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랑 많이 닮았네요.”
네? 현관문을 열고 나오던 나는 주위를 돌아보았다. 내게 하신 말씀이었다.
“어... 저는... 딸이 없어요.”
인자하게 웃으시던 이웃집 할아버지가 의아한 표정으로 유심히 내 얼굴을 살피시곤 웃음을 터트리셨다. 이사 온 지 1주일밖에 되지 않아, 지난주 나를 학생이라 부르셨던 할아버지가 이번 주는 나를 그 ‘학생’의 어머니로 착각하신 것이다.
그러니까, 이게 다 옷 때문이다.
서른 살 무렵, 허리에 고무줄이 들어간 긴치마를 자주 입었는데, 동네 사람들은 나를 ‘어머니’나 ‘새댁’으로 불렀다. 청바지에 티셔츠를 입고 나가면 ‘학생’이라 불렸다.
한번은 독감 예방 주사를 맞으러 갔는데 의사 선생님이 나를 힐끗 보더니 문진표를 넘기며 작년에도 독감 주사를 맞았냐고 물으셨다.
“어머니, 어머니가 독감 주사를 안 맞고도 독감에 안 걸렸던 건 어머니가 아주 운이 좋아서였던 거예요. 일 년에 독감으로 사망하는 환자가 몇 명이나 되는지 아세요? 어머니처럼 그렇게,”
대본을 읊듯 잔소리하던 선생님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그러니까, 사람은 독감 주사를 맞아야... 한다 이거야. 잘 왔어. 그래.”
조언을 급히 마무리하셨다. 어머니와 학생, 그 사이 어디쯤인 나날이었다.
숏컷을 했다. 무스탕을 입고 워커를 신고, 눈 화장까지 하면 다른 사람 같았다. 석사 논문을 쓰던 시기라 평소 안 하던 일들이 유난히 하고 싶었다. 더 나아가 탈색까지 하고 나니 운신이 편해졌다. 번화가를 나갈 때마다 “인상이 참 좋으세요”라며 허다하게 붙잡던 분들로부터 자유를 얻었다. 어쩌다 눈이 마주쳐도, 그분들은 속히 고개를 돌리고 나보다 인상이 더 좋은 사람을 찾아 가셨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 나를 ‘무서운 언니’같다고 하거나 내 직업을 추측하며 누군가는 나를 경계했고, 누군가는 무례히 대하기도 했다. 오랜만에 나간 모임에서 따로 인사를 하기 전까지 나를 알아보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새댁, 어머니, 학생, 날라리, 무서운 언니. 한 계절이 지나기도 전에 들은 다양한 호칭들이다. 사람들은 내가 어떤 옷을 입고 어떤 머리를 하느냐로 판단한다는 것을 새삼 느낀 계절이었다.
친구 언니 가족이 여행을 간 동안, 그 집 고양이 밥을 챙겨주러 다녀왔다. 루크와 깽이는 낯을 가리는 겁 많은 아이들이라, 역시 기척이 없었다. 이불속에 몸을 숨긴 것이 보였다. 화장실에서 ‘감자’를 캐고, 사료를 부어주고, 물그릇을 씻어 채우고 멀찌감치 떨어졌다. 깽이보다 용감한 루크가 먼저 방에서 나와 물을 마시고 내게 다가왔다. 가만히 나를 올려 보다 캣타워로 올라와 눈높이를 맞추더니 자리에 앉아 눈을 느리게 깜빡였다. ‘내가 눈을 감는 이 순간, 당신이 나를 공격하지 않을 거라 믿어’ 말로만 듣던 고양이 눈 키스였다. 나도 천천히 눈을 감았다 떴다. 루크도 응답하듯 다시 한번 눈을 감았다. 그렇게 서로 눈 맞춤을 몇 번 주고받은 뒤 루크는 내 다리에 등을 비비고는 배를 보이고 누웠다. 그 모습을 영상으로 찍어 친구 언니에게 전송했다.
‘어머, 얘가 이러는 애가 아닌데. 네가 지난번에도 왔던 걸 기억하나 봐.’
몇 년이 지난 오랜만의 방문, 많이 바뀐 스타일에도 루크는 나를 알아보았다.
어떻게 알았어? 냄새로 안 거야? 나 나쁜 사람 아니라고 믿어주는 거야?
루크의 보드라운 털을 만지며 눈시울이 뜨끈해졌다.
최근 몇 년간은 화장도 하지 않고 주로 운동복을 입고 자유롭게 살고 있지만, 누군가를 처음 만나기 전에는, 어떤 옷을 입어야 할지, 머리는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될 때가 있다. 이따금 나는, 가만히 앉아 나를 바라보고 눈을 깜빡이던 그날의 루크를 떠올린다. 포장에 가려진 타인의 진심과 진의를 바라보는 루크의 눈을.
나도 루크의 눈으로 당신을, 그리고 세상을 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