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와 폭력이 가득한 세상에서.
미국 조지아에서 어린이집에서 돌아오는 파란 모자를 쓴 5세 아이를 체포한 ICE(이민세관단속국)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세상이 정말 미쳐 돌아간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이들은 어린이집 선생님을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체포한다.
심지어 길에서 자신들에게 저항하는 이들을 무차별적으로 구타하고 총으로 사살할 때도 있다.
이런 극단적인 상황이 먼 나라 이야기일까?
오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사실은 매춘부라며 배설물을 쏟아내던 김병헌 대표가
경찰 조사 출석 길에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또 다시 망언을 쏟아냈다.
“일본군이 어떤 일을 했죠? 돈 냈어요.
아니 요금 냈으니까 정당한 거지.”
위안부 피해자들의 모든 증언과 역사적 사실로 규명된 전부를 부인하는 그의 태도에서
일종의 광기가 느껴진다.
진실로 확신일까?
아니면 연기일까?
그도 아니라면 스스로에게 건 최면일까?
무엇이 되었든 그를 이해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누군가가 그에게 “당신의 가족이라고 생각해 보세요.”라고 일갈을 놓아도 그에겐 전혀 가닿지 않는다.
그는 이 일을 전면으로 부인할뿐만 아니라 자기에게는 그런 일이 일어나리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자기 가족에게 일어나더라도 저런 반응일지도?
그런데 이런 자를 초대하여 강의를 듣는 교회들이 있다.
심지어 어린이들을 대상으로한 강사로 활동했다는 사실이 경악스럽다 못해 분노가 치민다.
ICE에게 체포되어 두려워하는 5살 아이의 모습도.
꽃 같은 시절이 짓밟힌 이들을 기리며 세워진 소녀상에 저질스러운 부착물이 덕지덕지 붙어있는 모습도.
머리 속에서 쉬이 사라지질 않는다.
누군가의 소중한 일상을 짓밟을 권리가 어디에 있고,
누군가의 아픈 상처를 헤집을 명분이 누구에게 있단 말인가?
비슷한 현실에 대해 한탄하던 이가 성경 속에서도 발견된다.
시인의 고백에 기대어 잠시 마음을 가라앉혀 보고 싶지만.
그저 이 고백이 너무 멀다고 느껴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주님께서는 학대하는 자의 포악함과 학대받는 자의 억울함을 살피시고
손수 갚아 주려 하시니 가련한 사람이 주님께 의지합니다.
주님께서는 일찍부터 고아를 도우시는 분이셨습니다.
악하고 못된 자의 팔을 꺾어 주십시오.
그 악함을 샅샅이 살펴 벌하여 주십시오.
주님은 영원무궁토록 왕이십니다.
이방 나라들은 주님의 땅에서 사라질 것입니다.
주님, 주님께서는 불쌍한 사람의 소원을 들어주십니다.
그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주시고,
그들의 부르짖음에 귀 기울여 주십니다.
고아와 억눌린 사람을 변호하여 주시고,
다시는 이 땅에 억압하는 자가 없게 하십니다.
시편 10 편 14-18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