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재회

by 문객

조금씩 빛이 밝아온다. 루머의 연락은 아직 오지 않았다. 일단, 허기를 대충 채우고 근처 부소산성으로 향한다. 부소산성에 오르는 길은 잔잔하면서도 곳곳에 바람의 길이 열려 있어 시원함을 전해준다. 특히 백화정에서 바라본 물결은 어딘지 모를 깊은 사색의 공간을 열어준다. 백화정에 앉아 한참 백마강을 바라보다 고란사라는 사찰로 향한다. 몇 평 남짓한 작은 사찰은 그 작고 고요함 때문인지 그곳에 머무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느리고 조용하게 만들어 준다. 분위기에 휩싸여 사찰을 구경하고 고란초에서 나오는 약수를 마신 뒤 발걸음을 돌린다.

한 걸음, 한 걸음 계단을 오르면서 그동안 교사로서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본다. 많이 부족했고, 많이 서툴렀지만 그래도 그 속에 희망이라는 작은 씨앗을 지닌 채 걸어가는 한 사람이 보인다. 그 사람의 발걸음 속에 부디 희망의 빛이 다시 빛나길 바라며 루머의 연락을 기다려본다.


루머에게 문자를 보낸다.


'루머야, 지금 어디에 있는 거니? 연락이나 한번 주렴. 선생님이 꼭 너를 보고 싶다.'


루머는 어디에 있는 걸까? 오늘은 루머에게 답장이 올까? 루머를 만나서 루머와 긴긴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루머가 좋아하는 김광석이라는 가수의 노래도 함께 들으며 그가 생각하는 김광석의 이야기도 나누고 싶다. 핸드폰에서 알림음 소리가 들린다. 메시지를 확인해 본다. 루머다.


'선생님, 아직도 부여세요? 저 부여에 없어요. 그만 가세요.'


부여에 없다고, 그러면 도대체 어디에 간 것일까? 부여가 아니라면 그는 낯선 어딘가로 무작정 떠난 것일까? 친구가 아니라 다른 존재가 루머의 거처를 마련해 주고 있는 것일까? 루머를 찾기 위한 바람은 결국 여기에서 이렇게 끝나는 것일까? 아니, 루머를 반드시 만나야만 한다. 루머를 찾는다는 것은 단순하게 길을 잃고 헤매는 제자 한 명을 찾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어쩌면 잃어버린 나를 찾는 일일 수도 있다. 여기에서 루머를 포기하고 다시 학교로 돌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지금 이대로 내 삶에 선을 그은 채 단순히 직장인의 한 사람으로서 이 길을 걸어가겠다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다시, 루머에게 연락을 해 본다.


'루머야, 그럼 어디에 있는 거니?'

'

'

'

'

'안양이요.'


안양이라고, 경기도 안양까지 루머는 어떻게 가게 된 것일까? 급하게 부소산성에서 내려와 무작정 안양으로 향한다. 부여에서 안양까지는 대략 2시간 정도가 걸린다. 그런데 안양에 가서도 루머를 만나지 못하면 어떻게 할까? 하지만 안양이라고 본인의 위치를 말한 것은 어느 정도 마음이 열려 있다는 것인데, 일단 그런 걱정은 하지 말자. 안양으로 가 루머에게 연락을 하면 분명 그와 만남을 갖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부여에서 찾았던 평온함과 지난 세월의 고즈넉한 반추가 복잡한 차선과 정신없이 오고 가는 차량들 속에 묻히어 간다. 그리고 그 빈틈을 속도와 방향이 채운다. 조금 주변을 쳐다보며 천천히 가고 싶어도 뒤에 따라오는 차량 때문에 그럴 수가 없다. 일단 고속도로에 올라탄 이상 무조건 달려야 한다. 고속도로에서 멈추는 것은 다른 차량에 대한 사고로 이어진다. 설령 잘못된 길로 들어섰을지라도 유턴하는 구간이 나올 때까지는 무조건 달려야 한다. 잠시 멈춰서 생각을 풀어놓을 여유가 없다. 내비게이션과 핸드폰의 소리에만 귀를 기울인 채 열심히 달려간다. 마치 학교에서 아이들을 지도하는 내 모습 같다.


안양, 그는 왜 이곳까지 오게 된 것일까? 그의 안부가 더욱더 궁금해진다. 정신없이 오다 보니 한 시간 조금 넘어 안양에 도착했다. 루머에게 다시 문자를 보낸다.


'루머야, 선생님, 안양에 왔어.'

'정말로요?'

'응'

'어디에 있는 거니?'

'.......'

'문자 보는 대로 연락 좀 주렴.'

.

.

'저 호계시장 뒤편 청다방에 있어요?'

청다방에 있다고. 혹시 집을 나갔다는 엄마가 청다방에 있는 것일까? 호계시장 인근에 차를 주차하고 시장 골목을 지나 물어물어 청다방으로 향한다. 시장 뒤편은 아직 개발이 덜 된 연립주택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반 즈음 창문이 가린 반지하 주택과 그 밑으로 향하는 완전 지하 주택 사이에서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반지하는 딱 창문이 지상과 지하의 경계를 나누고 있다. 오직 사람들의 소리만이 누군가가 그곳에서 삶을 지속하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완전 지하는 소리마저 둔탁하다. 지하계단으로 오고 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확인한 후에야 그곳에 사람들이 살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곳 어디 즈음인 거 같은데, 다시 루머에게 문자를 보낸다.


'루머야, 선생님, 청다방에 거의 다 온 거 같아.'


잠시 후, 내가 서 있던 반대편 반지하 계단에서 한 아이가 걸어 나온다. 덥수룩한 머리에 아직은 무언가를 정돈하고 싶지 않다는 듯 슬리퍼를 신고 내 앞으로 다가온다. 루머다. 그가 학교를 떠난 시간은 얼마 안 되었지만 그의 모습이 꽤 수척해 보인다. 그런데 이상하게 눈빛은 예전에 학교에서 보던 그런 눈빛이 아니다. 그의 눈빛이 평온해 보인다.


'루머야, 잘 지냈냐?'

'네, 근데 어떻게 여기까지 왔어요? 부여는 또 뭐 하러 갔어요.'

'네가 연락도 안되고, 학교도 방학이라 시간도 있고 해서.'

'부여 구경은 잘했어요?'

'응, 네 덕분에, 잘했지.'


이상하다. 루머와 대화가 너무 잘 되고 있다. 학교에서 늘 하던 그런 대화가 아니라 내 마음과 루머의 마음이 통하는 그런 대화가 되고 있다. 학교에서 그렇게 상담할 때는 답변조차 제대로 하지 않던 루머가 지금 내 앞에서 '부여 구경은 잘했어요?'라고 묻고 있는 것이다. 루머의 마음은 어쩌면 이미 열려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다만, 그 마음을 열 수 있는 여백과 공간을 제대로 제공해 주기 않았거나 일방적인 지시나 강압적인 훈육만이 있었기에 그는 늘 입을 다물고 있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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