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심보감 순명편(順命篇)

정해진 운명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근심에서 벗어날 수 있다

by 똥뫼

이십 대 때 읽었던 ’순명편‘에 대한 느낌과 오십이 넘어 읽은 ’순명편‘의 느낌은 참 많이도 다르다.


무모해 보일 수도 있지만 철옹성 같았던 무언가에 저항하고, 무언가를 탐구하기 위해 밤새워 토론했던 이십 대 때는 ’순명편‘을 그냥 옛사람들의 생각 정도로 치부했었다. 그러나 지금 오십 대 중반으로 치닫는 나이가 되어보니 이해가 가는 대목이 일정 부분 있다.


옛사람들은 지금의 나보다 ’순명편‘에 대해 더 많이 공감했을 것 같다. 삼십 대라면 이 글을 읽고 공감을 못 할 수도 있겠지만 “예전 부모님께서 왜 내게 그렇게 말씀하셨지?” 이런 의문을 이해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요즘 사람들은 順命(순명)이라는 단어를 거의 쓰지 않는다. 순명이 뭐야? 宿命(숙명)인가? 順理(순리)인가? 아니면 運命(운명)인가? 분별이 쉽지는 않다.


순명은 하늘이 정해준 운명을 거스르지 말고 순리대로 따르라는(그래야 행복하게 살 수 있다) 의미로 태도와 행동을 강조하는 측면이 강하다 예를 들어 “죽고 사는 것은 명에 달려 있으니 너무 죽음을 두려워 말고 현 상황에 충실하라” 등.


숙명은 피할 수 없는 운명에 대한 처지나 조건을 설명할 때 주로 쓰이며 예를 들어 “그가 가수가 되는 것은 숙명이었다.”처럼 필연성을 강조한다.


순리는 이치를 따르다는 의미로 자연의 법칙이나 사물의 이치 등 합리적인 방안을 표현할 때 주로 쓰인다. 우리가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논쟁할 때 “문제를 순리대로 해결하자”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이런 상황에 흔히 쓰인다.


운명은 숙명과 비슷한 상황에서 쓰이지만, 숙명보다는 약한 의미로 이해하면 될 듯하다. 숙명은 노력에 따라 바뀔 수 없는 것인데 반해 운명은 노력으로 바꿀 수 있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순명편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때로는 상황을 겸허히 인정하고, 과도한 집착을 버리며, 순리대로 살아가야 행복을 얻을 수 있다.‘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子曰, 死生有命 富貴在天.(자왈, 사생유명 부귀재천.)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죽고 사는 것은 명에 달려 있고 부유함과 귀함은 하늘에 달려 있다‘


※ 有命(유명): 命(명)에 달려있다, ’운명(運命)이다‘로 해석해도 됨

※ 在天(재천): 하늘에 달려 있다, ’하늘의 뜻이다‘로 해석해도 됨


이 문장도 단순한 운명론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인간의 힘으로 바꿀 수 없는 영역을 인정하고 겸허히 수용하면 쓸데없는 근심과 불안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의미다.




萬事分已定 浮生空自忙.(만사분이정 부생공자망.)

’모든 일의 분수는 이미 정해져 있는데 덧없는 인생 공허하게도 혼자서만 바쁘다.‘


※分已定(분이정): 분수는 이미 정해져 있다

※ 浮生(부생) 덧없는 인생


이 문장을 이해할 때 주의할 점은 인간의 노력 자체를 부정한다는 뜻이 아닌, 인간의 끝없는 탐욕을 경계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




景行錄云, 禍不可倖免 福不可再求.

(경행록운, 화불가행면 복불가재구.)

경행록에 이르기를, 재앙은 요행으로 면하기 어렵고 복은 다시 구하지 못한다.


※ 倖(행): 요행 행

※ 免(면): 면할 면


인간의 삶에서 다가오는 재앙은 운에 기대어 피할 수 없고, 이미 주어진 복이라 할지라도 소중히 여기지 않으면 다시 얻기 어렵다는 의미다.




時來 風送藤王閣,(시래 풍송등왕각,)

’때가 오면 바람이 (왕발을) 등왕각으로 보내주고‘

運退 雷轟薦福碑. 운퇴 뢰굉천복비.)

‘운이 다하면(물러가면) 벼락이 천복비(薦福碑)를 때린다.’


