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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안 되는 투명함을 지나며

by 박영윤


어느 날, 뜻밖의 순간에 마음이 흔들렸다.

아무 일도 없었고, 그래야 할 이유도 없었지만

그날 이후, 가슴이 자주 조용히 떨렸다.


공적인 자리에서 만난 한 사람.

세 번째 대화를 나누고 나오는 길,

이상하리만큼 마음이 움직였다.


나와는 너무 다른 세계에 있는 사람.

그런데도 낯선 따뜻함이 마음에 남았다.


“억울하면 안 되잖아요. 끝까지 싸우세요.”


그 한마디가,

그 사람이 보여준 태도가,

그 순간만큼은 내 편이 되어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누구에게도 기대기 어려웠던 시기에

누군가의 다정한 말 한 줄이

생각보다 오래 머물렀다.


돌이켜보면,

그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이 건드렸던 어떤 감정에

내 마음이 반응했던 것 같다.

누군가가 나를 지지해주는 느낌,

무조건적인 위로,

‘괜찮다’고 말해주는 눈빛.

아마 나는 그런 감정을 오래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감정은

누구에게 말하지 못할 만큼 투명했고,

무엇이라 이름 붙이기도 어려운 마음이었다.

기록으로 남기고 싶지 않았고,

그저 조용히 내 안에서 사라지길 바랐다.


지금 나는 그 감정을

붙잡지도, 억누르지도 않고

그저 바라보는 중이다.

스쳐 지나간 봄비처럼,

마음 어딘가에 고요히 스며들기를 기다리며.


나는 알게 됐다.

내가 얼마나 감정에 살아 있는 사람인지,

그리고 그런 감정이 찾아와도

내가 여전히 내 삶의 중심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래서 오늘도

내가 할 일을 하고,

불확실한 감정은 운명에게 맡기기로 한다.

그게 지금의 나를 가장 잘 지켜내는 방식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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