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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작가 역사트레킹 Oct 10. 2022

그 고개를 넘으면 좋은 일이 생길거야!

<문경새재> 문경새재 역사트레킹








* 제1관 주흘관: 큰 날개를 펼친 듯 성벽이 이어져 위용을 자랑한다.







‘성 씨가 다른 세 명의 장군이 지켰다’는 성삼(性三)재, ‘경사가 가팔라서 오르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미시령(彌時嶺), ‘남쪽에 높은 고개’라는 남태령(南泰嶺), ‘밤에는 소들을 끌고 넘을 수 없다’는 우금(牛禁)티 등등... 우리땅은 산이 많은 만큼 그 산을 넘을 수 있게 해주는 고개도 많다. 그것을 부르는 이름도 다양했다. ‘재’, ‘령’, ‘치(티)’등으로 불리기도 했고, ‘여우고개’처럼 그냥 ‘고개’로 불리기도 했다.


고개를 넘는 이들의 사연도 제각각이었다. 선비들은 청운의 꿈을 안고 고개를 넘었고, 보부상들은 장시를 찾아 발걸음을 재촉했다. 종교인들은 포교를 위해 넘었을 것이다. 이렇듯 고개는 많은 이들의 발자국을 담아낸 공간이었다.


그런 만큼 풍부한 스토리텔링이 흘러나오는 곳이기도 하다. 하룻밤의 사랑 이야기부터 귀신에 홀린 이야기까지... 여기 우리나라에서 가장 스토리텔링이 풍부한 고개를 하나 소개한다. 그곳이 어디냐? 바로 문경새재이다.








* 제2관 조곡관: 가을날의 조곡관









■ 청운의 꿈을 안고 새재를 넘었던 선비들


새재는 ‘새들도 넘기 힘들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한자로 풀면 조령(鳥嶺)이 된다. 제3관문, 즉 조령관이 위치한 곳의 해발 고도가 642m인 만큼 그 말이 영 틀린 말은 아닌 듯싶다. 서울 남부를 지키고 서 있는 관악산의 정상이 629m이니, 조령의 그 위치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새재를 두고 문경의 반대쪽에 위치한 충북 괴산군 연풍면에서는 연풍새재라고 칭한다.


연풍은 현재 면 단위이지만 조선시대에는 연풍현으로 불리며 현감이 재직하였다. 그런 연풍 현감 중에서 우리에게 익숙한 인물이 한 명 있다. 바로 화가인 단원 김홍도다. 김홍도는 1791년부터 만 3년 동안 연풍 현감으로 있었다.


문경새재는 영남대로(嶺南大路) 상에 놓여 있다. 조선은 도읍을 한양으로 옮기며, 전국을 ‘X'자 형태로 연결하는 도로망을 구축한다. 그렇게 하여 6개의 대로(大路)가 탄생하게 되는데 영남대로도 그중 하나다. 수많은 고갯길을 제쳐두고 문경새재가 우리나라의 으뜸 고갯길로 꼽히는 이유도 문경새재가 영남대로 상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문경(聞慶)이라는 지명도 문경새재의 격을 높여주는데 큰 일조를 했다. 과거를 보러 나서는 경북 영주나 강원도 삼척의 선비들은 가까운 죽령을 넘지 않았다. 경북 김천이나 성주 등지의 선비들도 추풍령을 넘지 않았다. 죽령은 ‘주욱 미끄러진다’라고 해서, 추풍령은 ‘추풍낙엽처럼 떨어진다’ 해서 기피 대상이었던 것이다.


대신 ‘경사스런 소리를 듣는다’라는 뜻을 가진 ‘문경’이기에 과거길에 나서는 선비들은 문경새재를 필수코스처럼 밟고 지나갔다. 심지어 전라도 지역의 선비들까지 문경새재를 넘으며 합격을 기원했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예나 지금이나 큰 시험을 앞둔 수험생들의 마음은 비슷한 거 같다. 조그만 징크스도 절대 용납할 수 없다!


이렇듯 문경새재는 수많은 이들의 발걸음을 불러 모았고, 그로 인해 조선의 으뜸 고갯길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하지만 그 길에 선 발자국들이 모두 다 좋은 걸음이었을까? 아니었다.







* 백두대간 조령: 새재의 가장 높은 지점에 있다.








■ 조령과 조일전쟁(임진왜란)


1592년 4월 14일.

부산포에 왜군들이 상륙한다. 조일전쟁(임진왜란)이 발발한 것이다. 조총으로 무장한 일본군 20만 명은 파죽지세로 북상한다. 그러다 조령을 앞에 두고 잠시 숨고르기를 한다. 당시 조령 앞에서 주춤했던 일본군은 고니시유키나와가 지휘하는 제1부대와 가토 기요마사가 이끄는 제2부대였다.


이들이 숨 고르기를 한 건 조령의 지세가 험준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당시 일본군들의 전투력이 뛰어났다고 하지만 낯선 곳에서 험한 지형지물을 만나면 위축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고니시유키나와는 수차례에 걸쳐 조령을 정찰했다고 한다. 자칫하다가는 자신의 부대가 큰 타격을 입을 거라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쾌재를 불렀다. 그 험한 조령을 지키는 조선군 부대가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조선군을 이끌었던 장수는 신립이었는데 그는 조령이 아닌 충주 탄금대에서 배수의 진을 치고 있었다. 조령이 험준한 골짜기라면 탄금대는 기병전이 가능했던 개활지였다.


이후의 이야기들은 잘 아실 것이다. 신립이 이끄는 조선군은 크게 패배하고 만다. 조총으로 무장한데다 백병전까지 능한 일본군을 상대로 개활지에서 싸운다는 건 승산이 없는 게임이었다. 그럼 왜 신립 장군은 조령이 아닌 탄금대를 선택했을까? 신립하면 당대 최고의 무장이었는데...






