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9년 초가을, 한양 경복궁
1589년 초가을, 한양 경복궁
요시토시는 사신단을 이끌고 궁궐의 높은 담장을 지나,
조정의 중심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안개 자욱한 바다에서 출발한 그의 여정은
이제 모두의 운명을 좌우할 중대한 순간에 닿아 있었다.
푸른 비단 장막 너머로 드러난 대신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돌처럼 매끈하고 차가웠다.
요시토시는 문턱 앞에서 짧게 숨을 고르고,
허리를 접었다.
무릎이 마루에 닿기 직전,
그는 고개를 낮추어
그들의 신발 코와 옷자락만을 바라보았다.
“조선 국왕께 간청드립니다.”
목이 메었다.
간신히 결을 가다듬고는 말을 이었다.
“통신사를 파견해 주십시오.
바닷길이 험하다 하시면,
저희가 먼저 길을 열고 안내하겠나이다.
일본과 조선이
다시 평화의 바다를 나누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겠습니다.”
그의 갈라지는 목소리가
궁정의 장막 속으로 파고들었다.
그 순간 신료들의 혼란한 웅성거림이 마구 뒤섞였다.
“예전과는.... 분위기가 달라졌다.”
누군가 속삭였다.
“일본이 정녕 변했다는 것인가?”
“허나… 바닷길이 험하다 하지 않았는가.”
“그러기에 저들이 직접 안내하겠다 하지 않는가.”
속말들이 번져 나가자
곧 대전의 공기가 활시위를 당기듯 점점 팽팽해져 갔다.
그러던 차에,
한 신료가 앞으로 나서며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일본은 이미 전쟁을 준비하는 듯합니다.
지금의 위협은 허상이 아니라 당면한 현실입니다.
언제까지 거부로만 일관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자 곧바로 또 다른 신료가 맞섰다.
“그러나 체면을 잃은 외교는 재앙입니다.
일본과의 교섭이 필요하다 해도,
우리의 위엄과 실리를 함께 지켜야 합니다.”
이어 말들이 터져 나오며 언성이 점점 높아지고,
조정의 공기는 마치 비바람 전의 하늘처럼
팽팽히 부풀어 올랐다.
그때,
조용히 침묵을 지켜오던 한 신료가 앞으로 걸어 나왔다.
“서화동을 송환하라 하십시오.
그리한다면, 통신사 파견을 검토하겠다고 답합시다.”
그 말이 궁 안에 울려 퍼지자,
일순간 대전은 적막에 잠겼다.
서화동―전라도 진도 출신으로,
왜구에게 투항해 앞장서 노략질을 일삼던 자.
그를 돌려보내라는 조건은,
단순한 요구가 아니라
상대의 심중을 드러내라는 뜻이었다.
말로는 얼마든지 선의를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잡은 것을 놓는 손,
빼앗은 것을 돌려주는 손,
그 손끝이야말로 성의를 증명한다.
신료들은 숙의 끝에
그 의견을 선조에게 아뢰었다.
왕은 깊고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좋다. 상대의 성의를 보고,
신중히 결정하도록 하라.”
그제야 조선의 의사가 요시토시에게 전해졌다.
조건은 명확했다.
성의를 보일 것.
그리한다면 통신사 파견을 고려하겠다는 것이었다.
요시토시는 망설이지 않았다.
그는 곧장 행동에 나섰다.
서화동을 송환하는 데 그치지 않고,
왜구에 붙잡혀 끌려갔던 수십 명의 조선인들,
이미 타국의 이름으로 불리던 자들,
바다의 칼자루가 되어버린 손들을
하나둘 풀어 항구로 실어 보냈다.
쓰시마의 그 처절한 몸부림은
마침내 조선의 마음을 흔들었다.
1589년 9월,
조선은 일본 통일을 축하한다는 명분 아래
통신사 파견을 결정하였다.
그 순간, 바다는 다시 길을 열었다.
그러나 그 길은 단순한 외교의 길이 아니었다.
그것은 앞으로 다가올 거대한 전쟁과 파국,
그리고 한 줄기 희망이 교차하는 운명의 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