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2년 임진년 음력 4월 28일 한양 경복궁
1592년 임진년 음력 4월 28일 한양 경복궁
승정문 종이 급히 울렸다.
짧고 급한 종음이 전각의 기둥을 타고 궁을 흔들었다.
충주에서 신립이 패했다는 전갈이
궁궐의 회랑을 타고 들어와 번개처럼 사방으로 번졌다.
상(선조)은 즉시 대신과 대간을 불러 선정전으로 들였다.
종이를 움켜쥔 선조의 손마디 핏줄이 앙상히 솟았다.
상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이제… 파천을 의논하고자 한다.”
한마디가 떨어지자
붓끝 긁는 소리와 숨소리가 한꺼번에 멎었다.
섬돌 아래로 낮은 웅성거림이 파도처럼 번졌다.
영중추부사 김귀영이 먼저 앞으로 나섰다.
“전하, 종묘와 원릉이 모두 이 도성에 있사온데,
어찌 떠나시렵니까.
경성을 굳게 지키고
외원(外援)의 도착을 기다리소서.”
굵은 목소리였지만 끝은 떨렸다.
이어 우승지 신잡이
검은 띠를 바짝 고쳐 매며 고개를 들었다.
“전하, 끝내 파천을 명하시면…
신은 종묘 대문 밖에서 스스로 결단할 것입니다.
뒤를 따를 수 없습니다.”
한마디 한마디가 돌처럼 바닥에 떨어졌다.
박동현의 눈가가 붉어졌다.
“전하, 일단 전하의 가마가 성문을 벗어나면
인심이 무너질 것이옵니다.
가마꾼조차 모퉁이에서
연(輦_임금의 가마)을 버리고 달아날 것이옵니다.”
그가 말을 그치자 좌우의 무릎이 덜썩 거렸고,
연로한 대신들마저 소매로 눈을 훔쳤다.
상의 얼굴빛이 굳어졌다.
그는 말없이 손을 내저어 회의를 멈추게 하고는
잠시 내전으로 몸을 돌렸다.
궁궐 바깥 돌담엔 초여름의 눅진한 바람이 스쳐갔다.
먼 데서 까치가 울었고,
조금 더 가까운 데선 말울음 소리가
바람결에 실려 왔다.
남도의 소식은 이미 새까맣게 달아올라 왔다.
도성 곳곳에 이미 동요의 기색이 역력했다.
상은 다시 전각으로 나와
떨리는 숨을 가다듬고 대신들을 향해 말을 이었다.
“사람들 마음이 위태롭고 불안하니,
그들부터 일러 안심시키도록 하라.”
상의 말투는 조용했으나,
억지로 가라앉힌 물 위에 돌을 하나 더 얹는 기세였다.
모두 숨이 가빠왔다.
곧바로 전교가 내려
백성의 동요를 가라앉히라는 분부가 퍼져나갔다.
그날 늦은 시각,
상은 다시 선정전에 나아가 군정과 이주의 실무를 챙겼다.
체찰사 이원익을 불러 세워,
옛날 관서(서북지역)에서 민심을 얻던 일을 상기시키며
낮고 분명히 이르렀다.
“남쪽 고을들이 연일 무너진다.
만약 적이 경성 가까이 이르면 관서로 파천해야 한다.
이 뜻을 분명히 알라.”
이원익이 깊이 숨을 참고는 답했다.
“신이 앞서 길을 닦겠나이다.
군량을 준비하고, 강을 건널 나루를 정돈할 것이며
실제의 것들을 순서를 정하여 세울 것입니다.
심려치 마옵소서”
그리고 아주 낮게 말을 덧붙여 올렸다.
“전하, 떠남은 부끄러움이 아니라
보존의 도리일 때가 있사옵니다.
다만 돌아올 길을 잊지 않게 해주십시오.”
그가 물러나자,
상은 내전에서 혼자 오래 앉아 있었다.
그날 밤, 선조는 광해군을 세자로 책립할 뜻을 굳혔다.
왕실의 맥을 먼저 바로 세워야 ‘떠남’도 ‘돌아옴’도 있을 터였다.
밤이 깊어 등불의 불꽃이 동그랗게 떨렸다.
간헐적으로 화로의 숯이 ‘톡’ 하고 터졌다.
장막 너머의 도성은 묵직한 숨을 쉬었다.
떠나면 임금이 백성을 버린다는 원망이,
남으면 나라의 정수(精髓)마저 한칼에 잃는다는 두려움이 맞부딪혔다.
떠날 것인가—아니, 어떻게 떠나고 어떻게 돌아올 것인가.
그 질문이 전각의 기둥마다에 새겨져,
한밤의 바람에도 지워지지 않았다.
그리고 결심을 재촉하는 발소리가,
눈에 보이지 않는 길 위에서
이미 아주 멀리서부터 가까워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