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리산 문장대 산행기
* 속리산
2022년 8월 20일 토요일.
아침 일찍부터 센트럴시티 고속버스터미널로 향했다. 목적지는 충북 보은군 속리산면에 있는 속리산.
전날 남산 노을트레킹을 늦은 시간까지 리딩한 터라 몸 상태가 별로였다. 하지만 속리산(俗離山)이 부르고 있었다. 속리산 문장대가 손짓을 하고 있었다. 현실에 찌들어 있는 이에게 '세속을 멀리하라(俗離)'는 산의 울림은 그 어떤 손짓보다도 더 크게 느껴졌다.
이렇게 속리산의 울림에 이끌렸다고 말을 하지만 사실은 이번 산행도 지난 지리산 천왕봉 때와 마찬가지로 속죄를 위한 등산이었다. 무슨 놈의 죄를 그렇게도 많이 졌는가? 지리산부터 속리산까지... 혹시 다른 산들에게도 죄를 짓지 않았나? 그나마 다행이도 지리산과 속리산 뿐인 거 같다.
속리산은 십 몇년 전에 올랐었는데 그때도 상당히 못난 짓을 했었다. 지리산 때처럼 쓰레기 막 버리고, 담배 뻑뻑 피우고... 더군다나 속리산에서는 문장대에서 텐트를 치고 야영을 했었다. 국립공원에서 야영을 하다니!
그런 못난 짓을 용서 받으려고 배낭을 꾸려 길을 나선 것이다. 십 년 이상 묵은 죄를 이참에 업장 녹이듯이 녹여야 할 거 같았다. 지리산에서 용서를 받은 듯하니 속리산에서도 용서를 받고 싶었던 것이다.
* 속리산 법주사계곡
날씨가 너무 좋았다. 속리산 터미널에 내리니 푸른하늘 아래 병풍이 펼쳐지듯 속리산 일대가 멋지게 다가왔다. 날씨가 맑고, 산과 계곡도 맑으니 그 자체가 세상의 근심을 사라지게 만들었다. 거기에 천년고찰 법주사의 기운이 더해지니 속리산이 주는 울림은 더욱더 커지는 듯했다. 일단 첫 걸음을 가볍게 떼었다.
오리숲과 법주사를 탐방한 후 저수지를 향했다. 이동 코스는 이렇다.
오리숲 -> 법주사 -> 상수도저수지 -> 목욕소 -> 세심정 -> 복천암 -> 보현재 -> 냉천골 -> 문장대
속리산 버스터미널에서 문장대까지가 약 8km 정도이니 왕복으로 하면 약 16km 정도가 된다. 하지만 복천암까지는 길이 순해서 누구나 다 무리없이 이동할 수 있다. 실질적으로 난이도가 있는 산길은 약 3km 정도이다. 그래서 빨리 가면 5시간, 느릿하게 가면 6시간 정도 걸린다. 필자는 7시간 이상이 걸렸다. 법주사도 탐방하고, 놀기도 놀고, 쓰레기도 줍줍하다보니...
그런데 속리산의 최고봉은 문장대가 아니다. 천왕봉이 최고봉이다. 천왕봉이 해발 1,058미터이고, 문장대는 1,031미터이다. 그런데 등산객들이 법주사에서 산행을 많이 시작하고, 문장대가 가장 가깝게 갈 수 있는 정상부이기에 문장대가 많은 이들에게 언급되는 것이다. 그러고보니 지리산도 속리산도 둘 다 천왕봉이 최고봉이다.
* 목욕소
물이 맑은 속리산에도 세조와 관련된 스토리텔링이 있는데 그곳이 바로 목욕소이다. 피부병으로 고생을 하던 세조가 이곳 목욕소에서 약사여래의 명을 받은 월광태자의 도움으로 병이 나았다고 한다. 여기서 좀 생각해 볼 문제가 있다. 세조는 오대산 상원사 계곡에서도 문수보살을 만나 피부병이 나았다는 전설이 있다. 그런데 이곳 목욕소에서도 월광태자를 만났다고 한다.
조카인 단종을 쫓아내고 쿠데타로 집권한 세조는 유달리 불교와 관련된 설화들과 많이 연결이 된다. 덕업이 많았던 세종께서 설화와 연결이 되시던가? 정조께서는 어떤가? 세조는 불교의 신앙적 대상들을 끌어들여 자신의 도덕적인 흠결을 메꾸려고 했던 거 같다. 참고로 약사여래는 병을 치유하는 부처님이고, 문수보살은 지혜를 상징하는 보살이다. 월광태자는 대가야의 마자막 왕으로 나라가 망한 뒤 월광사를 지어 그곳에서 말년을 보냈다고 한다.
법주사 -> 상수도저수지 -> 목욕소 -> 세심정
위에 코스는 법주사 매표소에서 시작하는 '세조길'이다. 세조의 공과를 떠나서 세조길은 걸어볼만 하다. 세조길 코스만 따지면 왕복 약 5킬로 정도인데 매표소 이전의 오리숲과 법주사 경내까지 구석구석 돌아보는 것까지 합치면 약 3시간 정도 소요가 될 것이다.
* 법주사: 팔상전. 법주사에서 가장 눈에 띄는 문화재는 팔상전이다. 팔상전은 유일하게 남아있는 목탑이다.
2021년 보현재와 냉천골에 있던 휴게소는 폐쇄가 됐고 그 자리는 자연복원을 진행중이었다. 예전에 왔을 때, 국립공원 내에 왜 휴게소가 있는지 의아했었다. 어쨌든 늦게나마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지리산 산행 때처럼 비닐봉지를 덜렁덜렁 매달고 쓰레기를 줍줍했다. 사진도 많이 찍었다. 그러니 시간이 그렇게 오래걸리지!
드디어 문장대에 올랐다. 역시 천하절경이구나! 암반면을 드러낸 봉우리들의 모습이 절경 그 자체였다.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스며들듯 산 안개가 주위를 감싸고 있었다. 산 아래쪽은 날씨가 쨍쨍하게 맑았지만 문장대 일대는 안개로 흐릿한 모습을 띄었다. 묘한 기운이 감돌았다. 그러다보니 신선이 된 느낌이?!
이렇게 속리산 문장대 산행은 잘 마무리됐다. 하산 시간이 늦어 어두운 밤길을 걸어내려 온 거 이외에는 별 문제가 없었다. 쓰레기도 잘 주었고, 잘 처리했다.
어쨌든 툭툭털듯 엉겨있던 무언가를 잘 털어낸 산행이었다. 마지막에는 신선이 된 느낌같이 받았으니까. 속리산 산신령께서 용서를 해주신 게 아닐까? 이제는 다시는 산에서 못난 짓은 하지 말아야겠다.
* 속리산 문장대 일대
* 속리산 문장대: 더위에 지쳐서 그랬는지 몰골이 말이 아니다. 하지만 악연이 끊어진 느낌이 들어 나름 흐믓했다.
*** 도움말
* 세부코스: 오리숲 -> 법주사 -> 상수도저수지 -> 목욕소 -> 세심정 -> 복천암 -> 보현재 -> 냉천골
-> 문장대
* 길이: 왕복 약 16km
*난이도: 중 -> 산길은 실질적으로 왕복 6킬로이니 산꾼에게는 '하' 일수도 있음.
* 교통편: 동서울터미널에서 속리산터미널행 시외버스 하루 6회 운행(약 3시간 30분 소요) / 센트럴시티터미널에서 속리산터미널행 고속버스 하루 3회 운행(약 3시간 30분 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