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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사가 문주원 Jul 28. 2022

웃자란 플로리다 소철

새집증후군 문제로 집안에 식물들이 늘어나며 필요한 정보들을 속성으로 찾아야 하는 일도 늘어났다. 인터넷 창 스크롤을 급히 올리고 내리며 스쳐 지나간 낯선 어휘들도 쌓여갔다. 당시에는 흘려보냈어도 기억 한편에 저장된 키워드들 덕분에 새로운 문제가 생 때마다 빠른 검색이 가능했다. 가령, 화분 근처 낯선 날벌레들을 발견했을 때, 사진 한 장 본 적 없지만 '뿌리파리?'하고 떠오르는 식이다.




플로리다 소철에서 새순이 올라왔다. 콩나물처럼 이파리 부분을 동그랗게 말고 있는 모습이 어찌나 귀엽던지! 새순은 날마다 쑥쑥 자랐다. 얼마나 잘 자랐냐면, 이쯤엔 이파리들이 펴져야 할 것 같은데도 멈추지 않고 줄기만 계속 자랐다. 혹시 내게 식물을 키우는 재능이 있는 것일까, 설레던 마음이 불안한 마음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매일 아침 화분을 들여다보며 이제 그만 멈추라고 애원을 했지만, 플로리다 소철의 새순은 옆에 있는 줄기들의 서너 배 길이까지 자라면서, 광대한 이파리를 펼쳤다.








망연한 마음 위로, 떠오른 단어가 있었다.




'웃자라다'




식물 관련 커뮤니티들의 글목록을 훑을 때마다 웃자랐다는 표현이 종종 보였다. 그때는 어렴풋이 식물의 이상 성장과 관련된 뜻인가 보다고만 생각했지 그 의미를 명확히 몰랐다. 사전을 찾아보았다.




웃자라다 : (식물의 줄기나 잎 따위가) 지나치게 많이 자라서 연약하게 되다.




커뮤니티에 사진을 올려 웃자란 것이 맞다는 확인을 받았다. 광량이 부족하여 그렇게 된 것이라. 이렇게 웃자란 한줄기 때문에 플로리다 소철은 무척 불균형한 모습이 되었다. 미관 문제뿐 아니라 웃자란 부분에 필요한 영양을 뺏기기 때문에 잘라줘야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플로리다 소철에 다시 새순이 올라왔다. 지난번 일 이후, 창가 바로 앞으로 화분을 옮겼는데도 또 웃자라는 기미가 보여 햇빛이 더 강한 곳으로 이동했다. 하지만 한번 결핍을 느낀 새순은 바뀐 환경을 신뢰하지 못하는지 기를 쓰고 자신을 확장했다. 난 충분히 밝고 눈부시다 생각한 자리였지만, 플로리다에서 온 생명에게는 부족했나 보다. 결국 식물등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삐죽이 올라온 줄기를 잘라내며 미안하고 조금 서글퍼졌다. 어쩌면 그 모습에서 나를 보았는지도 모르겠다. 햇살이 부족한 아이들은 성급히 자라 애어른이 된다. 이제는 양지로 나왔음에도 불신은 여전히 잔잔한 불안으로 남아 불필요하게 몸을 키운다. 잘라낸 플로리다 소철을 바라보며 내 안에 여기저기 웃자라 있는 마음과 감정들도 함께 들여다보았다. 알면서도 여태 잘라내지 못해 나를 더 연약하게 만드는 것들을...




웃자란 플로리다 소철 한 줄기는 화병에 꽂혀 내 방에 이국적인 풍경으로 자리하고 있다. 한 달이 지나도 생생하다. 오히려 화분에 있을 때보다 더 건강해 보이는 느낌이다. 진작 식물등을 살 걸, 안쓰럽고 미안한 마음 너머 햇살 한줄기가 일렁일 때마다 가본 적도 없는 플로리다의 햇살이 떠오른다. 웃자란 것들에서도 그 나름대로의 아름다움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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