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선편2(繼善篇)
(사마온공왈)
(적금이유자손 미필자손능진수.)
(적서이유자손 미필자손능진독)
(불여적음덕어명명지중 이위자손지계야)
‘사마온공이 말씀하시기를
돈을 모아서 자손에게 물려주어도 자손이 다 지킬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책을 쌓아놓고 자손에게 물려주어도 자손이 다 읽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아무도 모르게 음덕을 쌓아 자손을 위한 계책으로 삼음만 못하다.’
※ 以: 그래서
※ 以는 순접에만 쓰인다. 그리고, 그래서, 그리하여 등. 而는 순접 역접에 모두 쓰인다. 그리고, 그래서, 그리하여, 그러나 등.
※未必: 반드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부정사 뒤에 必이 오면 부분 부정이고 부정사 앞에 必이 오면 전체 부정이다.
盡: 다할 진
※ 不如: ~하느니만 못하다.
※ 冥冥之中: ‘아무도 모르게’로 해석.
※ 也: 이 글자가 문장 끝에 올 때 대개 마침표(.)로 보면 된다.
사마온공은 ‘자치통감’을 쓴 司馬光이다. 사마광은 송나라 때 뛰어난 업적을 세운 공로로 '온국공(溫國公)'이라는 작위에 봉해졌다. '온국공'에서 '온(溫)' 자를 따고, 높은 벼슬아치를 높여 부르는 '공(公)' 자를 붙여서 ‘司馬溫公’이라 불렸다.
한문을 보면 부정사 不자와 未자가 문장에 사용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는데 어느 글자가 오느냐에 따라 약간의 해석 차이가 있다.
不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모두 부정하고, 未는 과거와 현재만 부정한다.
미족(未足)은 아직 충분하지 않다는 의미여서 앞으로 충분할 수도 있다는 여지를 남겨둔 의미이고, 부족(不足)은 충분하지 않다는 단정적인 의미다.
또한 위 문장에서 ‘冥冥之中’처럼 같은 글자를 연달아 쓰는 것은 의태어나 의성어를 표시하기 위함이다. 어두울 冥자를 이어서 쓴 건 어두운 상태를 표현하기 위함이다. 직역하면 ‘어두운 가운데’ 의역하면 ‘아무도 모르게’가 된다.
위의 글은 진정한 유산은 물질이나 지식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남모르는 선행(善行)과 덕(德)에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누가 보지 않더라도 자신이 위치한 곳에서 꾸준히 선한 영향력을 펼치다 보면 그 영향력이 자손에게 이어진다는 의미이다.
(경행록왈,)
(은의광시 인생하처 불상봉,)
(수원막결 노봉협처 난회피.)
‘은과 의를 넓게 베풀어라. 사람이 살다 보면 어느 곳에서인가 서로 만나지 않겠는가,
원수와 원한을 맺지 마라 길 좁은 곳에서 만나면 회피하기 어렵다.’
※ 廣施: 넓을 광, 베풀(펼) 시. 施자는 일상생활에서도 많이 쓰이는 글자다. 예) 施設(시설) 施行하다(시행)
※ 狹處: 좁을 협, 곳 처. 좁은 곳.
경행록은 송나라 때 출간되었으나 현재 지은이를 알지는 못한다.
볕 景자와 행할 行자를 써서 좋은 행실을 모아 놓은 책이란 뜻이다.
세상은 생각보다 좁다.
당장은 아무 상관 없는 것처럼 보이고, 다시는 볼 일 없을 것처럼 보여도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될 인연은 반드시 만나게 된다는 의미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원한을 품거나,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이다.
(장자왈,)
(어아선자 아역선지,)
(어아악자 아역선지,)
(아기어인무악 인능어아 무악재.)
‘장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나에게 선한 자 나 또한 그에게 잘하고
나에게 악한 자에게도 나 역시 그에게 잘한다
내 이미 남에게 악함이 없었으니 남 또한 나에게 악함이 없을 것이다’
※ 於: 에, 에게, 에서, ~을, ~때문에 등 여러 의미로 해석되는 조사이다.
※ 哉: 어조사로 쓰일 때 느낌표(!) 혹은 물음표(?)로 해석. 위 문장에서는 느낌표로 해석한다.
※ 旣: 이미, 먼저. 앞서
한문에서는 I ate (나는 먹었다), I eat (나는 먹는다), I will eat (나는 먹을 것이다) 등과 같은 문장처럼 시제(Tense)가 없다. 앞뒤 문장을 보고 문장을 해석해야 한다.
다행히도 위 문장(我旣於人無惡)처럼 이미 旣자가 있는 경우에는 앞뒤 문장을 볼 필요 없이 과거로 해석하면 된다.
위 글귀의 교훈은 선을 통해서 관계의 선순환을 만들라는 의미다.
(동악성제수훈왈)
(일일행선 복수미지 화자원의,)
(일일행악 화수미지 복사원의,)
(행선지인 여춘원지초 불견기장 일유소증,)
(행악지인 여마도지석 불견기손 일유소휴.)
‘동악성제가 가르침을 내려 말하기를
하루 선을 행하면 복은 비록 미처 이르지 않더라도 화는 저절로 멀어지고
하루 악을 행하면 화는 비록 아직 이르지 않더라도 복은 저절로 멀어진다
선을 행하는 사람은 봄 동산의 풀처럼 그 자라남이 보이지는 않으나 날로 증가함이 있고
악을 행하는 사람은 칼을 가는 돌(숫돌)처럼 그 덜어짐이 보이지는 않으나 날로 이지러짐(마모됨)이 있다.’
※ 未: 아직 ~하지 않았다. ‘미처’나 ‘아직’으로 해석.
※ 矣: (어조사 의) 쉼표(,)로 해석.
※ 磨刀: 칼을 갈다.
※ 虧: 이지러질 휴
동악성제는 도교(道敎)에서 모시는 신선으로 사후 세계를 다스린다고 하다.
문장의 지은이가 없다. 도교를 믿는 누군가가 동악성제라는 가상의 신을 통해 전달하는 메시지다.
위 문장은 꾸준한 선행을 하면 그 선행의 힘이 보이지 않게 조금씩 쌓여 언젠가 큰 복으로 돌아오고, 악행을 행하면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복을 야금야금 갉아먹어 결국 큰 화를 초래한다는 의미이다.
(자왈, 견선여불급 견불선여 탐탕.)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선을 보거든 미치지 못한 것처럼(아직 도달하지 못할까 봐 애태우듯이) 하고 잘못을 보거든 끓는 것을 더듬는 것처럼 하라.’
※ 如不及(여불급)은 '아직 미치지 못한 것처럼' 또는 '뒤처질까 조바심 내듯이'로 해석.
※ 探湯(탐탕)은 '뜨거운 물을 더듬다' 또는 '끓는 물에 손을 넣다'라는 뜻.
위 문장은 짧지만 해석이 어려운 문장이다. 공자님의 선에 대한 열정적 의지와 악에 대한 단호함이 읽히는 문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