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차
타닥타닥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커튼을 열었다. 커다란 날벌레를 문 회색 새 한 마리가 바닥을 쳐서 내는 소리였다. "야, 가!" 큰 소리를 내도 새는 힐끗 볼뿐 계속해서 부리로 벌레를 때리고 있었다. "가라고!" 핸드폰 플래시를 흔들었지만, 햇빛이 더 강해서인지 새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내가 비춘 빛에 반쯤 남은 벌레만 조명되어 되려, 내 시각적 괴로움만 더해질 뿐이었다. 새가 식사를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모습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타닥대는 소리에 계속 소름이 돋았다. 그렇게 한동안 소리를 내던 새는 배가 불렀는지 깃털을 한 번 고르고 날아가버렸다. 식탁에 한 조각을 남기고서. 남의 집 앞에서 식사를 했으면 치우고 갈 것이지, 새가 참 뻔뻔하고 얄미웠다.
차마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초점 흐린 눈을 하며 고민했다. 치울 것인가, 그대로 둘 것인가. 적당한 길이의 도구를 찾아 창살 사이로 팔을 뻗는 것도 번거롭고, 무엇보다 그쪽을 다시 바라봐야 하는 게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저대로 둔다면 잔반에 벌레들이 꼬이진 않을까? 산과 개천이 근처에 있어 틈만 나면 집 안으로 들어오고 싶어 하는 벌레들이 한가득이다. 창과 방패를 바꿔가며 몇 년간 싸움을 벌이다 최근에서야 안정을 찾았는데, 창가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게 둘 수는 없었다. 오늘 비가 오려나. 예보가 틀리길, 부디 비가 오길 바라면서 우선 하루만 더 기다려보기로 했다.
2일차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창문을 열였다. 난간이 깨끗했다. 안도함과 동시에 불안함도 스며들었다. 비가 온 흔적은 없었다. 누가 치운 거지? 누가 온 거지? 점심시간이 되자 커튼 너머에서 소리가 들렸다. 슬며시 커튼을 젖히다 까치와 눈을 마주쳤다. 회색 깃털을 물고 있었다. "또 왔어?" 엄밀히 말하면 까치는 처음이니, 까치 입장에선 억울할 순 있겠지만, 내 입장에선 '또'란 말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까치는 회색 새보다 염치가 있는 것인지 말을 알아듣는 것인지, 총총걸음으로 난간을 따라 모퉁이를 돌았다. 그리고 푸드덕대는 소리와 무언가가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소리는 지척에서 생생하게 들리는데 눈에 보이지 않으니 더욱 심란했다. 뭐하는 것일까. 혹시 둥지를 틀려는 것은 아니겠지. 깍깍 대는 소리가 나더니 저쪽에서도 깍깍대는 소리와 날갯짓 소리가 들렸다. 친구들을 부르는 것일까?
까치는 복수를 한다. '은혜 갚은 까치'라는 표현이 익숙하지만 내가 아는 까치는 은혜를 갚기보다는 복수를 한다. 둥지를 건드린 연구원이 캠퍼스에 나타나기만 하면 그를 공격한다던, 9시 뉴스에 나온 관악구 까치. 까치를 잡아먹은 대장 고양이를 떼로 공격해서 결국 몇 주만에 동네에서 쫓아냈다던, 친구의 목격담 속 송파구 까치들. 까치는 비슷한 체구의 사람들이 똑같은 옷을 입어도 얼굴로 구별을 한다고 했다. 난 까치를 공격한 것은 아니지만 야단치듯 말하긴 했기에 혹시라도 까치의 기분이 상했을지 모른다. 까치들에게 주목받고 싶진 않았다. 심지어 그들은 우리 집 주소도 아는데.
버드 스파이크를 검색해 보았다. 비교적 덜 위협적인 하얀색 플라스틱 제품을 찾았다. 장바구니에 넣어두고 고민이 시작됐다. 이런 걸 설치했다고 괘씸죄로 보복을 당하는 것은 아닐까? 손이 닿는 곳까지만 설치가 가능할 텐데, 새들이 스파이크를 피해 자리를 잡아 사각지대에 벌레가 꼬이면 어떻게 하지? 차라리 가까운 곳에서 사태가 벌어지면 처리라도 가능하겠지만 그냥 뒀다가는 지금보다 더 핫플레이스가 되지 않을까 염려되었다. 어제는 회색 새, 오늘은 까치... 우리 동네는 벌레도 벌레지만 새들이 무척 많다. 작년 여름, 뜨끈한 태양열판에 짝다리로 서있던 커다란 왜가리가 떠올랐다. 이틀간 연속적인 방문이었지만, 우연일 수도 있으니 우선 하루만 더 기다려보기로 했다.
3일차
에어컨 때문에 창을 닫아놔서 소리가 들리지 않았나보다. 환기시키러 창을 여니, 난간 여기저기 잔해들이 보였다. 어제 왔던 애들인지, 새로운 애들인지 알 수 없었다. 새들의 루틴에 이곳이 포함되었거나 입소문이 난 듯싶었다. 남은 조각들을 보니 벌레들의 종류도 다양했다. 착잡했다. 창 밖에 보이는 나무 몇 그루에서 매미 소리가 들렸다. 저기서 픽업해 이곳에서 먹는구나. 가장 효율적이고 자연스러운 동선이었다. 나라도 여기서 먹을 것 같았다. 새들도 매일 같은 식당은 지겨울 수 있으니, 우선 하루만 더 기다려 보기로 했다.
4일차
날씨가 좋아 커튼을 열고 있었는데, 회색 새가 창가에 날아와 앉았다. 사람 얼굴도 잘 알아보지 못해 종종 오해를 사는 내가 새 얼굴을 구별하는 것은 불가했다. 첫날 온 새인지 아닌지 알 수 없지만 조용히 자리를 비켜줬다. 방문을 닫고 나올 때 "치우고 가라."라고 말했는데, 그렇게 해줄지는 모르겠다. 식사할 때 나도 한 그릇을 다 비우기 어렵기 때문인지, 다 먹으라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다만 그저 남은 것은 좀 정리하고 갔으면 하는 마음뿐이다. 남은 것을 누가 치우는 지는 여전히 미궁이다. 지나가다 잠시 쉬어가던 새가 간식으로 먹고 간 것일까, 픽업해 온 자기 분량을 먹는 김에 다른 새가 남긴 것도 먹는 대식가 새가 왔다 간 것일까.
그러니까 나는, 벌레만 안 꼬이면 되는 것이라서, 우선 하루만 더 기다려 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