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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작가 역사트레킹 Nov 04. 2022

의성, 마늘도 좋지만 빙계계곡도 좋아!

의성 빙계계곡 역사트레킹






경북 의성군 여행은 계속됐다. 금성면 탑리오층석탑과 조문국 유적지를 탐방 후, 춘산면에 있는 빙계계곡으로 이동했다. 빙혈로 유명한 빙계계곡에는 빙산사지 터와 빙산사지 오층석탑이 있다. 빙산사지 오층석탑도 친견하고, 빙혈에서 나오는 천연 에어컨 바람도 맞을 겸 빙계계곡으로 발걸음을 한 것이다.


탑리오층석탑이 있는 금성면에서 군내버스를 타고 현리2리 마을회관에서 하차했다. 마을회관이 빙계계곡의 초입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곳에서 빙계얼음골 야영장 방면으로 올라가면 빙계서원을 만날 수 있다.


마을회관에서 빙계서원까지는 약 1km 정도 되는데 주위의 산들을 감상하면서 천천히 걸음을 해도 좋다. 중간에 빙계얼음골 야영장에 매점도 있으니 생수나 행동식을 구매할 수 있다.


빙계교를 넘어가면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 큰 누각이 보인다. 빙계서원의 출입문인 빙월루(氷月樓)다. 앞쪽으로는 쌍계천이라고 불리는 계곡물이 휘돌아나가는데 한자처럼 보름달이 휘영청하게 뜬 날에 빙월루에 올라가 보고 싶을 정도였다. 쌍계천 물길 속에서 일렁이고 있을 보름달의 모습! 상상만해도 달달해진다~^^







* 빙계서원 빙월루








빙계서원은 1556년(명종11)에 만들어졌다. 우리나라의 최초의 서원인 경북 영주 소수서원이 1543년에 세워졌고, 안동에 있는 도산서원이 1574년에 만들어졌으니 빙계서원의 창건 시기가 꽤 오래됐음을 알 수 있다.


빙계서원에는 김안국과 이언적이 배향되었다. 김안국은 조선 중기시대에 활약한 사림으로서 스승인 김굉필에게 학문을 전수받았다. 이때 같이 동문수학했던 이가 바로 사람파의 거두 조광조였다. 이언적도 조선 중기시대때 활약한 문관이었다. '기'보다는 '이'를 중시하는 주리론을 펼친 것으로 유명하다. 이언적의 주리론은 이후 이황에게로 계승 발전되었다.


처음 서원이 세워질 때는 현 위치가 아닌 남대천의 상류인 장천에 있다하여 장천서원이라고 칭했다. 남대천은 의성군을 동서로 가로질러 흐르고 있는 하천이다. 창건된지 20년 후인, 1576년(선조9)에 그 이름따라 ‘장천(長川)’으로 사액이 되어 사액서원이 된다. 하지만 임진왜란 때 불에 타 버렸는데 이후 1600년(선조33)에 현재의 자리로 이건을 하여 다시 짓게 된다. 이때 빙계서원으로 현재의 이름으로 개명을 하게 된다.


그 뒤 흥선대원군 집권 시기인 1868년(고종5)에 서원철폐령에 의거 훼절되기에 이른다. 그렇게 우여곡절이 많았던 빙계서원은 긴 잠에서 깨어나 우리 앞에 다시 나타났다. 그때가 2006년이었다.


다리너머에서 바라보는 빙계서원의 모습은 탐방객들의 눈길을 사로잡기에 딱이다. 앞으로는 쌍계천이 흐르고 뒤로는 북두산이 듬직하게 서 있으니 자연의 조화로운 모습 속에 서원이 떡~하고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다.


빙계계곡를 탐방했을 때는 한 여름이었다. 더위에 지친 몸을 이제 천연에어컨으로 식혀줄 차례다. 일단 빙산사지오층석탑은 마지막에 탐방하는 것으로 하고 빙혈(冰穴)과 풍혈(風穴), 즉 얼음동굴과 바람동굴을 다음 탐방지로 잡았다.


빙계계곡은 앞서 언급한 북두산(598m)과 빙산(氷山) 사이에 놓인 2km 정도의 협곡을 말한다. 해발 310미터인 빙산은 그 지형이 어찌나 오묘하던지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곳이었다. 왜? 한 여름에는 얼음이 얼고, 한 겨울에는 훈풍이 불기 때문이다. 필자는 한 여름에 빙혈을 탐방했는데 몸에 한기가 들 정도로 냉기와 마주해야 했다.







* 빙혈: 건물 안쪽에 가면 빙혈이 있다.








