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관계

by 문객

'루머야, 근데 여기는 어떻게 오게 된 거야?'

'좀 사연이 있어요. 저기 청다방 밑 반지하가 그 친구하고 제가 머무는 곳이에요.'

'친구, 청다방은?'

'아, 제가 저번에 말한 그 부여 친구 엄마가 하는 곳이에요.'

'친구 엄마가'


루머와 함께 청다방으로 향한다. 루머가 문을 열고 나를 먼저 안으로 인도한다. 중년의 여인이 컴퓨터 모니터 앞에서 눈을 힐끔 거리며 쳐다본다. 친구의 엄마? 꽃무늬 원피스에 방금 머리를 감은 듯 산만하게 흐드러진 머릿결 사이로 육십 촉 조명이 줄의 길이를 달리하며 그녀를 비추고 있다. 열 평 남짓한 공간엔 테이블 두 개와 서로를 마주 보고 있는 3인용 소파 네 개가 전부다. 그리고 벽면 한쪽엔 다소 오래된 광고 포스터 속 한 여인이 활짝 웃으며 누군가를 바라보고 있다. 바닥에 깔아놓은 양탄자에서는 오래된 묵은 빛이 돋아난다. 정면 한쪽엔 오래된 화조도 병풍이 꽤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누구?"

"제, 담임선생님이에요."

"샘님이라고. 아이고, 이 먼데까지 어혀 오셨데? 루머 잡으러 왔구먼."

"아, 그건 아니고요."

"뭐 줄까요? 시원하게 커피 한 잔 타 줄까요?"

"아니요, 잠시 인사하고 아래층으로 가보려고요."

"아따, 뭐가 바쁘다고. 이 밑에서 아들놈하고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 마쇼. 거기 앉아 보소. 시원한 아이스로 한 잔 타 줄 테니."

"네"


루머와 소파에 앉는다. 아직 루머하고의 만남 자체도 어색한데 그녀가 열심히 커피를 탄다. 소파에 앉아 천장을 바라다본다. 천장 위와 벽면 사이에는 부적이 보인다. 부적의 내용을 알 수는 없으나 무언가를 간절하게 기원하고 있는 듯 곳곳에 부적이 붙어있다. 그녀가 커피를 들고 자리에 안는다.


"먹어봐요. 먼 데까지 왔는데."

"네, 고맙습니다."

"그래서 이제 루머 데리고 가나요?"

"........"

"그래도 지네 둘이 잘 지내서 좋더구먼."

"네"


무언가를 얘기하려다 그녀의 입이 닫힌다. 어색함과 고요한 정적이 교차하며 셋이서 서로의 눈빛만을 바라본다. 그녀가 타 준 커피를 물컹물컹 들이킨다. 루머가 그녀에게 말한다.


"어머니, 이제 아래로 내려갈게요."

"그랴, 가봐라."


좁은 계단을 지나 반지하로 향한다. 문을 열자, 한 사람이 보인다. 루머의 친구다. 그런데 한쪽 눈이 좀 이상하다. 흐릿한 동공이 초점을 잡지 못한 채 나를 바라본다. 힘이 없다.


"안녕하세요."


좁은 방안이 책으로 가득하다. 그들은 이곳에서 무엇을 하며 지내고 있는 것일까?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책이 보이고 기형도, 이성복, 백석, 신동엽 시인의 시집이 보인다. 그리고 책상 한 곳엔 사르트르의 '구토'라는 책이 펼쳐져 있다.

"선생님, 일단 좀 앉으세요."

"이 책 다 너희들이 읽는 책이야?"

"네, 특히 이 친구 머루가 독서광이에요."

"언제부터 책을 이렇게 읽기 시작했어?"

"밖이 싫어지면서부터요."

"그래, 사르트르도 읽나 보구나."

"네"

"선생님도 아세요?"

"조금"


사르트르를 읽으며 내 운명의 열쇠는 내가 쥐고 있으니 늘 운명 앞에 무릎 꿇지 말자고 다짐하던 때가 있었다. 특히 감당할 수 없는 깊은 슬픔의 벽 앞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를 때면 사르트르를 읽곤 했다. 그런데 그 사르트르를 지금 루머와 머루가 읽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사르트르를 통해서 무엇을 얼마만큼 배우며 깨닫고 있는 것일까?


"루머야, 사르트르 좋아해?"

"네, 머루랑도 인터넷 문학모임에서 사르트르 이야기하면서 만났어요."

"루머는 사르트르 어떤 면이 좋아?"

"결국 삶은 스스로의 문제고 그 누구도 내 삶을 어떻게 할 수 없으니, 내가 알아서 선택하고 판단해야 한다는 그 가르침이 너무 좋았던 것 같아요. 다른 사상들은 죄다 '이것이 정답이다'라고 말하면서 그 길을 따라 살아가라고만 말하는데, 사르트르는 그저 존재 그 자체의 위태로움을 지적하면서 구토를 느낄 수밖에 없는 실존의 문제를 당당하게 짊어지고 가도록 해서 좋은 거 같아요."

"맞아요, 사르트르는 구토의 주인공 로캉탱을 통해서 본인이 처한 실존의 위태로움을 보여주고 싶었을 거예요. 어쩌면 그 실존의 위태로움은 우리 모두의 위태로움일 거예요. 그리고 믿고 사랑하는 여인 안니의 이별 선고에서 사르트르는 관계란 언제든지 부서질 수 있고 그 누구나가 가장 소중한 존재로부터 깊은 슬픔과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일지 모른다는 사실에 경종을 울려요."

"야, 너희들 문학에 대한 이해도가 정말 뛰어나구나. 그나저나 루머랑 이곳에 어떻게 오게 된 거야?"

"제가 갈 곳이 없다하길래 이곳으로 가자고 했어요. 할머니 집은 좀 그렇고 해서."

"거기서 머루는 학교 안 다녔어?"

"다녔는데, 저도 거의 안 가고 그랬어요. 그냥 학교 가면 너무 답답하고 잠만 자고 오는 것 같고, 애들 시선도 좀 그렇고."

"저도 머루랑 이곳에서 책도 읽고 이야기도 하고 같이 밥도 먹고 하니 좋아요."


그것도 모르고 학기초 상담하면서 친구관계를 묻는 질문에 인터넷에서 알게 된 친구가 있다는 답변에 되도록 학교 안에서 친구를 사귀도록 노력해 보라고 했으니 루머 입장에서는 얼마나 답답했을까? 루머에게는 어쩌면 그의 정신세계를 함께 공유할 누군가가 절실하게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7. 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