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를 잃어버리다

인터넷을 사용하면 할수록 잃고 있는 것에 대해

by 백두산

어느 날 인도에서 함께 수학하던 친구가 물었다. "야 너네 나라에서는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그렇게 많이 사용한다며?!" 아마도 스마트폰 사용 시간을 나라별로 비교한 기사가 났던 모양이다. 나는 그렇다고 이야기하며 지하철을 타면 모두가 스마트폰을 들고 무언가 읽거나 보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얘기해 주었다. 그 친구는 적잖이 놀란 것 같았다. 인도에도 스마트폰이 보급되었지만 아직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쓰고 있지는 않던 때였다. 하지만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인도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대기업이 새로 통신회사를 차리며 가입자에게 6개월 공짜로 3G 데이터를 공급하며, 단숨에 인도 최대 가입자를 보유한 회사가 되었다. 물론 스마트폰 보급률 또한 가파르게 올라갔다. 이제는 릭샤(삼륜차로 된 교통수단)를 부르는 것도 스마트폰 앱을 통해 부를 수 있고, 릭샤 기사들도 구글맵 내비게이션을 켜고 운전을 할 만큼 보급이 되었다.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이제는 인도에서도 우리나라에서 흔히 보던 풍경을 볼 수 있게 되었다.



99D815385AF06D5906.jpg 지하철에서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대부분의 사람들


어느 나라에 가도 사람들은 스마트폰과 떨어져 살 수 없을 만큼 가까워졌으며, 인터넷 웹을 통해 검색을 하고, 종이로 된 책 보다 E-book을 읽고, 유튜브에 접속해 개인 방송을 시청하는 것이 당연한 시대가 되었다. 이제 누구도 다른 사람의 전화번호를 외우고 다니지 않으며, 지리적 위치를 찾기 위해 지도를 보거나 사람들에게 묻지 않고, 리포트나 논문을 쓰기 위해 도서관에 가서 직접 책이나 논문을 뒤져보지 않아도 된다. 연락처는 공유해서 메신저로 바로 보내면 되고, 내비게이션을 이용하면 어디든 최적의 경로를 찾아서 안내해주며, 필요한 내용을 구글에 검색하면 관련 논문과 서적에서 언급된 내용을 바로바로 볼 수 있다. 게다가 AI 기술이 나날이 발전해 생활은 더욱 편해질 것이 확실해 보인다. 그런데 우리 이렇게 기술이 발전하는 대로 소비만 하면서 따라가기만 해도 괜찮은 걸까. 발전한 기술로 우리 모두는 잃는 것 없이 얻기만 하는 걸까. 잃는 것이 있다면 우리는 무엇을 잃고 있는 것일까.



기원전 4세기 무렵 플라톤이 쓴 [파이드로스 Phaedrus]를 들여다보면, 글쓰기가 아직 생소하고 논쟁의 대상이 되었던 시기의 고민을 엿볼 수 있다. 이 글에서 주인공인 아테네 시민은 위대한 연설가인 소크라테스와 대화를 한다. 소크라테스는 '글쓰기의 적절함과 부적절함'에 대해 언급하며 이집트의 신 테우스와 이집트 왕인 타무스의 만남에 대해 이야기한다.


테우스: 글쓰기는 이집트 사람들을 더욱 현명하게 만들고 기억력을 향상할 것이다. 그 이유는 문자가 기억력과 지혜를 조합하는 법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타무스: 인간은 예술로 가득 차 있는데, 어떤 이는 예술을 창조하고 어떤 이는 사람들이 이용하는 예술이 주는 해악과 이익을 평가하도록 되어있습니다. 당신은 당신 스스로 만든 글쓰기에 관해서는 진실과 정반대 되는 효과를 선언하고 있군요. 이집트인들의 영혼에 망각이라는 것이 심어질 것입니다.

"글로 쓰여진 것에 의존하고 스스로 가진 것에서 기억을 되살리지 않고 외부적인 기록을 사용함으로 인해 기억 활동을 멈출 것입니다."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득과 실에 대한 논의와 우려는 비단 지금 이 시대에만 국한되는 일은 아닌듯하다. 그때와 지금이 많이 다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잃고 있는 것에 대해서 곰곰이 그리고 면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지능의 깊이는 기억을 작업 기억으로부터 장기 기억으로 이동시키고, 또 이 기억을 개념적 스키마로 이어 붙이는 능력에 달려 있다. 하지만 작업 기억에서 장기 기억으로 이르는 통로는 우리 뇌 속에 큰 병목현상을 일으킨다. 방대한 능력을 지닌 장기 기억과 달리 작업 기억이 저장할 수 있는 정보의 양은 아주 적다.


