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임식 송별극
부서 퇴직자가 두 분이나 계셔서 이번 주 월요일 조촐한 자리가 마련됐습니다. 전주 목요일 서무 주임님으로부터 급하게 2인극 원고를 부탁받고 몇 번의 수정을 거쳐 완성했는데, 정작 2인극을 하겠다는 파트너가 없어 다시 1인 송별답사로 원고를 수정했습니다.
오랜만에 옛날 학예회 기분 느껴 보시라고 올립니다. 수정 전 원고.
이별을 맞이하며 - 상황극
#조명(A4 11.3포인트 글씨를 읽을 정도의 조명)
#이동(사회자의 다음 순서 준비하라는 사인이 있으면 발표 장소 주변에서 대기한다)
#발표자의 위치(발표할 두 명이 나란히 서서 발표)(특별히 퇴직자를 바라보는 위치를 만들 필요는 없음)
## stage start
#음악(석별의 정 - 조수미가 노래한다 : 오랫동안 사귀었던 정든 내 친구여 작별이란 웬 말인가 가야만 하는가. 음악은 여기까지 stop)
똥뫼:(사회자의 목소리와 시선으로)
30년 넘게 ㅇㅇㅇ청에 노고를 쏟으셨던 두 선배님이
직장생활의 마지막 유종의미를 거두기 위해 이 자리에 계십니다.
그리고
그분들보다 더 깊은 시름에 잠긴 똥뫼와
생기발랄한 ㅇㅇ이 두 선배님 앞에서 이야기를 나눕니다.
똥뫼: (ㅇㅇ과 눈을 맞추며) ㅇㅇ 주임님! 우리가 이 자리에 함께 있는 것이 우연은 아니겠죠?
ㅇㅇ: (똥뫼를 쳐다보며 눈을 맞춘 후)세상에 우연이란 건 없지 않을까요? 저는 세상 모든 만남은 다 인연이 있어 만난다고 생각합니다. 만남 자체가 운명일 수도 있고요.
똥뫼: (ㅇㅇ을 쳐다보며 빙긋 웃으며 농담을 던진다) 운명이라! 제가 결혼을 좀 늦게 할 걸 그랬나요?
ㅇㅇ: (이런 자리에서도 또 농담이셔라고 생각하며)
대본이나 읽으시죠
똥뫼: (대본을 보며)오늘 퇴직하시는 선배님들과의 만남도 그렇겠죠?
ㅇㅇ: (대본을 보며)물론입니다.
ㅇㅇ: (똥뫼 얼굴을 쳐다보며 무언가 안타깝다는 듯 입을 쭈뼛하며) 근데 주임님? 아 까 뵐 때부터 느낀 건데 어디 컨디션이 안 좋으세요?
똥뫼: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좌우로 두 번 흔든 후)많이 안 좋죠. 두 분 퇴임을 생각하니 저도 ㅇㅇ청을 떠나고 싶은 심정입니다.
ㅇㅇ: (눈을 동그랗게 뜨며 의아한 표정으로) 주임님! 오늘 이 좋은 자리에서 왜 그런 생각을 하세요?
똥뫼: (약간 장난기 있는 표정과 목소리로)주임님은 아무리 말씀드려도 모르셔요. 사실 은 남자들만 느끼는 그 무언가가 있어요. 여직원들이 득실대는 이 정글 같은 민원여권과에서 두 분이 함께 떠난다고 생각하니 요즘 제가 도통 입맛도 없고 의욕도 없어요. 이제는 정말 남자라고는 저 혼자밖에 없잖아요.
(두려운 눈초리로 여직원들을 쭉 훑어보며 탄식 섞인 목소리)(방백)
아! 승냥이 떼들의 이 눈빛!
(다시 대본을 보며)ㅇㅇ 주임님! 오늘 제가 고기 한 점 못 삼킬 것 같 은데, 이 피 같은 고기를 남길까 봐 좀 걱정이 됩니다.
ㅇㅇ: (방백)오늘 점심도 잘 드시더니만 도대체 무슨 소리야!
(똥뫼를 한 번 쳐다보면서 씩~ 웃으며)
아휴! 주임님은 별걱정을 다하세요. 제가 옆자리에 앉아서 다 처리할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 (3초의 정적 그리고 똥뫼는 다시 원고를 읽는다)
똥뫼: (送別答謝를 읽는 심정으로)
이렇게 ㅇㅇ표 과장님과 ㅇㅇ권 팀장님의 빈자리는 우리에게 너무나도 클 것 같습니다.
각자 이유는 다르겠지만 다들 두 분의 빈자리를 크게 느끼겠죠. 고목의 잎이 져야 나무가 이고 있던 하늘이 훤히 보이듯, 당분간 두 분 없는 민원실의 고충들이 여기저기 보이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사람 사는 세상은 그렇습니다.
만남 뒤 헤어짐이 온다는 것.
슬퍼도 시나브로 시간은 가고 누구나 잊힌다는 것.
그래도 우리는 기뻐하고 슬퍼해야 한다는 것.
품앗이는 하나 주면 하나 받는 것이 아니라 못 받을 수도 있다는 것.
그래야 우리가 사는 세상의 품격이 높아진다는 걸 모두가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오매불망 기다렸던 봄은 정말 요만큼(팔을 뻗어 엄지와 검지를 1cm 간격으로 모으며 아주 적다는 뜻을 전달) 간만 보이고 떠났습니다.
그리고 봄이 떠난 자리에 어느새 여름이 똬리를 틀었습니다.
먼저 간 봄이 그립기는 하지만 여름도 여름 나름의 장점이 있으니, 더디 가는 여름의 장점처럼 두 분도 남은 인생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리고 우리들 마음속에도 오랫동안 남아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누군가와 이별할 때 저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합니다.
떠나는 사람의 상실감이 더 클까?
아니면 보내는 사람의 상실감이 더 클까?
마음의 동요 없는 이별은 “이별”이란 단어 그 자체일 뿐 아무런 생명력이 없습니다.
아쉬움이 남아야 비로소 이별입니다.
두 분과의 짧았던 만남, 쉽게 다가서지 못했던 망설임, 못다 했던 말들.......
그래서 더 아쉬운 밤입니다.
함께 있을 때는 모르다가
보내고 나면 잔잔하게 밀려오는 것을 우리는 정이라고 부릅니다.
오늘 밤 그 정이라는 것이 제 마음을 살짝 흔들고 있습니다.
이별을 했어도 수십 번은 했을
그래서 굳은살 박여
무뎌져 있어야 할 제 심장에
아쉬움 담긴 촉촉한 선율이 흐르고 있습니다.
오늘 헤어져 멀리 떨어져 지내도
두 분에 대한 정은
제 마음 한쪽을 자연스레 메우며
오랫동안 머물 거라 믿습니다.
ㅇㅇ표 과장님! ㅇㅇ권 팀장님! 항상 건강하시고
두 분 앞날에 늘 행운이 함께하기를 기원하겠습니다.
2025년 유월 스무사흘 초여름 똥뫼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