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환 - Waiting For Spring>
<김진환 - Waiting For Spring (Duet. 고훈정 & 양은진)>
<Waiting for Spring>, 음원으로 발표된 나의 첫 노래.
2016년 4월 6일 정오, 음원 사이트 새로고침을 하며 노래 제목을 검색했다. 검색 결과에 뜨는 여러 음원들 중 익숙한 보랏빛 이미지를 클릭했다. 나도 모르게 숨을 참고 있었다. 초등학교 동창이 만들어 준 앨범 재킷이었다. 노래를 재생하고 크레디트의 적힌 이름들을 보며 여러 감회가 떠올랐다. 대학원 과제에서 시작된 뮤지컬 대본 <이 봄이 가기 전에>는 한참 힘든 시기에 써 내려간 일기장에서 나온 이야기였다. 김진환 작곡가와 처음 만난 자리에서, 이 노래는 이런 분위기를 생각하며 썼어요,라고 흥얼거린 4개의 멜로디 ‘Waiting for Spring’. 그는 필통에서 오선지를 그리는 자를 꺼내 노트에 쓱쓱 다섯 줄을 긋더니 음표들을 그렸다. 그가 며칠이 지나지 않아 데모곡을 보냈다. 꿈을 꾸는 것 같기도, 마법을 보는 것 같기도 했다. 내가 쓴 가사가 노래가 되다니! 삶에 무감해질 때마다 리와인드하여 몇 번이나 돌려보고 싶은 장면이다.
발매 당일, ‘최신 음악’ 탭에 올라가지 않은 노래는 대중들이 접할 기회가 극히 적다. <Waiting for Spring>은 뮤지컬 배우 고훈정 씨가 발매 소식을 온라인에 올려준 덕분에 업로드 직후부터 팬들의 후기를 볼 수 있었다. 그분들의 한마디 한마디가 무척이나 소중해 한 자 한 자 펜으로 꾹꾹 눌러쓰듯 마음에 새겼다. 그렇게 꿈결 같은 오후를 보내고 맞은 저녁, 작곡가에게서 어떤 사정으로 노래를 아예 내려야 할지도 모른다는 전화를 받았다. 늘 차분했던 그의 목소리가 떨리는 건 처음이었기에 7년이 지난 지금도 그 통화가 기억난다. 나 역시 당황했지만 한나절이라도 사람들과 노래를 나눴으니 감사하고 행복했다고 마음을 정리하는데 다시 전화가 왔다. 다른 녹음 버전으로 다시 음원을 올리기로 했다고. 나도 제작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첫 음원에다 그런 사연들까지 더해졌기에, 이 노래는 특별하다는 말로는 부족한 작품이다. 한동안은 시간이 날 때마다 노래 제목을 검색했다. 가사를 캘리그래피로 써서 올려주는 분도 있었고, 봄날의 풍경을 찍어 노래를 입힌 영상 클립을 올려주신 분도 있었다. 아직 오지 않은 봄을 기다리는 가사에 공감하는 글들을 보며 눈물짓기도 했다.
내가 공모전에서 썼던 뮤지컬, <이 봄이 가기 전에>는 홍보회사 직원인 김재환이 게임 회사 대표인 소수연을 클라이언트로 만나며 벌어지는 일들을 담은 로맨틱 코미디였다. -김진환 작곡가를 만났을 때 그의 이름이 남자주인공과 이름이 비슷하여 공모전 기획안을 작성하다 이름이 가끔 헷갈렸던 기억이 난다- 일련의 일들로 서로 가까워진 수연은 재환에게 그의 이메일 아이디 ‘kjhwfs’의 뜻을 묻는다. 앞의 세 음절은 당신의 이니셜이라는 걸 알겠는데 ‘wfs’의 의미는 무엇이냐고 질문한다. 머뭇거리던 재환은 ‘Waiting for Spring’의 약자라고 답한다. 어릴 때 만들어 놓은 촌스러운 아이디라고 쑥스러워하며 노래가 시작된다. 재환의 노래가 끝나고 2절에서 수연도 봄날을 기다렸던, 여전히 기다리고 있는 자신의 마음을 고백한다. 봄날을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봄인지 모르고 살고 있는 두 청춘의 이야기이다.