인터넷에서 우리는 수많은 정보에 노출되고 한 페이지에 있는 많은 광고를 보고 싶지 않아도 보게 된다. 그렇게 우리는 끊임없이 보고, 듣고, 키보드를 치거나 마우스를 움직여 계속해서 클릭을 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은 원하는 무언가를 찾기 위함일 수도, 단지 스크린에 떠오른 흥미를 유발하는 어떤 것을 클릭하며 따라가는 과정일 수도 있다. 이 과정에서 우리의 작업 기억으로 흘러드는 정보를 "인지 부하"라고 한다. 이 부하가 정보를 저장하고 처리하는 사고의 능력을 초월할 때, 우리는 이 정보를 간직하거나 이미 장기 기억에 저장되어 있는 정보와의 관계를 형성할 수 없게 된다. 새로운 정보를 스키마로 해석할 수 없는 것이다. 즉 우리는 노출되는 방대한 양의 정보에 대해 제대로 된 이해가 없는 상태가 된다. 또한 산만해진 게 된다.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는 능력 역시 작업 기억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연구자들은 두 그룹에게 일련의 문서를 검색한 후 몇 가지 질문에 답하도록 했다. 한 그룹은 전자 하이퍼텍스트 문서를 통해 검색했고, 다른 그룹은 전통적인 종이 문서를 통해 검색했다. 종이 문서를 사용한 그룹은 질문지를 완성하는 데 있어 하이퍼텍스트를 사용한 그룹보다 월등한 실력을 보였다.



흔히 하이퍼텍스트를 통해 문서를 읽으면 글에 대한 이해도가 향상될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여러 연구에서 그 반대의 결과가 나오고 있다. 이는 하이퍼텍스트에 링크가 연결되어 있는 특정 단어들 때문이다. 글을 읽으며 링크가 연결되어 있는 특정 단어에 도달하면 우리의 뇌는 이것을 평가하고, 클릭을 할지 말지를 결정해야 한다. 이는 집중력과 뇌의 역량을 사용해야 하는 작용이므로 읽고 이해하는 작업 또한 수행해야 하는 뇌에게 인지 과부하를 주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읽은 내용에 대한 이해도는 오히려 떨어진다.



책을 읽는 것과 인터넷에서 정보를 검색할 때 읽는 방식은 다르다. 인터넷을 통해 자료를 찾거나 어떠한 정보를 검색할 때는 모든 내용을 읽고 이해한다기보다는 이쪽저쪽으로 건너뛰며 훑어보는 방식이다. 이것은 효과적으로 필요한 정보를 찾는 데는 유용할지 모르나 이로 인해 우리는 다시금 산만해지게 된다. 그 결과 인터넷과 여러 미디어를 사용하면 할수록 책을 정독하고 깊이 생각하는 데는 점점 더 어려움을 느끼게 된다. 뇌는 어떻게 쓰이는가에 따라 변화하고, 빈번하게 쓰이는 방식에 따라 그 부분의 신경회로는 강화된다. 쓰이지 않는 곳은 빈번하게 쓰이는 곳에 자리를 내어주게 된다. 다시 말해, 이미 우리의 뇌는 이전의 뇌와 많이 달라졌다.



점점 더 많은 시간을 웹 서핑, 메신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튜브, 각종 흥미를 유발하는 온라인 게임 등을 하며 지낸다. 최근 몇십 년 동안 우리는 엄청난 변화를 겪었고 또한 더욱 빠른 속도로 겪어내야 할지 모른다. 그만큼 기술의 발전은 그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이쯤에서 생각해봐야 한다. 내가 이 기술을 사용함으로 더 나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 건지. 기술을 통해 무엇을 얼마나 얻고 있으며, 또한 무엇을 얼마나 잃고 있는지. 수작업으로 옷을 만들던 사람들이 기계로 옷을 만들며 섬유를 느끼지 못하게 되었고 손재주의 일부를 잃었듯이, 또한 농부들이 농기계를 통해 농사를 지어서 더 많은 농작물을 거둬들이게 됐지만 땅을 만지고 느낄 수 없게 되었듯이 말이다.



이 책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은 아무 생각 없이 기술을 소비하기에 급급하던 나에게 조금이나마 멈춰서 어떤 방식으로 얼마나 어떻게 넘쳐나는 기술을 받아들이고 소비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볼 시간과 계기를 주었다. 그러한 시간이 필요한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며 이번 서평을 마친다.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표지.jpg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니콜라스 카 지음