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딩 크레딧 - 3화

본심

by 글쓴이


무엇을 시작하기에도, 포기하기에도 애매한 오후 3시, 둘은 자주 가던 카페에서 마주 앉았다.


“아침에 연락이 안 돼서 놀랐지? 미안해. 어제 일이 너무 늦게 끝나서 정리하고 보니 집에 도착하니까 새벽 두 시가 넘은 거 있지. 진짜 잠이 든 줄도 모르게 자버렸어. 미안.”


미안함에 잔뜩 짓눌린 미간을 한 유진이 속사포처럼 이야기했다.


“아냐, 너 요즘 바쁜 거 누구보다 내가 잘 알지. 일어나자마자 시간 보고 많이 놀랐겠다. 피곤한 건 괜찮아?”


잠시 상우의 표정을 응시하던 유진은 아직 커피의 온기가 남아 있는 머그잔을 만지작거리다가 천천히 입을 뗐다.


“응. 괜찮아... 상우야, 그런데 너 왜 화를 안내?”


“지나간 일이잖아. 어쩔 수 없는 거지. 이렇게라도 만났으니까 뭐...”


상우가 내뱉은 흐린 말끝이 사라지기 전 유진이 말을 이었다.


“아니, 오랜만에 만나기로 한 거였잖아. 네가 진짜 보고 싶어 했던 영화고.”


“유진아, 나 화 잘 안내잖아. 우리 원래 잘 안 싸웠어.”


“알아. 그런데, 우리가 잘 안 싸웠던 이유는 서운함, 속상함. 이런 감정들을 서로에게 예의 있게 전달했기 때문이야. 근데... 지금 우리는 화내거나 서운할 여력조차 없는 사람들 같아.”


유진이 하는 말들이 상우의 본심 위에 쌓인 퀴퀴 먼지를 털어내 버렸다. 그는 부끄러움에 손을 떨었다.


상우와 유진은 같은 대학교 영화 동아리에서 만났다.

그들은 다정하고 친절한 성격이었다. 많은 이들이 결혼까지 할 것으로 확신하던 연인이었다.


상우의 옷 주머니에는 늘 유진이 좋아하는 막대 사탕이 들어 있었다. 그는 자주 넘어지는 그녀를 위해 가방에 항상 밴드와 연고를 담고 다녔다.


유진은 상우가 무엇인가에 푹 빠져 있는 모습을 좋아했다. 그녀는 아이처럼 들뜬 표정으로 책과 영화 이야기를 풀어놓는 그를 사랑했다.


서로를 향한 깊은 존중과 애틋함이 있었기에 그들은 8년의 연애기간 동안 닥쳐온 수많은 우여곡절을 함께 이겨낼 수 있었다.


그러던 그들이, 어느새 온기를 잃어가는 마음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렇게 말하니까 갑자기 스스로가 너무 부끄럽다. 생각해 보니까 내가 참 못난 마음으로 널 대했던 것 같네.”

잠시 숨을 고르고 상우가 말을 이어갔다.


“8년을 만났는데... 고작 바쁘고 지치고, 자주 못 본다는 이유로 마음이 삐뚤어져서는 우리 관계의 모든 책임이 너한테 있는 것처럼 함부로 행동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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