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7년 여름, 하카타
1587년 여름, 하카타
하카타의 바다는 저문 햇빛을 오래 끌어안고 있었다.
타르 냄새와 젖은 밧줄의 비릿함,
멀리 마른 생선에서 올라오는 염내가
바람을 타고 연회장까지 스며들었다.
비단 장막이 드리운 그곳,
등빛이 겹겹의 주렴을 통과해 바닥의 다다미에 맺혔다.
문이 열리고,
전란의 쇳빛 위엄을 지닌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규슈를 굴복시킨 손이 이제 잔을 들어 올리며,
천천히 공간을 장악해 나갔다.
쓰시마 도주 소 요시시게와 아들 요시토시는
서로 눈도 맞추지 못한 채 무릎을 더 깊숙이 끌어안았다.
도주의 등허리를 타고 흐르는 땀줄기가
옷깃 속으로 스며들었다.
히데요시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침묵이 방 안을 가득 채우자,
견딜 수 없이 무거워졌다.
이윽고 그가 담담히 입을 열었다.
“조선에 전하라. 일본은 이미 하나로 통일되었다.
이제 조선의 국왕이 나를 알현하러 와야 한다.
기한은 내년까지다.”
그 말은 마치 벼락처럼 떨어졌다.
방 안의 공기가 순간 싸늘히 얼어붙었다.
소 씨 부자는 고개를 숙인 채 잠시 말을 잃었다.
서로의 눈빛 속에 곤혹스러움이 스쳐 갔다.
도주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조선은 예로부터 명나라를 상국으로 섬겨왔습니다.
일본을 그에 준하는 나라로 대하지 않을 터이니...
입조를 요구하면 반드시 거절할 것입니다.
대신 인질과 공물을 요구하심이....”
그러나 말은 끝나지 못했다.
히데요시의 거칠어진 날숨에
도주는 목소리를 말아 삼킬 수밖에 없었다.
히데요시가 미간을 좁히며 끊어진 말을 다시 이었다.
“나는 조선 왕이 직접 내 앞에 무릎 꿇는 것을 보고자 한다.
그 외의 것은 필요 없다.”
그 순간, 요시시게의 복사뼈 근처가 얼음처럼 차가워졌다.
그는 쓰시마 해협의 물길을 떠올렸다.
난류와 한류가 뒤엉켜 소용돌이치던 수역,
작은 왜선들이 드나들던 그 길.
바다는 언제나 문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말은
바다를 문이 아니라 칼날로 바꾸고 있었다.
‘이 명이야말로 반드시 큰 화를 부르리라.’
가슴속에서 잠긴 한숨이 거칠게 몸을 뒤흔들었으나,
끝내 목 너머로 나오지 못했다.
“명을… 따르겠습니다.”
도주의 그 말이 바닥을 통해 방 전체로 퍼져,
마치 젖은 종이가 물을 빨아들이듯
모든 사람의 등골을 적셨다.
그제서야 히데요시는 순순히 술잔을 들었다.
사케가 잔에 맺혔다가 그의 입술을 적셨다.
목울대가 한 번 움직이고,
그 움직임이 곧 방의 질서가 되었다.
좌우에 앉은 장수들이 뒤늦게 따라 잔을 비웠다.
웃음은 없었다.
다만 마른 목을 축이는 소리와 옷자락 스치는 소리,
종이 문 바깥에서 대나무가 바람에 스치는 서걱임만이
연회장을 맴돌았다.
히데요시는 잔을 내려놓으며 짧게 손짓했다.
기록관이 붓을 들어 막 방금의 명을 글자로 묶었다.
먹빛이 종이에 스며드는 속도가 유난히 또렷했다.
문장이 생겨나는 그 순간,
항구의 깃대들이 바람을 받아 퍼덕거렸다.
소 요시시게는 아들과 눈길을 스쳤다.
오로지 살아남기 위한 곡선.
그러나 오늘의 곡선은 하나의 직선 앞에서 무력했다.
직선은 명확했다.
“내년까지.”
시간은 갑옷보다 무겁게 그들의 어깨를 눌렀다.
히데요시는 미소 비슷한 것을 한순간 띄웠다.
그는 더 말하지 않았다.
더 말할 필요가 없었다.
연회장의 불빛이 조금 낮아지고,
바깥의 밤이 한 층 짙어졌다.
이제, 불씨가 던져졌다.
작은 불씨 하나가 바람을 타고, 바다를 건너,
아직 불지 않은 수천의 장작더미를 향해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날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