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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사가 문주원 Oct 22. 2023

[작사 노트] 나는 집으로 간다

 <미라클라스 – 집으로 가는 길 (On The Way Home)>

  

  5년 전, 미라클라스 1집 앨범 수록곡 중 한국어로 된 노래 두 곡을 작사한 일이 있다. 그중 한 곡은 영화 <가을의 전설> O.S.T. 연주곡인 <James Horner - The Ludlows>에 한국어 가사를 붙인 노래다. 데모 곡을 들으며 광활한 자연과 인생, 사랑, 가을 같은 키워드들은 떠올랐지만 명확한 스토리가 떠오르진 않았다. 영감을 받고자 영화를 보았지만 되려 고민에 빠졌다.      


  1913년, 미국 몬태나 주. 유학을 떠났던 막내 새뮤얼이 약혼자 수잔나를 집으로 데려오며 러드로우 대령과 세 아들 알프레드, 트리스탄, 새뮤얼의 삶은 변화를 맞는다. 삼 형제가 한 여자에게 사랑을 느낀다. 삼 형제 모두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고 격변의 시대를 살아가다 여러 주요 인물이 죽음을 맞이한다. 다시 방랑을 시작한 트리스탄은 1963년 어느 숲에서 곰과 대결을 벌이다가 자연으로 영원히 돌아갔다는 내레이션으로 이야기가 끝을 맺는다. 어린 시절 사냥에서 만난 곰과의 싸움에서 그는 "동물과 피를 나눈 사람은 그와 하나가 된다"라는 인디언의 운명을 부여받은 것이다. 노래 가사에 이런 스토리를 반영하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영화의 오프닝, 그 가문을 곁에서 오래 지켜본 노인의 내레이션이 남긴 울림이 있었다. “어떤 이는 크고 분명한 내면의 소리를 듣고, 들리는 그대로 살아간다. 그런 사람은 미치거나 아니면 전설이 된다.(Some people hear their own inner voices with great clearness. And they live by what they hear. Such people become crazy...Or they become legends.)” 그 내면의 소리에 따라 산 사람의 이야기를 가사로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데모 곡을 반복해서 듣는 동안 황량한 가을 숲 속 길이 떠올랐다. 영화에서 주인공은 고향을 떠나 숲 깊숙이 들어갔지만 난 그가 숲에 난 길을 따라 마을로 향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나는 그를 집으로 돌려보내고 싶었다. 이생의 집에서 안식을 누리지 못했다면, 천국에 있는 집에서라도 그가 온전한 사랑과 휴식을 누리길 바랐다. 결국 방황했던 모든 발걸음은 집으로 돌아오기 위함이었다는 이야기를 쓰고자 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사실을 알기에 집을 떠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때로는 우리가 나그네 인생 같을지라도 언제든 돌아갈 곳이 있다는 메시지를 노래에 담고 싶었던 것이다.     


 여행을 하다가 불쾌하거나 힘든 일이 닥쳐도 금세 너그러워졌던 경험이 있다. 그곳에 계속 머무는 것이 아니라 집으로 돌아갈 것을 알기에 그런 여유가 있었다. 그런 마음으로 ‘집’을 기억할 때 우리는 이 삶이라는 여정을 좀 더 담대하고 평안하게, 너그럽고 부드럽게 걸어갈 수 있지 않을까.      



<미라클라스 – 집으로 가는 길 (On The Way Home)>     


회색 빛 짙게 물든 가을 길목에서

날 부르는 소리에 떠난 그날

날 오라는 그리움에

가슴 벅차도 돌아보지 않았네     


나 홀로 외로이 보낸 수많은 시간을

오래 참아온 간절한 기억을     


때론 멀리 돌아온 길들도

가끔 멈춰 선 발걸음도

그대가 머무는 그곳으로 향하네

그댈 잊으려 해도     

그대 모습을 지우려 애써도

눈만 감으면 아른거려

집으로 가는 길

익숙한 그 풍경과 아직 슬픈 향기     


어쩌면 처음부터 알고 있었지

돌아오기 위해 떠난걸

멀리 더 멀리 떠나보니

선명해진 기억들

그리움의 발자국을 남기고 가네     


집으로 가는 길

익숙한 그 풍경과

아직 짙은 향기     

때론 멀리 돌아온 길들도

가끔 멈춰 선 발걸음도

이제는 더 이상 돌아보지 않으리

내가 지나온 길          



미라클라스 - 집으로 가는 길 [열린 음악회/Open Concert] | KBS 201004 방송 -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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