* 제3관문 조령관: 새들도 쉬어가는 곳인 만큼 해발고도가 높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첫 번째 이유는 기병술을 전개하기 위해서였다. 일본군들이 보병 위주였기에 기병의 말발굽으로 찍어 누를 생각이었다. 보병은 기병의 공격에 취약한데다 신립 자신이 기병술에 능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유는 탈영병 문제와 연락체계 문제였다. 산 중에서 진을 치다보면 시야가 가려질 테고, 그 틈을 타 병사들이 탈영을 할 것이라고 우려했기 때문이다. 또한 훈련이 제대로 안 된, 오합지졸인 당시의 조선군이기에 산악보다는 개활지에서 진을 쳐야 그나마 연락체계가 제대로 작동될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


4월 26일, 고니시유키나와는 별다른 저항 없이 조령을 넘었고, 탄금대에서 조선 육군을 격파한다. 탄금대 패배 소식을 전해들은 선조는 도성을 버리고 도망을 갔고, 5월 2일 일본군은 한양을 점령한다.


만약 신립이 탄금대가 아닌 조령에서 일본군들의 북상을 막았다면 어땠을까? 험준한 산악지형을 방패삼아 게릴라 전술을 취했다면 어떤 결과가 도출됐을까? 한편 다음과 같은 시각도 존재할 수 있다. 당시 동원된 병사들이 오합지졸인 농민군이라는데 의병에 참여한 이들도 제대로 훈련이 안 된 농민들이 주축이었다. 같은 오합지졸인데도 후자쪽은 승전보를 울렸다. 한마디로 오합지졸을 ‘승리의 용사’로 만드는 것도 장수의 책무라는 것이다.


역사에 가정법이 없다지만 문경새재 트레킹을 행하다 보면 그런 가정들이 끊임없이 떠오른다. 이 고지에 궁수들을 배치하고, 저쪽에서는 매복을 하고... 자신 스스로가 조령 방어 사령관이라고 생각하고, 가상으로 병력을 배치해보는 것도 문경새재 트레킹의 또다른 매력이 아닐까.







* 제2관 조곡관: 3개의 관문들 중에서 조곡관이 가장 아름답다. 가을에는 더 아름답다.








■ 주흘관, 조곡관, 조령관


그렇게 전략적으로 중요한 문경새재에 방어시설이 들어 선 건 1594년의 일이다. 충주 사람 신충원의 건의로 지금의 제2관문인, 조곡관(鳥谷關)이 들어선 것이다. 그 이후 숙종대에 제3관문인 조령관(鳥嶺關), 제1관문인 주흘관(主屹關)이 들어서게 된다.


그 세 개의 관문은 각기 다른 멋이 있다. 제1관문인 주흘관은 넓고 평평한 터에 세워져 있어 웅장한 성곽의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3개의 관문 중 옛 모습을 가장 잘 간직한 성문이다. 산 중 깊은 곳에 위치한 제2관문인 조곡관은 조곡교라는 다리를 건너야 도달할 수 있다. 그 앞으로 계곡이 흐르고 있다.


조곡관의 계곡물은 적군의 침입을 방해하는 역할도 하지만 관광객들의 눈을 시원하게 해주는 역할도 한다. 그만큼 조곡관은 ‘비밀의 정원’인 것처럼 아름다운 관문이라는 뜻이다. 마지막으로 제3관문인 조령관은 조령 정상에 우뚝 솟아 있다. 조령관은 오랑캐를 막기 위해 세워져서 그런지 주흘관과 달리 북쪽을 향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렇게 외적 방비를 위해서 세워진 관문들이지만 딱히 그 기능대로 쓰인 적은 없었다. 대신 그 관문들 덕택에 다른 고개들보다 문경새재는 더 안전해졌다. 시험 징크스 때문에 고집한 것도 있지만 다른 고개들보다 새재가 더 안전했기에 선비들의 발걸음이 문경으로 향하기도 했던 것이다.






* 수문: 1관문 옆 쪽에 자리잡고 있다. 수문도 참 멋지게 만들었다.








■ 경사스러운 소식이 많아지기를 기원하며



요즘 뉴스를 보면 너무나 안 좋은 소식들만 들려온다. 귀를 막고 싶어진다. 하지만 귀를 막는다고 막아지나?

기왕 들을 소식이라면 ‘경사스러운 소식’을 많이 들었으면 좋겠다. 문경(聞慶)이라는 말처럼, ‘경사스러운 소식’이 많이 들려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좋은 소식을 기대하며, 문경새재를 한들한들 거닐어 보는 것은 어떨까? 문경새재는 초보자들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을 수 정도로 탐방로가 잘 정비되어 있다. 그러니 누구라도 한들한들거리며 거닐어 볼 수 있다. 마치 바람을 타고 나는 나비처럼...




*** 도움말

1. 세부코스: 연풍레포츠공원 -> 조령관(3관문) -> 2관문(조곡관) -> 1관문(주흘관) -> 문경옛길박물관

2. 길이: 약 10km            

3. 소요시간: 약 3시간 30분 정도            

4. 난이도: 하     

5. 교통편: 동서울터미널에서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행 시외버스탑승. 수안보에서 연풍레포츠공원 방면으로 가는 시골버스 탑승함. 이때 기사님에게 문경새재를 간다고 이야기를 함. 수안보에서 연풍레포츠공원까지는 약 6km 정도 떨어져 있음. 그래서 택시를 타고 가도 부담스러운 거리는 아님.            

6. 참고: 종료점을 문경으로 한 것은 식사나 숙박 등의 편의시설이 연풍보다 낫기 때문이다. 시내버스 등 연계교통편도 문경이 더 많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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