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사가 문주원 Oct 22. 2023

[작사 노트] 끝내 사라지지 않는 것들

<포레스텔라- Hijo de la Luna(달의 아들)>

  Secret Garden의 <Storyteller> 앨범 수록곡 ‘Beautiful’을 한국어로 번안한 작업으로 포레스텔라와 첫 인연이 닿았다. 어느 날 조민규 씨에게 연락이 왔다. 2집 준비를 하고 있는데 Mecano의 Hijo de la Luna를 한국적인 느낌으로 재해석하고 싶다고 했다. 나도 들어본 적이 있는 노래였다. 소프라노 조수미 님이 부르신 한국어 버전 또한 들어본 적이 있었다. 조수미 선생님의 <달의 아들>은 2011년도 대구 세계육상대회 개막식 곡으로 기획된 노래다. 손기정 선수를 달의 아들로 비유한, 매우 긍정적이고 아름다운 가사이다. 반면 1986년에 발표된, 스페인 집시 설화를 기반으로 한 원곡의 내용은 비극적이다. 집시 여인이 달에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게 해 달라는 기도를 올렸고, 달은 첫 번째 아들이 태어나면 자신에게 달라는 조건으로 그 거래가 성립된다. 여인은 사랑하는 이를 만나 아이를 낳는다. 부모와 달리, 잿빛 눈의 하얀 달과 같은 피부로 태어난 아기를 본 남자가 여인의 부정을 의심하여 죽이고, 아이는 산에 버린다. 달에 보름달이 뜨는 것은 아이의 기분이 좋기 때문이고 아이가 울면 달이 초승달로 기울어 요람이 된다는 민담이다.


  이렇게 비극적인 이야기를 어떻게 각색할 수 있을까. 스페인 집시 여인의 슬픈 이야기를 담으면서도, 포레스텔라의 정서로 부를 수 있도록 가사를 써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다. 잘하고 싶은 욕심도 생겼다. 편곡된 가이드 음원만 들어도 무대 위에서 웅장하게 펼쳐지는 서사 한 편이 떠올랐다. 원곡의 가사를 분석하고 드라마를 어떻게 한국적으로 재구성할지 고민했다. 설화를 살리면서도, 원곡을 모르는 사람들이 들어도 다의적으로 해석이 되길 바랐다.


 첫 미팅 날 노트에 잔뜩 적어간 아이디어들을 풀어놓았다. 내가 생각해 본 ‘달’의 의미를 이야기하며 가사에 중의적이고 비유적인 표현을 쓰면 어떨지, 내레이터가 이야기의 문을 열고, 문을 닫는 구성으로 가면 어떻겠냐고 묻자 긍정적인 반응이 돌아왔다. 4인의 리액션으로 아이디어가 더 풍부해졌다. 멤버들의 의견도 더해졌다. 서로를 배려하며 말 한마디 한마디를 고심해 선택하는 멤버들을 보며 많이 배우기도 했다. 여러 차례 수정을 거치면서 힘들기도 했지만, 노랫말의 어감에 대해 깊이 고민해 볼 수 있어 작사가로서 많이 배운 시간이었다. 되도록 부드러운 어감의 단어들을 쓰려 노력하면서도 2절 벌스, 멜로디적으로 갈등이 고조되는 부분에서는 파찰음이나 마찰음을 사용했다. 한 단어, 한 단어의 어감과 발음을 놓고 끊임없이 고민했다. 그 당시 작사 노트를 보면 수많은 단어들을 적어놓고 고심했던 흔적이 가득하다. 제대로 잠도 자지 못하고 밥도 먹지 못하던 시간이었지만 그 덕에 노랫말의 소리를 더 예민하게 고려하며 작사하는 습관이 자리 잡았다. 


 어느 날, 메시지를 하나 받았다. 포레스텔라 달의 아들 <열린 음악회> 방영본이 ‘유튜브 알고리즘의 선택’으로 남미 분들에게 닿았다는 소식이었다. 댓글들을 보며 음악을 통해 언어가 달라도 이렇게 소통할 수 있다는 걸 새삼 느꼈다. 소리는 공기 중에 일어나는 파동으로 찰나에 사라지지만, 그냥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영혼으로 흡수되는 게 아닐까 하는 감상적인 생각도 떠올랐다. 금세 사라지기에 가치가 있지만 끝내 사라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


 이 노래는 스페인에서 탄생했지만,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비극적인 이야기이다. 

달을 스쳐 가는 바람에 실린 모든 이의 기도가 그곳에 닿기를...




<포레스텔라- Hijo de la Luna(달의 아들)>

Hijo de la Luna

Hijo de la Luna


빛을 잃은 하늘 길을 잃은 여인

오랜 기도 들려

푸른 바다 아래 깊은 잠을 자던

달이 떠오르네


눈부신 그 빛에 몸을 맡겨

그을린 달빛에 입을 맞춰

간절한 내 기도 사라지기 전에

빛을 내려주오


달이 스치는 바람에

닿을 수 있을까 해가 뜨기 전에

바람 부는 이 밤에

부디 내려주오 나와 닮은 빛을


Ahahahah

Hijo de la Luna


달의 그림자의 하얀 눈빛

거세지는 바람 꺼진 불빛

어둠을 헤치고 찢어진 맘으로

멀리 떠나가네


달이 스치는 밤에

나를 외면하는 달의 뒷모습이

바람 부는 이 밤에

머물게 해 주오

나와 닮은 빛을


Ahahahah

Hijo de la Luna

Hijo de la Luna

Hijo de la Luna


빛을 잃은 하늘 길을 잃은 여인

품에 안은 달빛

그을린 달빛이 사라질 때까지

깊은 잠이 드네

예쁜 꿈을 꾸네

깨지 않은 꿈




포레스텔라 - Hijo de la Luna (달의 아들) [열린 음악회/Open Concert] 20200524 - YouTube

이전 13화 [작사 노트] 나는 집으로 간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