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시작할 수 있기에 실패를 극복할 수 있다

옛 원고를 다시 작성하며

by 곽작가 역사트레킹


내 아이디는 ‘곽작가’다. 하지만 아이디에 맞지 않게 아직 책다운 책을 써 본 적이 없다. 공저에 이름 석 자를 올려본 적은 있다. 또한 인쇄를 받고 여행책자를 발행한 적도 있다. 하지만 그런 작업들은 내가 생각해봐도 ‘작가’라는 타이틀에 어울리는 커리어는 아닌 듯싶다.


최첨단 IT시대에 뒤떨어진 생각일지 모르지만 나는 아직도 책이라고 하면, 광화문에 있는 대형서점 매대에 쫘악 깔린 종이책부터 떠올린다. 그 매대에 깔릴 수 있는 책을 써야 작가라는 타이틀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 때문에 늘 한쪽에서는 저 아이디를 입 밖으로 자신 있게 내뱉지 못한 적이 많았다. 그렇다면 저 아이디를 쓰지 않으면 되지 않을까. 왜 나는 스스로 우물쭈물하는 상황을 연출했을까.


작가, 작가... 그렇게 계속해서 언급을 하면 진짜로 작가가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일부러 우물쭈물할 상황이 많을 것을 알면서도 ‘곽작가’라는 아이디를 고집했다. 나는 <역사트레킹 서울학개론> 강사로 활동을 하고 있는데 수강생들에게 내 소개를 할 때도 곽작가라는 아이디를 꼭 말한다. 그리고는 도둑이 제 발 저리듯 선수를 친다.


“아직 제 이름으로 나온 단행본은 없어요.”


코로나19(covid-19)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해야 하는 2020년 4월.


나는 지금 열심히 <트레킹은 생각창고>라는 원고를 쓰고 있다. 제목에도 나와 있듯이 <트레킹은 생각창고>는 트레킹, 정확히는 역사트레킹을 행하며 얻는 사색들을 글로 옮기는 것이다. 사실은 예전에 썼던 글들을 기반으로 재작성을 하고 있다. 원래 명칭은 <역사트레킹 서울학개론>이었다. 광화문 대형서점 매대에 쫘악 깔릴 것을 염두에 두고 썼었다.


시작이란 말은 성공보다는 실패와 더 가깝다. 처음 시작해서 성공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 실패가 두려워 시작조차 못하는 사람도 있다고 하지 않던가.


<트레킹은 생각창고>도 출판사에서 퇴짜를 맞는 등 여러번의 실패를 겪은 원고다. 처음 쓰기 시작한 해가 2013년도이니 실패를 맛봤어도 벌써 7년이나 맛본 원고다. 이렇게 오래도록 쓴맛을 맛 본 원고이니 이번에는 제대로 다시 작성해 볼 생각이다. 오기가 생긴 것이다. 어차피 코로나 때문에 역사트레킹 강의도 못하니까 시간도 남는다. 한 번 더 실패한다고 더 낙담하지도 않을 거 같다. 대신 더 정교한 원고 작성을 위해 실패 원인 분석을 더 열심히 하기로 했다.


- 백과사전식 지식나열로 눈이 혼란스럽고 가독성이 떨어짐.

- 역사서인지 여행서인지 정확한 포지션이 그려지지 않음. 차라리 그 둘을 화학적으로 잘 결합시키는 것이 더 좋아 보임.

- 필자인 내 생각이 잘 드러나지 않았음. 학술서가 아닌 만큼 주관성을 아예 배재할 필요는 없어 보임.

- 원고 분량은 꽤 되지만 완성본이 되기에는 부족함.

- 역사트레킹 관련 책인데 지도가 없음. 무언가 허전함.


이런 약점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고 보니 약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상황이 이러니 원고를 싹 다 뜯어 고치는 수준까지 이르렀다. 재작성하는 시간이나 새로 쓰는 시간이나 별 차이가 없었다. 그만큼 공을 많이 들이고 있는 셈이다.


<트레킹은 생각창고>가 종이책이 되어 나를 진짜 작가로 만들어 줄 수 있을까? 사인회도 하고, 강연도 하고... 내용이 역사트레킹이니 야외트레킹 특강은 당연한 거고!


아직 원고 작업이 끝나지 않았으니 당분간 내 아이디를 말하며 우물쭈물 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번에도 출간에 실패할지도 모른다.


다시 시작할 수 있기에 우리는 실패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이다. 단 한 번의 붓놀림으로 성공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겠는가? 쓰고 고치고, 쓰고 고치고 해야 대형서점 매대에 쫘악 깔릴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누구의 라면 받침대로 쓰이는 건 나중에 문제고.


실패하더라도 나는 계속 쓸 것이다. 다시 시작할 수 있으니까! 결국에는 실패를 극복할 것이다. 그렇게 진짜 작가가 되는 것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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