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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빛찬란 Oct 02. 2021

선생님 2.

결핍을 사랑으로 채워주셨던

몇 년 전 중1 담임 선생님이 30여 년 전 선생님과 함께 찍은 사진을 보내주셨는데 사진 속 나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얼굴이었다.

울상인 그 소녀가 나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그리고 기억해낸 충격적인 사실은 열세 살부터 열네 살까지 산속에서 나 혼자 살았다는 것!


그 사진은 산속에 혼자 살고 있는 내가 걱정되어

선생님 부부가 찾아온 날 찍은 것이었다. 갓 결혼한 선생님은 함께 살자고 하셨다. 따라나서고 싶었지만 신혼이었던 분들께 민폐라는 생각에

도저히 그럴 수 없었다.


'우와. 내가 나 홀로 아동이었구나. 심지어 산속!'


하지만 가위로 도려낸 듯 정말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한밤중 바람 부는 소리가 나무들 울음소리 같아서 무서웠던 기억만 언뜻 날 뿐.


밥은 어떻게 해 먹었고

겨울 추위는 어찌 해결했는지


결석은 안 했고 성적은 우수했고 선생님들께 사랑받았고 친구들과 즐거운 기억은 고스란히 남았는데도 학교 밖 산속에서의 생활_ 혼자 남겨졌던 두 해가 기억나지 않는 걸 보면 무섭고 두려워서 아마도 뇌가 기억을 삭제한 것 같다.


어쨌든 선생님은 내 씩씩한 생존을 하루하루 지켜보며 안도하셨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엄격하고 꼿꼿한 담임선생님은 유독 내겐 너그러우셨다.


태어날 아기 이름을

"선생님, 가람이라 지어요!"라고 하자

놀랍게도 정말 가람이로 지으셨다.


"좋은 집에 태어났으면 서울대에 갔을" 거라며

자존감이 낮은 나를 추켜세워 주셨다.


시골에서 도시로 전학 가는 날 상다리가 부러질 것 같은 상차림으로 선생님 댁에 친구들을 불러 모아 송별회를 열어주셨다.


나는 그런 선생님 손을 놓지 않았고 선생님은 20대, 30대, 40대 초반까지 내가 제대로 사나 돌아봐주셨다.


나를 아끼고 대견해하며 내 삶을 안타까워해주셨던 선생님이 수년 전 돌아가셨다고 한다.


연락을 드려야지 하면서도 조금만 내 상황이 좋아지길 기다렸는데.


남겨진 가족의 상처와 고통은 여전하고

내내 우시는 사모님은 온전해 보이지 않았다.


남은 가족의 염려가 선생님 돌아가신 슬픔을 압도했다.


길을 잃을 때마다 좌표에서 벗어나지 않았던 건

 "너는 좋은 아이야"라 말해주셨던 믿음 때문이었다.


어린 시절 결핍을 사랑으로 채워주셨던 선생님을

은혜도 보답도 하지 못한 채 어떻게 보내드려야 하나.


슬픔이 달처럼 기우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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