20대를 지나고 30대에 들어서며 청춘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마다, 내 인생에는 봄이 언제 오는지 기다렸던 나날들이 있었다. 그런 날이 오긴 오는지, 평생 오지 않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혹시 이미 봄날이 지나간 건 아닐까, 이 순간이 내 인생 최고의 봄날인데 모르고 살고 있는 건 아닌가. 그런 고민들이 이어졌다. 한밤중 그런 고민을 하며 산책을 하다 동갑내기 친척을 건너편에서 보고 나도 모르게 숨었던 적이 있었다. 위아래 짝도 맞지 않은 운동복을 입고 가족과 다투던 중이었다. 남자친구와 함께 걸어오던 직장인인 그 친구를 보자 그런 내 모습이 비참하게 느껴졌다. 그런 밤들, 그런 날의 일기들이 Waiting for Spring의 가사가 되었다. 가사와 대본을 쓰면서, 봄날을 자각하지 못하고 지나왔다 하더라도 매년 봄이 돌아오듯 인생에서의 봄날도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깨달음이 들었다. 그리고 꽃은 꼭 봄에만 피는 것이 아니지 않느냐는 자문도 해보았다. ‘계절마다 피는 꽃이 다 다르다, 그대는 그대가 어떤 꽃인지 아직 모를 뿐이다’라는 내용도 다른 뮤지컬 넘버에 가사로 써 내려갔다.
<이 봄이 가기 전에>는 비록 무대화되지 못했지만 <Waiting for Spring> 넘버에 대한 반응이 좋다고 작곡가가 정식 음원을 내자 했다. 4월 첫 앨범이 나왔고, 그 해 봄날을 맛보는 일들이 연달아 일어났다. 온전한 봄을 만끽한 것은 아니었지만 찰나라도 그 따스함을, 만개하는 감정을 누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족했다.
여전히 나는 봄을 기다린다. 완연하게 찾아올 나의 봄날을 기대한다. 그러나 그 기다림의 시간이 지난하거나 괴롭지는 않다. 코끝을 스치는 차가운 겨울바람의 청량함과 깨끗함이 좋다, 영하의 공기를 깊게 들이마실 때 영혼이 정화되는 느낌이 상쾌하다. 생명을 무성하고 풍성하게 성장시키는 여름 햇살의 역동 또한 즐겁다. 그 당당한 기세에 나 역시 힘을 얻는다. 건조한 가을의 담백함 또한 멋이 있다. 묵직하게 결실을 맺거나 쓸쓸히 낙하하는 풍경 사이를 걸으며 나를 돌아본다.
아무리 추운 겨울에도 봄의 기운이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봄은 계속 돌아온다. 하루하루 모든 계절을 호흡하며, 봄을 기다리고 싶다.
<김진환 - Waiting For Spring (Duet. 고훈정 & 양은진)>
외로웠던 나의 사춘기 시절
청춘이라 부르는 시간이 오면
내 인생에도 봄날이 올 줄 알았죠
따뜻한 바람 불어올 거라 믿었죠
Waiting for spring
계속 기다리고 있어요
청춘은 흘러가는데
내게는 아직 오지 않은 봄날을
힘겨웠던 지난 이십 대 시절
청춘이라 부르는 시간이 오면
내 인생에도 봄날이 올 줄 알았죠
따뜻한 바람 불어올 거라 믿었죠
Waiting for spring
계속 기다리고 있어요
Waiting for spring
이젠 조금씩 지쳐가요
시간은 지나가는데
언제까지 기다려야 할까
청춘은 흘러가는데
내게는 아직 오지 않은 봄날을
내게도 봄이
봄이 오긴 할까요
이미 왔는데 모르고 지나갔다면
어떡하나요
봄이 가면 여름이 와요
겨울이 가고 봄이 올 거예요
나에게도 그대에게도
따뜻한 그날이 올 거예요
Waiting for spring
혹시라도 지금이
내 인생의
따뜻한 봄날이라면
누군가 다가와
내게 말해주길
지금 그대에게
봄이 왔어요
이 좋은 날 우리 함께 해요
이 봄이 가기 전에
가사를 검색하다 어떤 상담사 분이 올리신 포스팅을 보았다. 청소년, 성인 심리 치료에 이 노래를 적용하고 있다는 글이었다. 그런데 모든 내담자들에게 ‘봄’이 긍정적인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은 아니라는 내용이 인상적이었다. 어떤 이는 환경의 변화가 일어나는 봄마다 긴장을 하며 계절을 맞이했다고 한다. 생각해 보면 나 역시도 상징적인 ‘봄’이 아닌 실제의 ‘봄’은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학생의 신분으로 오래 지내다 보니 3월은 패딩 안에 잔뜩 껴입고도 움츠리며 신학기에 적응해야 하는 초겨울이었고, 4월 벚꽃 피는 시기는 중간고사와 과제들로 늘 울렁이는 위장을 달래며 버티는 시간이었다. 그러다 학교를 떠나고, 1~2년이 지나서야 봄날의 변덕스러움과 따스함을 온전히 즐기는 나날들이 늘어났다. ‘봄’이 ‘봄’처럼 느껴지지 않는 다른 이들에게도 봄을 누릴 수 있는 순간들이 점점 늘어나길 기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