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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다닌다고 말하는 것이 부끄러운 당신에게

극우 개신교를 고발합니다 #1

by His table


“창피해서 교회 다닌다고 말 못 하겠다.”


요즘 이런 말들을 많이 듣는다.

이것이 작금의 한국 개신교의 현실이다.

예전이라면 “예수님이 부끄럽니?”라는 궤변으로 몰아붙였을 법한 목회자들도 양심이 있다면

쉽게 답하지 못했을 것이다. 여기에 교회의 성도들을 숨 막히게 하는 말이 하나 더 있다.


“우리는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말고 같이 기도하자.”


기도하는 것이 어디 나쁜 것인가?

그런데 저 말은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왜 기도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로 그냥 기도하자는 말이다.

얼마 전 유명한 목사님의 설교가 비난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뒤늦게 해명글을 올렸다지만 설득력 없는 공허함만 전해질뿐이다.


도대체 한국 개신교의 출구는 어디에 있는가?


80년대 독재자 전두환을 옹호하며 조찬기도회를 열었던 개신교의 부끄러운 역사가

2025년에 눈앞에 실현되고 있다. 아니 어쩌면 그때보다 더욱 노골적이고 추악한 모습으로

한국 개신교는 아스팔트 위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사회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


더욱이 직-간접적으로 이를 부추기는 목회자들의 모습을 보며 목회자의 한 사람으로서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조금 과격하게 표현하는 것을 용서해 달라. 아니 실은 굉장히 자제하고 있음을 알아주길 바란다.


누군가는 목회자가 왜 이런 글을 쓰냐고 손가락질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어찌 쓰고, 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일부 극우 개신교가 한국 교회를 과잉 대표하는 작금의 현실 앞에서

아무리 적은 사람들일지라도 이렇게 성토 하지 않는다면, 한국 개신교의 미래는 어떻게 되겠는가?


이미 한국 사회의 주변부로 밀려날 대로 밀려난 한국 개신교는 이제 대기권을 뚫고,

저 멀리 우주여행을 떠났다. 아마 다시 우리 사회에서 한국 개신교가 사회의 일원으로서

건강한 영향력을 끼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지 않는다면, 먼 미래의 한국 개신교는

그저 사회 한구석에 존재하는 게토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이를 위해 아스팔트에서 사람들을 선동하는 극우 목회자, 역사적-현실적 감각도 없이

폭력과 분노를 조장하는 유명강사, 집단을 유지하기 위해 중립 또는 신앙적 언어로

이 상황을 외면하는 대형교회가 한국 교회를 대표하도록 방관할 수 없다.


비록 작은 소리라 할지라도 의와 평화를 위한 외침들이 한국 교회의 10년 후, 20년 후를 위해

곳곳에서 일어나야 할 때이다. 그것이 오늘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들에게 요구되는 십자가가 아니겠는가.


오늘 극우화 된 한국 교회에 범람하는 퇴락의 물결 앞에서 크고 대단한 일은 할 수 없을지라도

그저 글을 쓰고, 말하는 것으로라도 한국 교회의 출구를 만들어야 된다는 부담을 갖는다.


드러나지 않지만 이런 작은 성토와 물결들이 계속 이어지길,

그래서 언젠가 그 물결들이 만나 한국 교회를 다시 소생시키는 물줄기가 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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