간의 소중한 몸부림을 단 하나의 잣대로 억누르는 폭력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도종환 시인의 말처럼 흔들리지 않는 인생은 없다. 모든 삶은 늘 흔들리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러한 흔들림은 더 성숙한 삶을 위한 소중한 밑거름이 된다. 길을 잃은 아픔이 더 높고 먼 길을 향한 소망으로 되돌아오듯이 길을 찾는 방황은 어쩌면 더 큰 사람이 되기 위한 꿈의 여정일지도 모른다.
루머와 머루가 가는 길이 그 누구의 삶보다 행복하고 아름다웠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그들을 바라보며 피어나는 또 다른 눈빛들이 바닥에서도 이렇게 아름답게 피어나는 삶에 대해 희망을 간직했으면 좋겠다.
이후, 루머의 아버지가 대장암 말기로 세상을 떠나고 루머는 학교 기숙사에 들어와 남은 학기를 채우고 충남에 있는 문예창작학과에 진학하게 되었다. 머루는 부여 할머니 댁에서 학교를 다닌 후 머루와 함께 같은 학교의 철학과에 입학을 했다.
가끔 그들에게 연락이 온다.
"선생님, 그때 그 여행으로 저희가 꿈을 꾸게 되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