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금대

1592년 임진년 음력 4월 28일, 달천에서 탄금대

by HistoryFile


1592년 임진년 음력 4월 28일, 달천평야에서 탄금대



그때까지 뒤편 널찍한 들 한가운데

병풍처럼 서 있던 조선 보병이 뒤늦게 전열을 움직였다.


깃발수가 북을 올렸고,

창수들이 맞물린 방패를 풀었다.


하지만 물이 찬 저지의 논두렁, 무릎까지 차오르는 풀,

발자국마다 ‘츳’ 하고 끌리는 진창.


좌우 일본군의 포진이 반달처럼 닫혀 들어오자,

기병대가 사라진 보병대는 모루가 아니라

막다른 길의 사람들처럼 서 있었다.


첫 줄의 방패가 맞부딪히자,

뒤의 두 줄이 우르르 앞으로 쏟아져 나와

서로 어깨를 밀치며 줄이 터졌다.


우익의 철포가

그 틈을 노려 ‘퍽, 퍽’ 박아 넣었고,

좌익의 장창이

둔덕에서 내려와 옆구리를 뚫었다.


뒷줄에서 활을 쏘던 사수들은 시야를 잃었다.

연기와 소나기 같은 탄환 소리,

울컥 치는 화약과 젖은 가죽 냄새가

한꺼번에 코를 때렸다.


포성이 일정한 간격으로 들판을 눌렀다.

무릎—반무릎—기립.

세 줄이 바늘귀처럼 교대로 불을 틔웠다.


그 사이 사이마다 장창의 ‘슥’ 하는 소리,

방패와 방패가 ‘둑-둑’ 부딧치는 소리,

나팔의 짧은 소리가 정확히 섞였다.


조선 보병 전열의 구석이 구겨지기 시작했고,

좌우의 끈이 풀리며 뒤에서 앞으로 밀려 들어왔다.


누군가는 “뒤로!”를 외쳤고,

누군가는 “흩어지지 마라!”를 외쳤다.

둘 다 거의 같은 목소리였다.


명령은 공중에서 서로 부딪혀 깨어졌다.

누군가는 무릎을 꿇고 손을 들어 보였으나,

앞줄의 몸이 뒤로 쓰러지며 그를 덮었다.


누군가는 칼을 던지고 달아나려 했으나,

이랑과 진창이 발을 비틀어 잡아

길 위에서 한 바퀴 돌게 만들었다.


이윽고 무너짐은 방향을 얻었다.


소나무 산 쪽으로 먼지가 크고 느리게 일었다.

그 방향으로 빠져나가려는 줄이 생겼다.


줄은 줄 끼리 발을 걸었다.

넘어지는 자는 어김없이 앞사람의 발목을 잡았고,

뒷사람은 다시 누군가의 어깨가 잡아챘다.


전열이 완전히 흐트러지자,

보병은 하나하나의 사람으로 부서졌다.


일본군은 쫓아 부수는 대신, 닫아 막았다.

좌익이 둔덕에서 더 깊이를 만들고,

우익이 산그늘로 더 내려왔다.


도망칠 길을 스스로 좁히며 달아나는 줄을,

일정한 간격의 포성이 마치 방아처럼 찍어 눌렀다.


무너지는 전열의 가장자리에서,

신립이 말을 돌렸다.


그는 깃을 내려 쥐고

살아남은 병사들의 잔존을 모아

후퇴의 방향을 만들었다.


“탄금대로.”


짧은 한 마디가 남은 자들의 발목을

북쪽 절벽으로 이끌었다.


강이 절벽을 굽이돌며 흘렀고,

물살은 그날따라 음울한 소리를 냈다.


탄금대—바위가 물 위로 돌출된 자리.

신립은 그곳에서 잠깐 멈춰 뒤를 보았다.

핏빛이 진동하는 달천평야의 질척임이

일렁이듯 눈에 들어왔다.


그는 활을 꺼내 두세 발을 당겼다.

화살은 연기 틈을 뚫고 방패의 틈새를 찾아갔다.

이어 칼을 뽑아 말머리를 낮게 틀었다.

호위하던 몇 사람의 방패가 그의 말가슴에 밀렸다.


좌우의 좁은 길이 절벽으로 수렴하듯 들어왔다.


비는 가늘어졌고,

어렴풋한 빛이 물 위에서 깨졌다.


그는 갑옷의 매듭을 한 번 만지고,

투구를 벗어 부하에게 내밀었다.


“내가 길을 잘못 택했다.”


입술이 아주 흐릿하게 움직였다.

그리고 말머리를 강 쪽으로 돌렸다.

말이 한 번 고개를 젖히고,

바위 끝을 차고 공중으로 떠올랐다.


물이 뒤집히며 그를 삼켰고,

흰 거품이 한 번 크게 일었다가,

금세 평평해졌다.


절벽 위에 남은 자들이 고개를 숙였다.

어느 누구도 소리를 내지 않았다.


달천의 물은 계속 흘렀고,

남한강의 물길에 합류해 도성 아래로 나아갔다.

들판에서는 아직도 포성의 메아리가 낮게 울렸고,

갈대는 그 소리에 맞춰 흔들렸다.


일본군의 북소리는 질서를 잃지 않았다.

조선의 깃발은 강바람에 젖어 무거워졌다.


그날 저녁,

탄금대의 바위는 물기를 더 품었다.

남은 자들은 그 위에서 서로의 숨을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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