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겨울의 유럽여행 23편>
*브란덴부르크 문(Brandenburger Tor): 베를린의 상징인 브란덴부르크 문.
☞ 2025년 11월 28일부터 2026년 1월 22일까지, 약 56일간 유럽을 탐방하고 왔습니다. 스페인, 포르투갈, 프랑스, 벨기에, 네덜란드, 독일, 체코... 총 7개국을 다녀왔네요.
애초에는 포르투갈 순례길을 약 30일 정도 걸을 생각이었습니다. 나머지는 배낭여행을 할 셈이었지요. 하지만 여행이 계획대로 되던가요?ㅋ 순례길은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습니다. 그냥 배낭여행으로 쭈욱~ 가기로 한 것이죠. 시시각각 변하는 현장 상황을 대처하는게 여행의 재미 아니겠습니까? 물론 멘붕이 닥치지만요.
본 여행 포스팅은 여행일지를 기반으로 작성을 했습니다. 하루 일정이 종료가 되면 저는 거의 매일같이 여행일지를 작성했습니다. 술을 못 마셔서 그런지 밤 시간이 길더라고요. 맥주 대신 커피를 홀짝이며 작성한 여행일지에 살을 붙여서 포스팅을 할 것입니다.
개인의 여행일지를 객관화 하는 작업은 분명히 의미가 있는 일입니다. 이렇게 쌓이고 쌓인 것이 개인의 역사가 되고, 더 나아가 모두의 지식으로 발전할 수 있으니까요!
*베를린 돔(Berliner Dom): 개신교 교회로 사용되고 있는 베를린 돔. 1451년에 처음으로 만들어졌는데 당시에는 가톨릭 성당으로 쓰였다. 그래서 외관이 대성당처럼 보인다. 옛 동베를린 지역에 위치해 있다. 베를린의 랜드 마크임.
* 베를린 구 박물관: 신전 건물처럼 생긴 구 박물관. 앞쪽에 루스트가르텐 돌그릇이 있다. 오른쪽 사진은 신 박물관 외벽이다. 흉상과 벽에 총탄 자국이 있다. 이곳은 베를린이다. 2차 대전 당시 베를린 전투가 벌어졌던 베를린!
*50일차: 2026년 1월 16일 금요일 / 맑음
1. 전날 베를린 구도심에 있는 숙소를 가면서 브란덴부르크 문을 둘러봤다. 야경으로 봤는데 브란덴부르크 문을 보니 내가 진짜 베를린에 왔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2. 체크 아웃을 했다. 그런데 전날 밤 객실에서 우크라이나 출신 성인 남성 둘을 봤다. 내가 묵었던 도미토리는 8인용이었는데 나와 어떤 몰도바 출신 남성만 있었다. 그런데 다른 남자 둘이 놀어왔다. 그들이 바로 우크라이나 출신이었다. 그 나라는 지금 전쟁중인데... 하여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빨리 끝나야 한다. 더이상 의미가 없는 소모전이지 않은가! 내가 있던 객실이 텅텅 비어서 그런지 그 우크라이나 남성 둘은 잠도 자고 갔다. 자기방이 있는데도 그렇게 한것이다. 이건 뭐지?
3. 베를린 신 박물관, 구 박물관을 거쳐 베를린 돔으로 이동했다. 베를린 돔도 어마어마했다. 베를린 돔 한 편에 베를린 구 박물관이 있고, 그 앞에 루스트가르텐 화강암 그릇이 있다. 지름이 약 7미터 정도 되고, 무게는 70톤에 달할 정도로 엄청난 돌그릇이다. 처음에는 분수대인줄 알았다.
4. 루스트가르텐 화강암 돌그릇을 보니 총탄 자국이 있었다. 그 뒤에 있는 구 박물관 일대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아니나다를까 총탄 자국이 보였다. 베를린 돔도 더 자세히 보았다. 땜질을 해서 많이 가리기는 했지만 역시 총탄 자국이 있었다. 그 옆을 흐르는 슈프레강에 있는 프리드리히스브뤼케 다리에도 총탄 자국이 있었다.
* 학살된 유럽 유대인을 위한 기념물: 왼쪽 사진은 2차 대전 당시 학살된 유대인을 위한 추모 공간이다. 2710개의 네모꼴 돌이 놓여져 있는데 돌들은 죽음을 당한 유대인의 주검을 뜻한다. 브란덴부르크 문에서 가깝다. 오른쪽 사진은 유명한 베를린 장벽이다. 베를린 일대를 탐방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격동의 20세기를 반추할 수 있었다.