빙혈 입구에는 탐방의 편의와 안전을 위해 방처럼 시설물을 설치하였다. 온도계를 보니 영하는 아니었고 영상 3~4도 정도였다. 빙혈 밖은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었는데 빙혈 안은 냉기가 살 속을 파고들고 있었다. 사진을 찍고 있던 손이 시려울 정도였다. 한 여름 8월 달에 장갑이 생각나다니!^^


얼음동굴인 빙혈이 실내 시설물로 입장하는 형태라면 바람동굴인 풍혈은 그냥 야외에서 체험하는 방식이다. 옆쪽 바위틈에서 찬바람이 불고 있던 것이다. 마치 누군가가 땀 좀 식히고 가라며 부채질을 하는 듯싶었다. 그런 곳이 한 곳이 아닌 꽤 여러 곳이었다. 찬바람이 불어오는 바위틈에 얼굴을 들이밀어 자연이 주는 천혜의 청량감을 맛보았다. 세상에 이런 재미도 있다!


이런 현상은 빙계계곡 이외에도 몇몇 곳곳에서 만나볼 수 있다. 가장 유명한 곳은 경남 밀양의 얼음골이다. 그럼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할까? 아직까지는 그 원인을 정확하게 모른다고 한다. 그 원인이 미스터리해서 그런지 빙혈과 풍혈 탐방이 더 흥미진진하다.







* 풍혈







이제 다시 빙산사지 오층석탑이 있는 옛 빙산사터로 향한다. 명칭대로 이곳은 옛날 빙산사라는 사찰이 있던 곳인데 빙산사는 조선 태종시대에 폐쇄가 됐다.


계단을 따라 언덕을 올라가면 여느 폐사지처럼 넓은 공간이 나온다. 그리고 그 한쪽에는 오층석탑이 서 있는데 단층 기단임에도 불구하고 우뚝 솟아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높이가 8.15미터인 빙산사지 오층석탑은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금성면 탑리리에 있는 탑리오층석탑과 그 외형이 닮아있다. 빙산사지 오층석탑과 탑리오층석탑은 둘 다 모전석탑이기 때문이다.


모전석탑은 전탑(塼塔)처럼 쌓아올린 모전석탑(模塼石塔) 형식의 탑을 말한다. 이게 무슨 소리인지? 그래서 첨언을 좀 해본다. 예전에 썼던 글을 재활용해본다.


전탑(塼塔)은 벽돌로 쌓은 탑을 말한다. 흙을 구워 벽돌을 잘 만들었던 중국에서 유행했던 방식이다. 그럼 모전석탑은 무엇인가? 모전석탑(模塼石塔)은 전탑을 모방해서 만든 탑을 뜻이다. 즉 벽돌이 아닌 자연석을 써서 만들었지만 벽돌탑 모양 비스무리하게 외형을 뽑은 탑을 말하는 것이다. 이 모전석탑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특이한 탑 양식으로 후기 신라시대부터 고려 전기까지 만들어졌다.








* 빙산사지 오층석탑








* 빙산사지 오층석탑: 1층 탑신부에 네모 구멍을 뚫어 감실을 만들었다.








한편 탑리오층석탑과 마찬가지로 빙산사지오층석탑은 1층 탑신부에 네모난 공간이 있다. 동네 길고양이들 쉬라고 만든 공간이 아니다. 이 네모난 곳은 감실이라고 부르는데 혼이 머무르는 공간이다. 탑에 이런 감실을 만든 경우가 흔치 않은터라 두 석탑 모두 매우 독특하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이번 트레킹의 주목적은 빙산사지오층석탑을 직접 친견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빙계계곡과 잘 어우러진 빙계서원도 보고, 빙혈과 풍혈도 체험했으니 1석 3조가 된 것이다. 이거 얼마나 좋은 일인가!


경북 의성하면 마늘만 떠올렸는데 이렇게 귀한 문화유산들이 산재해있다니! 그런 의미로 빙계계곡에서 텐트치고 야영을 했다. 펜션에 갈 돈은 없고, 텐트는 있었으니... 오랜만에 계곡에서 행한 야영이었다.







* 빙계계곡






          

*빙계서원












*** 도움말

세부코스: 빙계얼음골야영장 -> 빙계서원 -> 빙산사지오층석탑 -> 빙혈과풍혈            

길이: 약 4km(왕복)            

소요시간: 약 1시간 30분 정도            

난이도: 하            

교통편: 의성군 금성면 탑리리에서 빙계계곡의 관문인 현리2리행 시내버스를 탑승함. 서울 청량리역이나 경북 안동역에서 금성면 탑리역까지 무궁화호 열차로 이동할 수 있음. 하지만 시내버스도 기차도 배차량이 적음.            

참고: 더 걷기를 원하시는 분은 쌍계천과 농로길을 따라 인근에 있는 가음면 면소재지까지 걸어가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현리2리 마을회관에서 가음면 면사무소까지는 약 4킬로 정도 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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