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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사가 문주원 Aug 08. 2022

따릉이

작년 가을은 따릉이를 타고 동네를 누비는 재미로 지냈다. 몇 번 타보고 정기권을 구매한다는 것을 깜빡 잊는 바람에 성실한 라이더가 되었다. 건망증 때문에 돈을 아끼지 못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돈을 아끼고자 하는 마음이 매일 페달을 돌리는 동력이었다. 제로 페이 할인을 받아 700원으로 일일권을 구매하면 이틀은 탈 수 있으니 24시간이 지나기 전 서둘러 외출을  한 것이다. 운동 센터에 낸 돈이 아까워 운동을 하는 메커니즘이 자전거에도 적용되었던 것이 새삼 재밌다.  


페달을 굴리던 두 발을 멈출 때마다 뒷바퀴 회전축이 잘게 떠는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마찰음이 잦아들 때쯤 구부린 무릎에 새로 힘을 줘 다시금 속도를 낸다. 바람을 가르며 반복되는 이 단순한 행위에 어느덧 생각의 그릇이 깨끗이 비워진다. 등 뒤에서 미는 바람도 맞은편에서 저항을 일으키며 불어오는 바람도  모두 고마울 뿐이다.


하천을 따라 달리다 보면 앞뒤 건너편 500미터 이내에 아무도 없는 구간들이 종종 나타난다 그런 적막에 들어설 때마다. 속삭이듯 흥얼거리던 노래를 조금 더 크게 불러본다 바람에 흩어지는 노랫소리가 흐르는 물 위로 반짝이는 빛들이, 서로를 지나쳐가는 이름 모를  다른 존재들이 소소하지만 큰 위로가 된다. 그렇게  얻은 힘으로 덜어내야 할 것들을 두 바퀴 뒤로 흘려보내며 앞으로 앞으로 달린다.


요즘은 날이 더워 자전거를 거의 타지 못하지만 이제는 정기권 이용자이기 때문인지 전에 없던 여유가 생겼다. 말복이 지나면 다시 따릉이를 타러 나갈 생각이다. 작년 가을보다 힘이 많이 부쳐, 짧은 거리밖에 가지 못하지만 성실한 라이더는 한 번 해봤으니 느긋한 라이더의 기쁨을 누려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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