雷(뢰): 우레 뢰

轟(굉): 울릴 굉

薦福(천복): 천복사(薦福寺)라는 절 이름

碑 (비): 비석 비


위의 문장에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촉주의 도독 염백서(閻伯嶼)가 등왕각 중수(고쳐 짓다)를 기념하려고 잔치(낙성식)를 열었다. 도독은 이 잔치에 각지의 문인들을 초청하여 등왕각의 아름다움을 칭송하는 글을 짓게 할 생각이었다. 이는 도독의 의도된 계획으로 도독은 당대의 문인들 앞에서 자신의 사위를 인정받게 하고 싶은 욕심에 사위에게 미리 글을 써 놓으라고 시켰다.


이 잔치에 참석하기 위해 왕발이라는 젊은이도 멀리서 등왕각을 향해 배를 타고 가고 있었다. 먼 거리에서 출발한 왕발은 잔치에 참석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때 순풍이 불어 왕발의 배를 등왕각이 있는 곳까지 실어 보내주었다.


이때 왕발이 지은 글이 등왕각서(滕王閣序)이고 이 글로 인해 왕발은 당대 최고의 문인으로 등극하게 되었다. '時來 風送藤王閣' 즉, 때를 만나니 바람이 등왕각으로 보내준다는 글귀는 여기서 유래되었다.


구양순(歐陽詢)은 당나라(618~907) 초기의 유명한 서예가다. 당대의 사람들은 구양순의 글씨를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여길 만큼 칭송했다. 우리나라 인물로 비유하자면 조선 중기 한석봉이나 조선 후기 김정희와 같은 존재였던 것 같다. 그가 천복사(薦福寺)에 비문을 썼는데, 이 비석이 천복비(薦福碑)다. 이 비문이 너무나 훌륭해서 당시 사람들은 천복비를 아끼고 칭송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구양순의 시대가 지나고, 그의 명성이나 그 비석의 가치가 잊힐 때 즈음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져 이 천복비를 강타했다고 전해진다. ‘運退 雷轟薦福碑’ 즉, 운이 물러가면 벼락이 천복비(薦福碑)를 때린다는 글귀는 여기서 유래되었다.



列子曰, (열자왈,)

’열자께서 말씀하시기를‘

癡聾痼啞家豪富(치롱고아가호부)

’어리석고, 귀먹고, 고질병 있고, 말을 못 해도 집이 큰 부자고

智慧聰明却受貧,(지혜총명각수빈,)

지혜롭고 총명해도 도리어 가난하게 산다

年月日時該載定(연월일시해재정)

타고난 운명(사주, 연월일시)은 모두 정해져 있으니

算來由命不由人.(산래유명불유인.)

헤아려 보면 운명에 달린 것이지, 사람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다.


※ 癡(치): 어리석을 치, 聾(롱): 귀먹을 롱, 痼(고): 고질 고(고질병이 있는), 啞(아): 벙어리 아

※ 却(각): 도리어 각

※ 智(지): 지혜 지, 慧(혜): 지혜 혜, 聰(총): 총명할 총

※ 該(해): 마땅할 해, 당연히 ~하다, 모두

※ 載(재): 실을 재, 기록할 재

※ 算來(산래): 헤아려 보면


열자의 본명은 열어구(列禦寇)다. 그는 중국 전국시대(BC 475~221년경)의 사상가로 알려져 있다. 전국시대 정(鄭)나라 사람이라고도 전해진다. 도가 사람임을 유념하며 이해하면 될 것 같다.


인간이 노력해도 바꿀 수 없는 영역이 있으니, 과도한 욕심을 버리고 순리대로 살아가는 것이 마음의 평온을 얻는 길이고, 곧 이것이 順命(순명)이다는 의미다.



孟子曰, 知命者 不憂(지명자불우)

‘운명을 아는 사람은 근심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맹자(기원전 372년 ~ 기원전 289년)를 동시대에 공자 밑에서 수학한 제자로 알고 있다. 하지만 공자와 맹자는 같은 시대를 살지 않았다. 맹자는 공자가 생을 마친 후 100여 년이 지난 다음에야 태어났다.


공자의 손자인 子思(자사)에게서 학문을 배웠고, 혼란스러운 전국시대에 여러 제후국을 다니면서 당시 사상가들과 논쟁하고 제자들을 가르치며 공자의 유학 사상을 계승하고 발전시켰다.


논어(論語)라는 책이 공자의 가르침을 그의 제자들이 기록했듯 四書(논어, 맹자, 대학, 중용)에 속하는 '맹자(孟子)'라는 책도 맹자의 가르침과 행적을 제자들이 기술한 책이다.


이 문장 역시 바꿀 수 없는 운명의 영역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근심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의미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명심보감 천명편(天命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