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의 사정
따끔한 마음을 돌볼 틈도 없이 영화는 시작되었다.
상우는 우주에 관한 영화를 볼 때마다 천문학자 칼 세이건의 저서 『창백한 푸른 점』을 떠올리곤 했다.
태양계 변두리에 있는 작은 점과 같은 지구, 그 작은 점 위에서 우리가 느끼는 사랑과 슬픔, 삶과 죽음, 악인과 의인이 담겨 있다는 구절을 떠올리면 본인이 가진 고민이 무척이나 하찮게 느껴지곤 했다.
영화가 끝났지만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엔딩 크레딧이 모두 올라갈 때까지 자리를 지키는 것은 ‘영화관주의자’ 상우가 지키는 일종의 신념이자 예의였다. 스크린의 모든 불빛이 사라지고 난 뒤에야 그는 천천히 일어났다.
상우는 영화를 보며 인상 깊었던 대사를 읊조렸다.
“우리는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
상영관을 빠져나오자 한낮의 햇빛이 그를 덮쳤다.
시공간을 초월한 우주여행을 마친 몸이, 다시 한겨울의 서울로 내던져지자 또렷하고 육중한 중력이 몸과 마음이 짓밟았다.
휴대전화를 켜자 부재중 전화 3통, 메시지 5개가 쏟아졌다. 모두 유진에게서 온 것들이었다.
‘어떡해… 늦잠을 자버렸어. 미안해.’
‘지금 어디야? 왜 전화가 안 돼? 걱정되게…’
‘혹시 혼자 극장에 들어간 거야? 답답해서 그래. 연락 줘.’
에스컬레이터에 몸을 기댄 채, 상우는 메시지를 읽었다.
잠시 고민하던 그는 천천히 휴대전화를 들어 유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응. 상영시간 되어가는데 연락이 안 되길래 그냥 혼자 봤어. 문자는 이제 봤어네. 미안, 상영관에 들어가느라 전화를 껐어.”
상우의 건조한 말투를 들은 유진은 한숨을 쉬며 이야기했다.
“일단 내가 그쪽으로 갈게. 우리 만나서 이야기하자.”
유진은 대학교 졸업 직후 중견기업에 취직하여 2년 동안 열심히 일했다. 틈틈이 시간을 내어 동생의 공부를 도와주던 그녀는 입시 영어 강사의 꿈을 갖게 되었다. 오랜 고민 끝에 올해 초 퇴사한 그녀는 한 영어 학원에서 강사로 일하고 있었다.
평범한 회사원인 상우가 퇴근하여 몸을 누일 시간이 유진에게는 가장 치열한 시간이었다. 그녀는 퇴근 후에도 다음날 강의를 준비하느라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울 때가 많았다. 상우가 출근할 무렵이면 유진은 깊게 잠들어 있곤 했다.
8년을 함께한 연인들은 어느새 시간에 치이고, 피로함에 깎여 서로를 최우선에 두는 방법을 잊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