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 두 명'
멀티플렉스 상영관에서는 늘 규격화된 향이 났다.
고소하고 달큰한 팝콘 내음이 난방기의 바람을 타고 퍼져나갔다.
상우는 눈을 감고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그 익숙하고 매혹적인 향을 맡으며 그는 잠시 안도감을 느끼고 있었다.
상우는 대학교 신입생 시절부터 8년 동안 다닌 단골 영화관을 찾았다.
얼마 전까지 ‘교육생’ 명찰을 달고 있던 앳된 모습의 아르바이트생은 이제 수습 딱지를 떼었는지 제법 자신감 있는 목소리로 영화관 입장 안내를 하였다.
상우는 영화 티켓을 바라보았다. ‘성인 두 명’이 확고하게 인쇄된, 조악하고 얇은 종이를 바라보다가 그는 피식 웃고 말았다.
‘이런 걸 영화 티켓이라고 할 수 있나.’
한때 상우는 자신이 본 영화 티켓을 파일에 모으던 사람이었다. 그는 그다지 꼼꼼하지 못한 성격이었지만 빳빳하고 윤기가 나던 티켓들은 소장하고 싶을 만큼 탐스러운 것이었다. 그래서 그가 가진 파일은 언제나 넘치는 포만감을 자랑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티켓은 지류 영수증처럼 변했고, 그는 모으는 것을 멈췄다.
가끔 습관처럼 티켓 발권 후 “영수증은 버려주세요.”라고 말했다가 ‘아차! 이거 티켓이지!’하며 머쓱한 표정으로 다시 받는 경우도 있었다.
오전 11시 35분, 영화 상영 전 송출되는 지루한 광고마저 끝났을 시간이지만 상우의 연인 유진은 나타나지 않았다.
참 오랜만에 가지는 연인과의 데이트였다. 하지만 어쩐지 설렘보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답답함이 가슴을 짓누르는 바람에 상우는 밤잠을 설쳤다. 마치 오늘의 일을 예견이라도 한 것처럼.
약속 시간에 늦는 법이 없던 유진이었기에 상우는 그녀가 오지 않을 것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상우는 벽에 걸린 시계와 헐렁한 티켓에 새겨진 ‘성인 두 명’ 번갈아 보았다.
잠시 망설이던 상우는 티켓을 꽉 쥐어 구긴 후 혼자 상영관으로 들어갔다.
상우는 영화관은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사랑방이기 때문에 오롯이 영화에만 집중할 수 있는 장이 되어야 한다는 원칙주의자였다. 그는 그것을 '영화관주의'라고 명명했다. '영화관주의자' 상우는 스크린 이외의 잡광은 모두 폭력이라 여겼고, 휴대전화도 반드시 전원을 꺼야 마음이 놓이는 사람이었다.
자리에 앉아서 영화에 빠질 준비를 하다가 문득 콧날이 시큰해지는 것을 느꼈다.
약속을 어긴 오랜 연인에 대한 원망과 걱정하는 마음들이 날카롭게 부서져 비강을 할퀴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