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를 타고 남산 1호 터널을 지나가던 밤이었다. 유난히 캄캄한 길이었다. 기사님의 목소리가 차 안의 적막을 깨트렸다. 에너지 절약 시책으로 터널의 불들이 많이 꺼져있는 거라고.
어둠을 헤치고 앞서가는 차들 때문에 터널의 끝은 보이지 않았다. 여러 차례 지나다닌 길이었다. 곧 이곳을 벗어나리란 것을 알았기에 불이 꺼진 터널이 오히려 낭만으로 다가왔다.
그보다 아주 긴 터널을 지나는 시간.
때로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저 간신히 살아내는 것 같은 날들이 있다.
바람에 휘청이며 버틸 힘조차 없어서 그저 납작이 엎드린 내 등 위로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견디는 수많은 밤과 낮들.
그런 순간들은,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시간은 흐른다'라는 사실이 가장 큰 위로다. 사람마다 일생동안 견뎌야 할 고통의 총량이 정해져 있는 거라면, 일찌감치 그 분량을 다 채우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그런 생각으로 고훈정의 노래 <그 위로>라는 가사를 써 내려갔다. ‘그 위로’라는 제목으로 가사를 의뢰한 고훈정 씨는 ‘그 위로’가 중의적인 의미가 되길 바랐다. 김진환 작곡가의 데모 곡을 들으며 ‘그 위로’를 통해 ‘그 위로’ 다가갈 수 있길 기도하는 마음으로 한 자, 한 자 적어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