5. 그렇다. 이곳은 베를린이다. 베를린은 2차 대전 유럽 전선의 마지막 전투가 벌이진 곳이다. 다른 관광객들은 아무도 관심이 없는 듯했지만... 난 매의 눈으로 총탄 자국을 찾아다녔다. 왜 나한테 이런 능력이 생긴 거지? 돌의 눈이 열렸으니 '석안'이라고 해야 하나?
6. 낮 시간의 브란덴부르크 문을 보고 싶어 서둘러 움직였다. 브란덴부르크 문 -> 유대인 추모공간
-> 베를린 장벽 순으로 이동했다. 2차 세계대전과 냉전 시대를 관통하는 공간으로 계속 이동한 것이다. 물론 그 일대는 새로운 건물들이 역사적인 건물들과 뒤섞여 있었지만 말이다.
7. 이후 베를린 중앙 버스터미널에서 드레스덴으로 향하는 오후 5시 버스를 탔다. 운행 시간은 약 2시간 40분 정도. meininger hotel dresden zent run에 체크인을 했다.
* 군주의 행렬(Fürstenzug): 길이가 무려 102미터 달하는 도자기로 만든 벽화. 드레스덴이 속한 작센주의 통치가문인 베티 가문을 위해 만들어졌다. 처음에는 벽화였는데 방수 처리를 위해 마이센 도자기로 교체한다. 1945년 드레스덴 대폭격 때 다른 건물들은 막대한 피해를 입었지만 군주의 행렬은 큰 손실을 입지 않았다.
* 프라우엔키르헤(Frauenkirche Dresden): 성모성당. 원래 11세기에 만들어진 드레스덴 성모 성당이 있었지만 철거가 되고, 1743년에 새롭게 높이 67미터의 큰 성당이 들어서게 된다. 바로크 양식으로 만들어진 성모 성당은 안타깝게도 드레스덴 폭격때 큰 피해를 입게 된다. 지금 보는 건물은 2005년에 복원된 건물이다. 앞에는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의 동상이 있다. 현재는 개신교 교회로 쓰인다.
*51일차: 2026년 1월 17일 토요일 / 맑음
1. 드레스덴(dresden)도 예전부터 와보고 싶었던 곳이었다. 아주 오래전에 <폭격의 역사>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었다. 그 책에서 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에 의해 실시된 드레스덴 폭격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당시 나치 독일은 드레스덴 폭격을 악마적이라고 비난하며, 자신들을 '피해자'로 규정한다. 피해자 코스프레?
2. 어쨌든 폭격에 의해 드레스덴은 큰 타격을 입게 된다. 많은 문화재들도 큰 손상을 입는다. 그래서 드레스덴의 건물들은 쾰른 대성당처럼 외벽이 시커멓게 그을렸다. 검은색으로 자연스럽게 변색된 것이 아닌 눈에 거슬리는 검정 그을림이었다.
3. 누구는 건물의 재료인 돌들이 풍화가 되서 검게 그을렸다고 했다. 하지만 자연스럽게 풍화가 됐다면 그런 색깔이 나오지 않는다. 또한 드레스덴역에 있는 돌들은 전혀 검은 그을림들이 없었다. 드레스덴역이 폭격을 피해갔는지는 좀 더 알아봐야겠지만...
4. 드레스덴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엘베강으로 갔다. 왜 이곳이 많은 이들이 사랑을 하는 곳인지 알 수 있었다. 날씨가 쌀쌀했지만 열심히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5.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데카트론에 들러 38리터 짜리 배낭을 하나 샀다. 가격은 약 70유로. 오는 길에 동아시아 마트가 있어 햇반과 컵라면을 샀다. 햇반과 컵라면이 이렇게나 궁합이 잘 맞았나?
* 드레스덴 구도심: 왼쪽은 드레스덴 대성당임. 오른쪽은 드레스덴 성이다. 폭격의 여파로 건물 외벽이 탁하다.
* 드레스덴 성: 왼쪽 사진은 드레스덴 성이다. 오른쪽 사진은 드레스덴 고등법원 건물이다. 고등법원 건물은 전체적으로 검은 그을림이 너무 심했다. 종탑 부분은 화재가 집중됐는지 색깔 자체가 너무 탁하다.
* 엘베강: 드레스덴을 흐르고 있는 엘베강. 탁한 건물보다는 푸른 강물이 더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