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특수학급에서 기간제 교사로 일할 때였다.
교실에서 A와 B가 뭔가 훔친다고 했다.
(특수학급이라 비품과 간식이 항상 비치되어 있었다)
"삼세번" 나만의 인생 규칙이 있어 보통 2번까지는 모른 척 넘어간다. 세 번째 도적질(?)이 보고되자 두 녀석을 불렀다. 둘 다 발달장애가 있어 순수하고 착했다.
너희들이 한 짓을 이미 알고 있다. 이실직고하면 부모님께 말씀드리지 않겠다. 대신 교실에서 가져간 것을 낱낱이 써내라. 녀석들을 협박(?)했다.
그러자 두 녀석은 열심히 훔친 내역들을 써서 제출했다.
아닌데. 더 있는데. 선생님은 너희들이 뭘 가져가는지 몰래 지켜봤다. 아직도 빠진 게 있으니 더 써내라 했다. 당황한 녀석들은 골똘히 생각해내 또 적고.
도난품 목록에 순진하게도 "정수기 물"까지 등장하자 취조를 멈췄다.
아이들을 집으로 보내고 A와 B가 적어낸 걸 읽으면서 의문이 생겼다. A는 책, 문구류, 교구, 간식 등 다양. 그냥 쓰릴과 재미로 훔친 것 같았다. 가정형편이 넉넉해서 필요에 의해 가져 간 것 같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B가 적어낸 건 거의 "먹을 것"이었다. 배가 고팠던 걸까 의구심이 생겼다.
이후 B를 유심히 관찰했다. 이상한 점이 눈에 들어왔다. 날씨가 쌀쌀해져 모두 춘추복으로 갈아입었는데 B는 하복을 입고 다닌 것. 옷매무새도 뭔가 허술했다.
B는 내성적인 데다 말수가 적었다. 부끄러움도 많아 자기표현이 서툴렀다. 가벼운 대화 속 소소한 질문과 대답 끝에 B는 "바퀴벌레가 벽을 타고 내려와 무서워 잠을 못 잔다" 했다.
나는 '가정방문'으로 B의 집을 찾아갔다.
집은 반지하. 아니나 다를까 벽을 타고 바퀴벌레가 쪼르륵 내려왔다. 어머니도 B처럼 발달장애인인데 여름에 집을 나갔다 했다.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 어수선한 집에서 아이들이 방치되고 있었다.
구청 보건소에 방역을 신청했다. B 남매가 다니던 지역아동센터를 찾아가 저녁밥을 챙겨줄 수 있냐 물었지만 난색을 표했다. 석식 신청자가 아니라는 이유였다. 인색하고 매정하다 싶었지만 지역아동센터 책임도 아니었다. 이리저리 알아보다 "행복카드"가 있다는 걸 알았다. 지정된 식당이나 편의점에서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복지카드를 발급받았다. 근처 반찬가게 사장님께 사정을 말씀드렸더니 흔쾌히 B 남매가 찾아오면 반찬을 무료로 주시겠다 하셨다. 특수학급에서는 B의 청결에 신경 썼다. 보조하던 선생님이 머리도 감겨주고 빗겨주었다.
B 아버지는 고마워하면서도 때론 술을 받아달라 하셨다. B도 생리대가 떨어지거나 용돈이 필요하면 도움을 청했다. 한밤중에 남편이 만삭인 나를 대신해 오토바이로 생리대 배달을 가기도 했다.
벌써 십수 년 전 일이다. B는 멋지게 성장했고 취직도 했다.
가끔 B의 도벽에서 가난을 발견하지 못했으면 어땠을까 생각한다. 따끔하게 야단만 치고 말았다면.
그리고 생각했다.
교육 복지 시스템_학교와 중간지원조직, 지역사회가 연결되어 돌볼 수 있도록 촘촘하고 섬세하게 설계되어야 한다는.
제도와 정책, 예산이 모세혈관처럼 돌아 현장에 미칠 수 있어야 한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