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 걸린 산자락, 숲과 들, 꽃과 나무가 우거진 마을에서 살던 나는 한순간 탁류(濁流)에 휩쓸려 끝없이 깊은 강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한국을 떠나 노매드의 삶을 산지 한 해 남짓, 여전히 눈을 감으면 어두운 강바닥 아래로 가라앉는 내가 떠올랐다. 그건 고통의 일시 정지화면 같은 것이었다.
첫사랑의 죽음으로 삶은 뒤죽박죽 엉망이 되었다. 죽음은 단 한 번도 상상하지 않은 방식의 이별이었다. 잠에서 깨면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어리둥절했고 악몽처럼 생생한 고통은 매일 되풀이되었다. 심장은 칼로 쑤셔 소금을 뿌린 것처럼 아팠고 그 심장을 뭉텅뭉텅 손으로 뜯어내고 싶을 만큼 고통스러운 순간 나는 한국을 떠났다.
낯선 땅에서 삶은 차라리 덜 아팠다. 언어조차 통하지 않아 마음 편했다. 아무도 내가 누군지 묻지 않았다. 애써 씩씩한 척 괜찮은 척하지 않아도 되었다. 사람들은 상처 받은 나를 내버려 두었고 나는 아프면 아픈 대로 웅크릴 수 있었다. 헝클어지고 망가진 채 어두운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인도 델리 파하르간즈 골목에서 한 예언자를 만났다. 그는 내게 서른이 되기 전에 모든 사람이 나를 싫어해서 떠날 것이고, 서른세 살에 미치거나 자살하게 될 운명이라 예언했다. 나는 다시 무너졌다. 앞으로도 끔찍한 일이 계속된다는 말인가. 이런 빌어먹을 삶이 또 있을까 싶었다.
분노와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나를 파괴하지 않으면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를 만큼 절망했다. 소심한 자학(?)으로 선택한 방법이 버스였다. 인도 전역을 목적지 없이 종으로 횡으로 버스만 탔다. 먹지도 자지도 씻지도 않으며 장거리 버스를 타고 내리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72시간 버스에 꼿꼿이 앉아 스스로를 괴롭힌 끝에 도착한 곳이 인도 북부 산간 마을 마날리였다.
내리자마자 다시 버스를 타려 했지만 마날리는 산간 마을이라 내일 아침이 되어서야 도시로 나가는 버스가 있다고 했다. 이런! 어쩔 수 없이 하루를 묵어야 했다. 심지어 마날리는 온천 마을. “먹지도 자지도 씻지도 않는 자학 프로그램”이 버스 끊긴 산속 온천 마을에서 자동 종료될 운명에 처한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그만 둘 순 없었다.
그 순간 내 눈에 들어온 것이 마날리 깊은 산이었다. 나는 고행을 이어가기로 했다. 먹지도 자지도 씻지도 않은 거지꼴의 내가 이제 끝없이 산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쓰러지기 직전이었지만 산속 탐스럽게 주렁주렁 달린 사과에 눈길조차 주지 않을 만큼 나는 가혹한 신(神)에게 분노했다.
걷고 걸었다. 산속에서 시체로 발견된들 어떠랴 싶었다. 어차피 미치지 않으면 자살할 운명인데 스물다섯 살이나 서른세 살이나 죽기는 매 한 가지였다. 삶에 미련이 없으니 죽음에 두려움도 없었다. 산으로 산으로 걸어 들어갔다. 작렬하는 태양 아래 걷기는 하는 건지 다리가 허우적대는 건지 감각마저 희미할 무렵 저 멀리서 어떤 여자가 피리를 불며 내게로 걸어왔다.
나와 생김새가 같은 일본인이었다. 드디어 내가 미쳤구나. 인도 마날리 산중에 피리 부는 일본인이라니! 하지만 그녀는 환상도 망각도 아닌 실재한 사람이었으며 자신을 “히피”로 소개했다. 청년 시절 일본을 떠나 인도 마날리에서 파트너와 지내고 있다고 했다. 우리는 나란히 걸으며 서툰 영어로 대화를 나누었다. 20여 년 전 나처럼 조국을 떠나게 된 사연과 사랑과 연애, 실연, 바라나시에서 음악을 배우며 자연에서 살아가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도 비련 한 내 운명을 그녀에게 들려주었다.
“서른 살이 되기 전에 모두 저를 싫어하며 떠난대요. 그리고 서른세 살에 미치지 않으면 자살하게 된대요. 그게 제 운명이래요.”
조용히 내 이야기를 듣던 그녀는 재밌다는 듯 깔깔깔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살면서 네게 게임을 걸 거야. 그럴 때마다 피하지 말고 즐겨. 신(神)조차 마찬가지야. 시련과 운명으로 네게 게임을 걸지. 도망가지 마. 신과 게임을 해. 너는 신(神)이 가진 패를 이미 알고 있잖아? 서른세 살이 될 때까지 미치지 않고 자살하지 않으면 돼. 그러면 너는 신(神)을 이기는 거야.”
단순하지만 지혜로운 답이었다. 미치지 않고 자살하지 않으면 된다. 그러면 나는 내 운명을 바꿀 수 있다. 절망의 나락에서 허우적대던 나는 명쾌해졌다. 미치지 말자. 자살하지 말자. 운명이 예고한 서른세 살을 넘기자. 그러면 나는 신(神)과의 게임에서 이기는 거야.
마날리에서 델리로 돌아온 나는 여행 가이드북을 샀다. 관에 누워 시체처럼 지내던 시간에서 깨어났다. 진짜 여행이 시작된 것이다. 인도에서 파키스탄 국경을 넘어 이란을 지나 터키까지 무작정 가보기로 했다. 여전히 눈을 감으면 탁류(濁流)에 휩쓸려 어두운 수면 아래로 끝없이 가라앉는 내가 보였지만.
‘아래로 아래로 가라앉다 보면 바닥까지 내려가겠지. 그땐 바닥을 “탁” 되짚고 다시 떠오르는 거야’
고통의 일시정지 화면에서 바닥을 되짚고 수면 위로 떠오르는 상상이 더해졌다. 내가 살던 세계로 돌아가려는 의지도 생겨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